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나를 이해하는 여정, '주말미식회' 그 첫번째 모임
우리는 이론적으로 평생 3만 시간을 음식을 먹는 일,
즉 맛과 향을 즐기는 일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맛'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저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느낌 중 하나일 뿐일까요?
아니면 실체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경험적으로 누구와 먹는지에 따라, 어디서 먹었는지에 따라, 그날의 내 기분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맛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중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또 우리는 하루에도 최소 3번은 맛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맛 혹은 음식 선택을 어떤 동기로, 누구에 의해, 어떤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쌓인 수많은 선택들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이렇게 진지하면서도 특별한 궁금증을 가진 12명의 '미식' 탐구자들과 그들의 질문에 기꺼이 먼저 고민해본 자로 그들의 여정을 가이드하고자 하는 1명의 '미식'연구자가 만나는 자리가 6월 29일(일)에 추억의 홍대 앞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넷플연가의 '주말미식회' 첫번째 모임입니다.
'맛'은 우리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숨겨진 원시인의 욕망,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현대인에게 두드러지는 타인의 욕망을 따라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맛'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먹는 음식 혹은 맛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굳이 200년 전 브리아 사바랭이[미식예찬]에서 "당신이 먹는 음식을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여러가지 맛의 레이어를 가진 티라미슈라고 생각해요.(추추님)
매운잠뽕이요.
여러가지를 다 잘하고 싶어서 뜨겁게 노력하고 있는 제 자신 같아요.(승리님)
그릭요거트로 하겠습니다.
어떤 것을 잘 수용하고 잘 융합해서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규완님)
"나를 음식으로 표현한다면?(한 문장 혹은 해시태그 형태)"라는 모임지기의 질문에 인상적인 답변을 주신 분들의 문장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맛 혹은 음식에 우리의 욕망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 이제 공감이 되시나요?^^
두번째로는 음식 발란스 게임을 통해 나의 성향을 파악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맛은 개인적이라 취향이 있고, 반면에 사회적이라 유행이 있습니다. [맛의 원리]라는 책에서 이 문구를 발견했을때 느꼈던 통쾌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서 모임 참석자들과도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백인백색인 사람의 감각과 취향은 맛에도 어김없이 반영됩니다.
그러나 맛에는 사회적인 유행도 존재합니다. 만약 바나나 우유가 70년대가 아닌 지금 출시되었다면 과거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희소성을 잃고 후추가 중세 이후 그 영예를 잃은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시절 바나나는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바나나 향의 우유가 그런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테니까요.
맛은 사회성 덕분에 다양성 뿐만 아니라 일관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요리나 맛집이 존재하는 것이 그 이유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각자 백인백색의 감각을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공통적으로 맛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던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구와 뛰어난 사회성으로 훈련된 공감력과 적응력 등으로 공통적인 입맛을 갖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론들을 커리큘럼의 사이사이에 숨겨두고 모임장의 권유로 음식 발란스 게임을 통해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 참가자들이 결과에 동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말해보면서 자신의 성향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울러 식당을 평가하는 기준들을 말해보면서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참석자에게는 공통점을, 자신과 성향이 다른 참석자들과는 서로 다른점을 찾아보며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모임을 기획한 사람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었을 듯 합니다.
저는 원재료 함유량이 중요해요.
냉면을 먹을 때도 면의 메밀 함유량 이런 게 저한테는 중요한 것 같고요. (보미님)
다들 살짝 타이트한 기준을 가지고 계시는데,
저는 기준이 별로 높지 않기 때문에 알바생이 좀 기분이 안 좋으면
서비스가 그때는 좀 낮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아영님)
스타벅스로 예를 들어서 보면 자리 배치 같은 것도 그 공간을 꽉 채워서 다 활용하는 느낌이라거나, 테이블 구조나 디자인을 약간씩 다르게 변형해 억지로 구겨넣었다는 느낌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해 놓은 것들을 느낄 수가 있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잘 갖춰진 시스템을 가진 곳을 좋아합니다.(조현님)
후반전에는 우여곡절 끝에 강남역 킨코스점에서 주인을 잃고 심난해 하던 저의 아로마키트를 퀵서비스로 받아 아슬아슬하게 "감각-감정-기억의 연결찾기"를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테스트는 냄새가 과거의 생생한 기억이나 감정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현상을 말하는 "프루스트 현상"을 경험해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뇌는 맛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뇌가 기억하는 것은 후각이에요. 후각은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편도체와 해마에 직접 영향을 주어서 그 향을 처음 느꼈던 순간을 의도성이 없이 떠오르게 합니다. 반면에 맛에 대해서는 우리의 뇌는 맛의 차이만을 감별하는 데 급급합니다. 아까 먹었던 것, 어저께 먹었던 것과 지금 먹은 것이 다른지만 구분해서 다르지 않다라고 느끼면 바로 또 다른 흥미거리를 찾아 뇌는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맛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는 사례는 발견하기 어려울 거에요.
10개의 향을 감각적으로 느껴보면서 각자가 몇개의 향을 맞추었는지도 확인해보고. 그 향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나몬 향을 맡으면서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고 나서
디저트로 나온 수정과의 기분 좋은 달달한 향으로 입가심을 했던
만족스러웠던 식사 기억이 났어요.(예린님)
아몬드 향은 달콤한 팝콘 냄새가 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관에서 알바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진용님)
남겨두고 싶었던 이야기와 문장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하며 아홉개의 소중한 인연이 저를 중심으로 만나 연결되었던 아주아주 소중했던 시간에 대한 정리를 마치려 합니다. 첫번째 모임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 벌써부터 서촌으로 필드트립을 떠날 2번째 모임이 기대됩니다.
한달 뒤에는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신 3분의 새로운 인연과 함께 첫 모임에 참석해주셨던 아홉분 모두를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번째 모임 후에는 2번째 모임의 장소, 첫번째 뒤풀이 장소. 유명 셰프님들의 숨겨든 인생맛집까지 정리해서 주말미식회 만의 맛집 가이드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7월 27일에 또 뵙겠습니다.
이범준
넷플연가 주말미식회 모임장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