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억주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식 Oct 01. 2022

기억주사 #7. 피의 가격

오전 10시.

김부장은 2층에 내려왔지만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굉장히 바빠 보인다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허둥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나저나 김부장은 누구든 붙잡고 그가 가야 할 곳을 물어야 할판인데, 다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정신없이 움직이는 통에 한참을 그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김부장 겨우 앞을 지나는 간호사 한 명을 붙잡고 그가 가야 할 곳을 물을 수 있었다.


"왼쪽으로 쭉 가셔서 채혈, 채뇨라고 적힌 방으로 들어가세요."


김부장은 가르쳐준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방들마다 문 옆의 명패에는 방의 용도가 적혀 있었다. 복도의 첫 번째 방은 상담실이었다. 상담실은 꽤 여러 개가 있었는데, 모두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내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상담실 다음은 창고라고 적힌 곳이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약품이나 주사 같은 것들이 안에 쌓여 있으리라 상상되었다. 그다음 채혈실이 나왔다. 김부장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두 명의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 명은 연한 핑크색 간호사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연한 청색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먼저 핑크색 간호사복을 입은 여자가 김부장의 인적사항을 물었다. 김부장은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 준비된 의자에 앉아 채혈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때, 옆에 있던 청색 옷의 간호사가 김부장에게 종이컵을 하나 내밀며 말을 했다.


"채혈하신 다음에 여기 선이 그어진 곳까지 소변을 받고 컵은 화장실에 그냥 두고 가세요."

"네."


김부장은 짧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 간호사는 등을 돌려 다른 업무를 시작했다.


"팔 이리 주세요."

옆에 있던 핑크색 유니폼 간호사가 김부장의 주의를 상기시켰다. 김부장은 소매를 걷어붙인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간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김부장의 팔에 주삿바늘을 꼽더니 채혈관을 연결해서 김부장의 피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문득 김부장은 지금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피의 가격이 궁금해졌다.


'아까 설명대로라면 여기에 머무는 동안 총 3번의 채뇨와 채혈이 있을 것이고, 내가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나의 피와 오줌이 전부이니, 저들이 나한테 주기로 한 300만 원은 오롯이 내 피와 오줌의 대가인 것이겠지. 그럼 1번의 채뇨와 채혈의 가격은 100만 원일 테고, 그중에서 피와 오줌의 가격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피가 오줌보다는 4배 정도 소중하다고 가정하면 지금 내 피의 가격은 대략 80만 원 정도 되겠네.'


김부장은 대략 암산으로 지금 저 작은 통에 채워지고 있는 자신의 피의 가격을 계산했다. 김부장의 80만 원짜리 피는 각각 뚜껑 색깔이 다른 3개의 시험관에 나눠서 담겼다. 80만 원짜리 피를 몸에서 뽑아낸 김부장은 이어서 20만 원짜리 오줌을 쏟아내려 화장실로 이동했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김부장은 자신의 몸으로 이런 값비싼 것들을 쏟아진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김부장 자신이 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기분이었다.


채혈과 채뇨를 마친 김부장은 곧바로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낯선 사람과 한 공간 안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김부장은 대신 건물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다. 김부장은 1층으로 내려간 후 처음 들어왔던 회전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회전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문을 잠가 놓은 것이었다. 김부장은 입소 후 처음 들어섰던 방으로 가서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저 잠깐 밖에 나가고 싶은데, 문이 잠겨 있네요."

"죄송하지만 처음 입소 때 설명드린 것처럼 4박 5일간 외부 출입은 안되시거든요. 불편하시겠지만 이해 부탁드려요."


정중한 말투였지만, 앞으로 당신은 5일간 감금되었으니 꼼짝 말고 이 안에 있으라는 의미는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김부장도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던 설명이 기억났다.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도리없이 김 부장은 다시 404호로 돌아가야 했다.




"아저씨!"

채이서는 검진을 다녀오자마자 김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것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확실해요. 아기들한테서 기억 세포를 뽑아낸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기억 세포라는 게 다른데 있지는 않을 테고, 사람 머리에 있는 것일 텐데 그럼 머리에 주사를 꽂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멀쩡한 부모라면 누가 아기 머리에 주삿바늘 꽂는 걸 찬성하겠어요? 안 그래요?"

"그럼 답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인 거죠. 아이들한테서 기억 세포를 뽑아냈다는 것이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돈 때문에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했거나. 근데 어떤 경우라도 우리한테 한 말은 거짓말이에요. 아기들한테서 뽑아낸 게 아니라 해도 거짓말이고, 진짜 아기들한테서 뽑아낸 것이라도 사랑받는 행복한 아이들은 아니겠죠. 혹시 어디 아프리카의 굶어 죽기 직전의 아이들이라면 모를까 누가 아기 머리에 주삿바늘 꽂는 걸 동의하겠어요?"


채이서가 하는 소리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김부장은 별로 그의 말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김부장은 이 주사에 대해서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안에 무엇이 들었건 자신에게 별 탈만 없고, 약속한 돈만 받을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난....."

김부장이 대꾸할 말을  억지로 짜내고 있는데, 불쑥 방문이 열리더니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다.


"김XX님. 이따 접종하실 때 수면마취를 하셔야 되거든요. 그래서 먼저 여기 동의서에 서명 좀 해주세요."

"이거 꼭 해야 하는 건가요?"

"네, 안 하시면 접종을 진행할 수 없어요. 이게 정확한 위치에 진행을 해야 돼서, 환자분이 약간이라도 미동을 하시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꼭 수면마취가 필요하고요. 동의하시기 어렵다면 지금이라도 퇴소를 하셔야 해요."


처음부터 김부장에게 선택권은 없었던 셈이다. 김부장은 체념하고 간호사가 내민 서류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서명을 했다.


"채이서님. 같이 설명 들으셨죠? 여기 서명 좀..."

"아니,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나보고 여기 사인을 하라는 거예요?"

대뜸 성을 내며 고함을 치는 채이서 때문에 간호사는 놀라서 한 발을 물러섰지만, 이내 전열을 재정비하고 단호하게 대꾸했다.


"접종 여부는 채이서님이 판단하시면 되고요. 정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퇴소하시면 돼요. 저희가 절대 강요하는 건 아니니깐, 오해는 마세요."

이런 식으로 나오니 채이서도 별로 대꾸할 말이 없다. 이 겉만 번지르르한 청년은 아무리 찜찜해도 공짜로 300만 원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그냥 차 버릴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거기 CCTV 있어요?"

"네, 접종하시는 영상은 다 CCTV로 녹화가 돼요. 나중에 문제 생기면 경찰 입회하에 다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럼...."

결국 죽어도 안 될것처럼 날뛰던 채이서도 마지못해 서류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주사 #6. 채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