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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Sep 12. 2022

기억주사 #3. 신상무

'도대체 무슨 회사가 임상시험 비용을 300만 원이나 지급하고, 일은 또 이리 비밀스럽게 진행을 시키는 거지? 이 사람들을 믿고 임상시험에 참가해도 되는 건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상담실을 나선 다음부터 집에 돌아오는 내내 김부장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궁금중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오히려 더 많은 궁금증만 얻은 채 돌아왔다. 김부장은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아까 받은 명함을 꺼내 회사 이름을 검색했다.


"ILS Biologics"


회사 홈페이지가 있었지만 임상시험과 관련된 정보는 전무했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외국계 바이오 기업인 듯했다.


'스웨덴? 왜 하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서 임상시험을 하겠다고 난리야?'

얼른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은 많았지만, 어디서도 답은 찾을 수 없었다. 회사 규모나 재정 상태도 확인하기 어려웠고, 판매하는 것도 일반적인 복제약들 뿐이었다. 그냥 얼핏 보기에는 보통의 바이오 기업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억주사"

터무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한번 검색을 해봤다. 역시나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김부장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인 것이 명백해 보였다. 이 상황에서 김부장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그는 곰곰이 자신이 얻는 이득과 손해를 따져보기로 했다.


'생각해보자. 내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득은 300만 원의 수입이다. 그것 외에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지만, 그건 명백한 참가 사유이다. 어디서 그런 큰돈을 쉽게 벌 수 있겠는가? 며칠 주사 맞고 누워있다가 나오면 300만 원이 공짜로 생긴다니! 이건 정말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그럼 그 대가는? 개인 휴가를 써야 한다. 그리고 휴가를 신상무에게 결재받아야 한다.'


'신상무!'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김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상무는 김부장의 직속 상사이지만 나이로는 10살이 아래이고, 입사 경력으로 치면 20년 후배이다. 입사 후 10년 만에 임원까지 진급한 초고속 승진 케이스이지만, 그의 이런 출세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회사에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신상무는 그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신상무의 입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회사 내의 이슈였다. 인사과 담당자는 그를 입사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최고 고과에 조기 진급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신상무는 그런 존재였다. 당연히 입사 후에도 사람들의 이목은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가 출근을 하고 나면 여자사원들은 그의 윤기가 흐르는 고급 정장과 명품 핸드백에 대한 품평회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회사에 들어오는 신상무를 마주친 사람들은 그가 건넨 손인사가 무슨 신의 은총인 양 감사함에 몸들 바를 몰라하다, 그 전율과 감동을 옆의 동료에게 전달했고, 그 이야기는 다시 또 다른 동료에게, 또 다른 동료에게 전달되며 순식간에 번져나가 어느샌가 신상무는 사원들 사이에서 우상처럼 숭배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안에서 신상무의 의견은 언제나 존중받았다. 가끔 그가 이상한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그에게는 또 다른 계획이 있으리라 확신했고, 그 믿음은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신상무의 앞머리처럼 아주 단단하게 고정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신상무의 자질에 대해서 일말의 의구심을 품은 몇 안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김부장이다. 사실 김부장은 신입사원 시절 신상무의 사수였다. 처음 입사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상무를 가르친 사람이 바로 김부장이다. 김부장도 당연히 신상무의 배경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그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막상 겪어보니 신상무에게서 그리 스마트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좀 독창적인 면은 인정하지만, 확실히 영리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미국의 일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거지?'

김부장의 의심은 싹트기 시작했고, 가끔 자신도 모르게 신상무의 일처리가 서툰 모습을 보이면 이런 것 하나 똑바로 못하냐는 투로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신상무는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은 듯하다. 신상무는 임원이 되자마자 김부장 아랫사람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에서 김부장은 자연스레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런 상황에서 김부장은 버틴 것만으로도 용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뒤로 김부장은 사람들 사이에서 '월급 기생충'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신상무는 김부장의 직속 상사이자 모두의 존경을 받는 임원이 되었다. 그런 신상무를 마주하는 것은 김부장에게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 '돈? 신상무?'


해 질 녘 김부장은 아까 받은 명함을 다시 지갑에서 꺼내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임상시험에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스케줄 답장 바랍니다."


신상무와 마주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지만, 300만 원 앞에서는 그마저도 무력했다.




월요일 아침.

김부장은 출근한 이후로 미어캣처럼 목을 뺀 채 신상무의 집무실 쪽만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신상무의 비서에게는 별 그림이 들어간 커피로 조공을 마친 상태이다. 김부장은 비서를 통해 신상무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며 적절한 타이밍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전 9시 45분, 드디어 기다리던 타이밍이 왔다. 비서의 전갈에 의하면 신상무가 방금 임원회의를 마치고 돌아왔고, 회의에서도 별일은 없었다고 한다. 김부장은 급히 몸을 일으켜 신상무의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정확히 두 번. 간결하고 빠른 템포 그리고 적당한 세기로 김부장은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네. 들어오세요."

평소의 신상무다운 젠틀하면서도 중후한 목소리이다. 김부장은 문을 조심스레 열고 신상무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쿠! 김부장님이 웬일로 제 방에 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신상무는 이 인간이 웬일로 나를 찾아왔는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네, 상무님.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잠시 좀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나저나 자제분들하고 사모님은 안녕히 계시죠?"

"아.. 뭐 그런 것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쓸데없이 가족들 안부를 캐묻는 김부장이 신상무는 탐탁지 않았다.


"아, 네. 이제 자재분들도 중학교 입학하실 때 아닌가요? 요즘 애들은 말을 그렇게 안 듣는다고 하던데, 그래도 뭐 상무님 자재분들이니깐 뭐...."

"네, 그래서 용건이 뭔가요?"

눈치 없이 계속 가족 이야기로 심기를 건드리는 김부장의 말을 잘라내고 신상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저 휴가를 좀 쓰고 싶어서..."

"알겠습니다. 결재 올리세요. 저는 다음 회의 준비를 빨리 해야 되니깐 이만 가보세요."

별것도 아닌 일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뺏고 있는 김부장에게 신상무는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누르며 어서 내 방에서 나가주길 바랬다.


"네, 상무님. 감사합니다."

왜 갑자기 휴가를 쓰는지 이유조차 묻지 않는 신상무에게 김부장은 다시 한번 90도로 인사를 했지만, 신상무는 그런 김부장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야박한 신상무의 태도에 김부장은 화가 날 법도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무사히 휴가를 허락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김부장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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