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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Aug 10. 2022

동호회에 간 INFJ

사실은 농구가 하고 싶었던게지

회사에서 아내로부터 카톡 하나를 받았다. 카톡에는 아무 말도 없이 덜렁 링크 하나만 있었다.

'이건 뭐지?'

뭐 재밌는 건가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링크를 따라 들어갔는데, 링크는 어떤 단체 대화방(*앞으로는 '단톡방'이라고 줄여서 부르겠다)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단톡방???'

낯설다. 이런 공간이 온라인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거 질색이다. 나는 모임, 동호회 같은 단체생활이라면 끔찍하게 생각하는 INFJ이기 때문이다. 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와 인사하고, 대화하고, 스스로 불편한 만남을 만드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1인이 바로 나다. 


평소의 나라면 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그 방에서 나갔겠지만, 웬일인지 쭈뼛거리며 서성였다. 선뜻 돌아서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단톡방 제목이 "XXX 아파트 농구동호회"였기 때문이다.


'농구 동호회?'


머릿속에서는 농구동호회가 궁금해 죽을 것 같은 '호기심 세포'와 어색한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INFJ 세포'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뭐지? 동호회에 들어가서 농구하면 재밌으려나?'

'그렇지만 모임에 나가면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내키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고 그런 거 아니야?'


어느 한쪽으로도 마음이 기울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안녕하세요?"하고 첫인사를 남긴 뒤 이후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톡방에 머물렀다. 다행히 단톡방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도 많지 않고, 대화도 활발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 덕에 내가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오프라인 맥주 모임 공지와 주말 오후 농구 모임 공지가 있었지만, 나는 슬슬 눈치만 볼뿐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그런데 보아하니 몇몇 '인싸'들은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톡방의 대화를 주도하고 모임도 활발히 참석하는 것 같았다. 슬슬 단톡방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살짝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나만 소외되는 것 아닌지, 막상 농구 모임에 나갔을 때 너무 뻘쭘해지는 건 아닌지.


그래서 한번 큰 마음먹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기로 했다. 아파트 실내체육관에서 모이기로 한 날 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체육관으로 갔다. 아무래도 모여있는 사람들 틈에 끼는 것보다는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할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시간은 예상외로 좀 길었다. 몸은 다 풀리고 슬슬 지쳐가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살짝 지쳐가고 있을 때 한 명이 등장했다. 마음속으로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지만 차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무심히 있다가 먼저 슬쩍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저 혹시 동호회에서 오신 거예요?"

"아.. 네..."

"아 반갑습니다. 전 XXX이라고 합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단톡방의 닉네임으로 나를 소개했다. 닉네임으로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여간 오글거리는 일이 아니었지만, 동호회 모임에서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짤막한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연습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제 방금 전처럼 대충대충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는 눈이 하나 생겼으니 슛 하나, 드리블 하나에도 '간지'를 좀 신경 써야 한다. 내 폼도 신경 쓰며 곁눈질로는 상대의 실력도 잰다. 얼핏 봐도 대략 전투력이 보인다. 보아하니 피지컬은 좋은데 기교는 내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좀 허세를 부려도 될 듯하다. 괜히 다리 사이로 드리블도 하고, 3점 슛도 한 번씩 쏘면서 은근 실력을 뽐내본다. 


한 명이 오고 나니 금세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모인 사람끼리 시합을 하게 되었다. 시합은 3대 3 게임이다. 얼마만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농구시합인가? 두근두근하다. 이제 한 시간 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쏟아내려 하는데 막상 시합이 시작되니 손발은 자꾸 엇박자만 나고, 다리는 딱풀로 붙여놓은 것 마냥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실속도 없이 땀만 쏟아내고 숨은 턱밑까지 차오른다. 심장은 가슴을 뚫고 나올 기세이다. 


하지만 재밌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슛도 패스도 드리블도 엉망진창이지만 그저 즐겁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려 농구를 하고 있으니 마냥 기뻤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고, 웃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3시간이나 뛰었다.

아무래도 열심히 동호회 활동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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