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식 Aug 07. 2022

다시 농구!!

I'm Back!

운이 좋게도 신축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난생처음 아파트를 분양받는 과정들이 여럿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 한다면, 아마 첫 모델하우스 방문을 꼽을 것이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찾아간 모델하우스였지만, 한 순간에 내 관심을 끈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파트 모형 속 '실내체육관'이었다. 


'실내체육관'이 있다고!


정녕? 세상에! 레알?

어릴 적부터 실내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는 것은 나의 로망이었다. 처음 농구를 접했던 시절에는 항상 울퉁불퉁한 운동장 흙바닥이 나의 코트였고, 조금 더 큰 후에도 아스팔트 위 농구대 하나 덩그러니 있는 길거리가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농구장이었다. 감히 실내체육관이라니! 어디 그런 호강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는가? 그런 곳은 진짜 농구선수들이나 쓰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실내체육관에서 농구를 할 수 있다고? 그건 마치 꿈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4년이 흐르고 그 꿈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실내체육관을 포함한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가오픈 행사가 있었다.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시설들을 오픈하고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난 퇴근하자마자 아내를 보채 같이 구경을 갔다. 먼저 지하 1층에는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이 있었다. 골프연습장은 관심분야가 아니니 둘러보기는 하나 별 느낌은 없다. 스치듯이 지나쳐 헬스장으로 향했다. 헬스장은 그나마 관심은 있었지만 대략 어떤 기구들이 있는지만 훑어보고 나왔다.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실내체육관을 보기 위해 한 층을 더 내려갔다. 사람들로 바글거리던 지하 1층과는 달리 지하 2층은 한산했다. 사실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있었고, 내부는 모두 소등이 된 상태라 밖에서는 안쪽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적막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것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호기심은 두려움보다 강했다. 


체육관 문을 열고 빼꼼히 들어섰다. 손을 더듬어 입구에 있는 조명을 찾아냈다. 그리고 스위치를 올리자 순간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조명이 환하게 밝혀지며 실내 체육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윤기가 흐르는 마룻바닥 위로 그려진 하얀색 라인이 이곳이 농구 코트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코트 양끝에는 농구대 2개가 마주 보고 서 있다. 투명한 아크릴 백보드에 견고한 림과 거기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그물을 보니 심장이 들썩였다. 티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양볼에는 찡한 느낌이 들었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 내가 이런 곳에서 농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잔뜩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신발장 속에 묵혀 두었던 농구공을 꺼내 먼지를 털고 바닥에 살짝 튕겨보았다. '탕'하는 경쾌한 소리 대신 '푹'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진다. 너무 오랫동안 묵혀둔 탓에 바람이 다 빠진 듯하다. 신발장을 활짝 열여 신을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본다. 러닝화, 로퍼, 크록스, 스니커즈, 어글리 슈즈... 내 신발만 대략 10켤레 정도 되는데, 막상 농구에 걸맞은 신발은 보이지 않는다.


참 오랫동안 농구를 잊고 살긴 했나 보다.




실내체육관이 오픈하는 날이 왔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빵빵하게 공기를 채운 농구공과 새로 산 농구화를 들고 실내체육관을 향했다. 애타는 마음에 너무 서둘러 찾아간 탓인지 오픈 첫날이지만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 한 명만이 홀로 농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내심 잘 됐다 싶었다. 오랜만에 하는 농구이니 바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것보다는 혼자 연습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먼저 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신발을 갈아신었다. 천천히 신발끈을 조이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 보려 했지만, 자꾸만 심장이 콩닥거렸다. 신발끈의 매듭을 짓고 깊게 숨을 내쉬며 가볍게 양손을 흔드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얼마만의 농구코트인가? 마지막 기억조차 희미하다. 난 한 손에 농구공을 든 채 하얀 선을 넘어 코트 안으로 들어섰다. 꿈에도 그리던 그곳에 드디어. 


먼저 강하게 농구공을 마룻바닥에 튕겨본다.


'탕~!'

경쾌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 뒤 금세 체육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모두에게 알려라! 내가 돌아왔음을. 


'탕~탕~!'

오랜만에 오른손과 왼손이 합을 맞춰본다. 몸이 기억하는 리듬을 따라 공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다시 왼손으로 옮겨졌다. 서서히 잠들어있던 농구 세포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탕~탕~탕~!'

드리블을 하며 속도를 내서 골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가볍게 뛰어올라 공을 림 위에 올려놓는다. 공은 그물을 깨끗하게 가른 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아직 죽지 않았군!' 농구에 대한 열정이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탕~탕~타탕!'

가볍게 두 번 드리블하고 골대를 향해 달리는 척하다 갑자기 방향을 바꿔 점프슛을 날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은 아쉽게도 림에 맞고 다른 곳으로 튀어버렸다. 얼른 공을 쫓아가 다시 잡고 슛을 던졌다. 손끝을 떠난 공은 골대를 향해 비행을 시작한다. 높게 떠올랐다가 정점에 이르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점점 림에 가까워진다.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손끝의 감각은 나쁘지 않았는데, 과연 골대 안으로 들어갈까? 


'촥~!'

공이 림을 스치지도 않고 그물을 통과했을 때만 들리는 깨끗한 소리이다. 

오랜만에 들으니 더욱 짜릿하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오래 기다렸지? 내가 돌아왔다! 농구코트로!


"I'm Back!"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잠시 야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농구코트에 복귀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 바스켓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