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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음식, 나의 믿을 구석

넷플연가_주말미식회_2번째 만남

by 송지

지난 일요일, 넷플연가 주말미식회의 두 번째 만남이 있었습니다. 폭염을 뚫고 아홉 분의 멤버들이 70여 년 전통의 서촌 중식 노포 '차이치'에 모여주셨습니다.

서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한옥 지붕 아래 과거의 정취와 현재의 매력이 공존하는 서촌은 '경복궁 서측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하문로와 옥인길 일대를 아우르는 이 지역은 청와대 개방, 서울시 글로컬 상권 지정, 한국 관광 활성화 정책 등에 힘입어 서울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북촌과 삼청동 상권과의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 중 하나입니다.

특히 서촌은 골목 특성상 대형 프랜차이즈 입점이 제한되어, 기존 상권의 고유한 색깔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경복궁역 인근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부터 골목 깊숙한 곳의 소규모 상점들까지, 오랜 세월을 버텨온 노포와 새롭게 문을 연 미식 공간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차이치를 선택한 이유: 백투베이직과 스마트 세이버

모임 장소로 '차이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백투베이직"과 "스마트 세이버"라는 외식 트렌드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기름통을 씻는다는 이유로 화제가 된 치킨집처럼, 요즘 외식업계는 SNS를 통해 평판이 순식간에 좌우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SNS의 과도한 파급력으로 인해 외식업의 본질보다는 화제성에만 치중하는 곳들이 주목받게 되었고, 이런 곳에서 실망스러운 경험을 한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더욱 까다로워졌습니다. 그래서 기본과 일관성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업력은 기본의 가치를 지킨 일관성이라는 무적의 무기입니다. 이런 무기는 대외적 불확실성이 클 때 가장 빛을 발합니다. 소비자들이 지출에 더욱 신중해지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지금, 노포에서 배워야 할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임장의 반성과 성찰

하지만 이런 필드트립 형태의 모임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저에게 몇 가지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 2부 장소에 남아 한참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째, 식당과 서점이라는 집중도가 낮은 환경에서 3주간 공들여 준비한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차이치에 대한 한줄평이나 만두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점이 특히 아쉬웠습니다.

둘째, 멤버들의 이야기에서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끌어내지 못한 순발력 부족이었습니다. 삼국지 애호가인 규완님의 이야기에서 제갈공명과 만두의 연관성을 짚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탈리아와 싱가포르 여행 경험을 공유해주신 추추님과 현준님께 현지 음식의 어떤 매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는지 더 자세히 들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를 놓쳤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멤버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위로의 음식에서 찾은 공통점

하지만 '위로의 음식'이라는 주제로 넘어가면서는 의미 있는 발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음식이 주는 위로가 '엄마의 사랑'과 '국물 음식'에서 나온다는 공통점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는 이번 모임에서 얻은 최고의 배움이자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세 번째 모임의 주제인 "국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멤버들이 공유해주신 위로의 음식들을 살펴보면:


재현님은 전주 출장에서 만난 '효자문 식당'의 고기 완자가 들어간 맑은 곰탕을
통해 위로받은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스트레스받는 업무 상황에서 점주님과 함께한 따뜻한 한 끼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하셨죠.
<재현님이 공유해주신 위로의 음식, 효자문식당 곰탕>
예린님은 아버지가 배달해주신 어머니의 삼계탕을 꼽으셨습니다.
온갖 재료를 넣고 정성껏 끓인 삼계탕에서
단순한 음식이 아닌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현준님은 지인과 계획 없이 간 라면 전문점의 시오라면에서
위로를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깔끔한 국물 스타일을 좋아하시는데,
큰 기대 없이 먹었던 그 라면이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고 하셨죠.


황승리님은 인사동 '된장예술'의 된장찌개를 소개해주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갔던 그곳의 짜고 걸쭉한 된장찌개를 치커리와 부추에 비벼 먹던 기억이 을지로에 나올 때마다 발걸음을 이끈다고 하셨습니다.
<황승리님의 위로음식, 인사동 된장예술의 된장찌개>X
민희님은 평소 만두를 좋아하신다며(이 대목에서 호감도 급상승),
기력이 떨어질 때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압구정동 '뉴만둣집'의 만두국과 평양냉면집 '서령'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규완님은 특히 몸이 안 좋을 때 치킨 스프를 곰탕 먹듯 이틀간 드시고
회복한 후 회식에 참석하셨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용님은 제첩국을 비타민처럼 드신다며,
냉동실에 넣어두고 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끓여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믿는 구석의 중요성

『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홍균 원장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차이가 기분 나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차이의 핵심은 바로 '믿는 구석의 존재 유무'라고 설명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순간의 경험이 좋지 않아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많다는 것이죠.


놀랍게도 저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믿는 구석으로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을 꼽았습니다. 의대에서 유급당했을 때도 효과를 본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그 이후로 절대 거창하지 않은 방법으로 믿는 구석을 늘려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는 구석의 크기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입니다.


마무리하며

저는 이번 두 번째 모임의 대화 주제를 통해 멤버 여러분들이 각자의 쓰라린 일상에서 믿는 구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제 진심이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저마다의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오신 발걸음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차이치 만두 속처럼 촉촉함만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폭염 속에서도 주말미식회 두 번째 모임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장염 투혼을 펼치면서도 약속의 소중함을 아는 지성인의 품격을 보여주신 아영님께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넷플연가 <주말미식회> 모임장

이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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