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다의 선물, 주꾸미와 도다리

제철 해산물 이야기

by 송지

봄나물이 귀한 건 '제철'이라는 한정성 때문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육류는 고대부터 부와 계급의 상징이었지만 제철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바다에는 사계절이 있다. 3월과 4월, 바다가 건네주는 봄의 선물은 쭈꾸미와 도다리다.


웅크린 녀석의 신분 상승 — 쭈꾸미

표준어는 '주꾸미'지만 우리는 습관처럼 '쭈꾸미'라고 부른다. 언어학자들은 이 된소리(경음)에서 한국인의 본능을 읽는다. 탄력 있는 식감을 발음 자체로 뇌에 전달하려는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꽤 그럴듯한 해석이다.


조선시대에 주꾸미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서유구의 《전어지》에는 '죽금어(竹今魚)'라 나오는데,
다리 모양이 대나무 잎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주꾸미를 '준어(蹲魚)'라 기록하고 있다.
주꾸미는 위험이 닥치면 자기만의 공간(소라껍데기)으로 들어가
입구를 조개껍데기로 막고 버틴다.
한 번 내 집이라고 정하면 죽어도 안 나가는
주꾸미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고
"웅크리고 있는 생선(준어)"이라고 묘사한 것이다.


잠깐, 정약전을 아시나요? 우리나라 해산물 인문학을 논할 때는 정약전과 <자산어보>가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데 이 대목에서 이들에 대해 짧게 알아보고 넘어가려 한다.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친형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된 그는, 섬 백성들이 바다에 기대어 살면서도 물고기의 습성을 체계적으로 모른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엘리트 관료였던 그가 어부 창대와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며 완성한 《자산어보》는 해양생물 155종을 오늘날의 백과사전 수준으로 분류한 현장 보고서였다. 현대 해양생물학자들이 봐도 놀랄 정도의 정확도를 자랑한다고 한다. '자산(玆山)'의 '자(玆)'는 검다는 뜻으로 흑산도를 가리키니, 자산어보란 "흑산도의 바다 보물 기록"이다.


주꾸미가 산란기가 되면 빈 소라껍데기 속에 숨어드는 습성 때문에, 조상들은 소라껍데기를 줄줄이 엮어 바다에 던져두었다. '소라방' 어법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지금도 최상급 주꾸미를 수확하는 방법으로 쓰인다. 주꾸미는 현재도 100% 자연산이다. 양식이 불가능한 이유는 부화 후 성장 과정에서 서로 잡아먹는 '카니발리즘(동족 포식)'이 극심하고, 1년밖에 살지 못해 막대한 시설 투자 대비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자연 산란 서식장을 인위적으로 조성하고, 5~8월을 금어기로 지정해 개체수를 보호한다. 최근에는 드론과 수중 AI 카메라로 소라방에 주꾸미가 얼마나 찼는지 확인한 뒤 수확 시기를 결정하는 스마트 어업도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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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보다 못하다던 주꾸미가

다리가 8개인 주꾸미는 낙지, 문어와 같은 팔완류다. 서식지로 구분하면 쭈꾸미는 얕은 바다 모래·자갈밭, 낙지는 갯벌 속, 문어는 암초 지대와 깊은 바다에 산다.


과거 쭈꾸미의 신세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낙지나 문어에 비해 크기가 작고 흔하다는 이유로 '하급' 취급을 받았다. 정약전조차 "맛이 담백하고 회·국·구이에 모두 좋지만 낙지만 못하다"고 평했을 정도다. 그러나 서해안 어민들에게 주꾸미는 낙지보다 훨씬 예측 가능한 식량이었다. 갯벌을 파헤쳐야 하는 낙지와 달리, 주꾸미는 소라방만 던져두면 스스로 찾아오는 '기특한 손님'이었으니까.


신분 상승은 2000년대 웰빙 열풍과 함께 찾아왔다. 쭈꾸미의 타우린 함량이 낙지의 2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상이 급변했다. 흔해서 대접받지 못하던 녀석이 이제는 알배기 한 마리에 수천 원을 호가한다. 낙지가 가을의 힘이라면, 주꾸미는 봄의 생명력이다라는 과학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알배기의 미학

주꾸미를 문어·낙지·오징어와 미식적으로 비교하면 이렇다.


오징어 — 살이 두껍고 단백질이 응고되면 조직감이 단단해져 건조·튀김·볶음에 제격

낙지 — 지방이 거의 없고 근육이 가늘어 생식(탕탕이)이나 살짝 익히는 요리에 최적

문어 — 콜라겐 함량이 높아 얇게 썰어 숙회로 먹거나 슬로우 쿠킹 스테이크로 즐기기 좋음

주꾸미 — 낙지의 부드러움과 문어의 감칠맛을 동시에 가짐. 결정적으로, 유일하게 '알'이 식재료의 주인공이 되는 종.


