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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Aug 24. 2022

7번째 수술실

결국 무릎 수술을 받게 되었다.

무릎이 성치 않다고 느낀 것은 첫 번째 농구모임 다음 날이었다.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계단을 오르는데 무릎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너무 무리해서 염증이 생겼거나 근육통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무릎 통증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파리떼처럼 나를 성가시게 했다.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다시금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쉬면 저절로 낫겠거니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결국 2달 만에 병원을 찾아갔을 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물리치료로 시작했지만 좀처럼 통증은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MRI 검사까지 한 뒤 의사는 나에게 '수술'을 제안했다. 무릎 연골의 손상이 심각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이란 단어는 직접 듣고도 내 귀를 의심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멀쩡히 걸어서 나왔는데, 갑자기 수술이라니!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곧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대로 무릎을 완전히 망가트릴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수술에 동의했고, 이로써 7번째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참 다사다난한 인생이라고 해야 하나?

남들은 평생 한 번도 오르지 못할 수술대 위를 7번이나 오르게 되었다.

갑자기 영화 암살의 이정재의 대사가 생각났다.


"1911년 경성에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 맞은 자리입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여긴 22년 상해 황포탄에서! 27년 하바롭스크에서! 32년 이츠모호 폭파 사건 때, 그리고 이 심장 옆은 33년에!"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랑질을 하고 있을지도.


"1982년 XX병원에서 고관절 수술 때 칼로 짼 자리입니다. 열두 바늘을 꿰매었지요. 여긴 02년 코뼈 골절! 08년 맹장수술! 10년 발등 골절! 22년 목디스크 폭파 사건 때, 그리고 이번에는 무릎 연골 수술!"


자업자득인지? 비운인 건지?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여하튼 화려한 수술 경력 덕분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하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일단 수술이 결정되면 입원을 위한 절차가 진행된다. 원무과에서 입원 접수를 하고 코로나 검사를 한다. 그다음에는 수술 전 소변검사,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가 차례대로 이어진다. 아마도 이건 마취 부작용 때문일 것이다. 검사를 마친 후에는 병동으로 이동해서 환자복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손목에 링거를 연결하고 나면 이제야 비로소 환자다워진다.

  

이때부터는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다. 가만히 누워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를 싣고 갈 바퀴 달린 침대가 온다. 수술실로 이동할 시간이다. 침대를 갈아타고 가만히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새삼스런 사실을 한 가지 깨닫게 된다. 평소에는 천장을 잘 안 쳐다본다는 것이다. 분명 얼마 전 지나온 복도를 따라가고 있을 텐데 천정만을 바라보며 가고 있노라면 마치 처음 와본 곳처럼 이 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무리 7번째라고는 하지만 이때만큼은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낯선 곳 어딘가로 끌려가는 느낌. 내 운명은 이제 곧 누군가에게 맡겨질 것이고, 난 그저 그 결과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가벼운 긴장감과 함께 적당히 무거운 체념이 섞인 오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순간들은 언제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7번째 수술실이다.

수술실은 무겁고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실제로 에어컨을 가동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 건지는 좀 헷갈리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적막 속에 사람들은 이따금 짤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수술실 한가운데 누운 채 여전히 시선은 천정에 고정하고 있다. 평소라면 호기심에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고 있었을 테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옆에 누군가 다가와서 내 이름을 물었다.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마취가 시작되면 난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른 채 모든 일이 끝난 후 병상 위에서 눈을 뜰 것이다. 그래서 그냥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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