알배기'란 산란을 앞두고 쭈꾸미가 영양분을 몸통에 꽉 채워
알이 비대해진 상태를 말한다. 이 알은 흔히 쌀밥에 비유된다.
보릿고개를 앞둔 이른 봄,
쌀이 귀했던 시절에 하얗게 터져 나오는 쭈꾸미 알은
대리만족이자 풍요의 상징이었다.
일본에서도 주꾸미를 '이이다코(飯蛸)', 즉 '밥문어'라 부르는데
머릿속 알이 쌀밥 같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알이 가장 탐스럽게 차오르는 황금기는 3월 말~4월 중순이다. 주요 산지는 충남 서천 마량항이 가장 유명하고, 올해 주꾸미 축제는 3월 21일부터 4월 5일까지 열린다. 충남 보령 무창포, 전북 군산과 부안도 알이 굵기로 소문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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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꾸미 요리

주꾸미는 우리나라 외에 몇몇 나라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즐겨 먹는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서 즐겨 먹는데 이 나라들은 유럽에서 두족류(문어, 오징어, 주꾸미)를 가장 사랑하는 지역이다. 이들은 주꾸미를 주로 토마토 소스에 졸이거나(스튜), 화이트 와인과 올리브유를 넣고 살짝 데쳐 샐러드로 먹는다. 그러나 우리처럼 쫄깃한 식감을 강조하기보다, 와인이나 식초에 재워 조직을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 먹는 것을 선호한다.


일본에서는 주로 간장 조림(니모노)이나 초밥(스시) 재료로 쓰이며, 아주 작은 개체들을 통째로 조려 먹는 방식을 즐긴다.


우리나라 수입 주꾸미의 주산지인 베트남과 태국에서는 주로 그릴 구이나 해산물 수프(똠얌 등)의 재료로 활용한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주꾸미를 숯불에 구워 매콤새콤한 소스에 찍어 먹는다.


요리할 때 꼭 알아야 할 것

미국 조리학교 시절 오징어 수업에서 배운 원칙이 있다. "The Two-Minute or Two-Hour Rule".

두족류 요리에는 '공포의 구간'이 존재한다. 2분에서 2시간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익히면 열에 의해 단백질은 강하게 수축하고 수분은 빠져나가지만, 콜라겐은 아직 젤라틴으로 변할 만큼 충분한 열을 받지 못한 상태다. 결과는 타이어 같은 식감이다.


2분 이내 — 수분을 머금은 채 근육 수축 직전의 상태. 가장 탱글탱글하고 부드럽다. 주꾸미 샤브샤브, 오징어 숙회의 적정 시간.

2시간 이상 — 콜라겐이 완전히 젤라틴으로 분해되어 포크만 대도 으깨지는 극강의 부드러움을 지닌 상태. 지중해식 오징어찜, 스페인식 문어 요리(뽈뽀)의 방식.


주꾸미는 조직이 더욱 섬세하다. 골든타임은 1분 내외다. 주꾸미를 샤브샤브로 먹을 때는 육수가 끓을 때 쭈꾸미를 넣고 다리가 꽃처럼 말리기 시작하면(10~20초) 즉시 건져내야 한다. 단, 머리(알)는 다리와 분리해 5분 이상 충분히 익혀야 한다. 알의 단백질은 다리 근육보다 응고를 오래 시켜야 '쌀밥' 같은 식감이 나온다. 처음엔 맑은 육수로 다리를 즐기고, 마지막에 머리를 터뜨려 먹물이 우러난 진한 육수로 칼국수나 죽을 끓이면 별미다. 먹물의 핵산 성분이 육수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곁들이 재료는 콩나물(아스파라긴산으로 시원한 맛), 미나리 줄기, 청양고추가 완벽한 궁합을 자랑한다. 콩나물을 먼저 넣어 국물에 시원한 맛을 내고, 주꾸미와 미나리는 함께 넣어 살짝만 익히는 것이 핵심이다.


국산과 수입산 구별법도 알아두자. 국산은 몸통에 선명한 금색 테두리(금테) 문양이 있고 전체적으로 회갈색을 띤다. 수입산은 이 문양이 흐릿하거나 짙은 검은색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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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만들어낸 미학 — 도다리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도다리 쑥국 한 그릇을 먹어야 봄을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고급 봄철 별미가 된 도다리 쑥국이 사실 '가난'이 만들어낸 미학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2월부터 2월까지 산란을 마친 도다리는 살이 빠져 상품 가치가 없었다.
과거 남해안 어촌에서 어부들이 보릿고개를 나기 위해 먹던 것이었다.
지방이 부족한 맛을 보완하고 양을 늘리기 위해 지천에 널린 쑥을 뜯어 넣은 것, 그것이 도다리 쑥국의 시작이었다.


'봄 도다리'의 진짜 이름

우리가 봄 도다리라 부르는 생선의 정확한 이름은 문치가자미다. 진짜 도다리보다 훨씬 많이 잡히고 맛도 좋아 대중적으로 '도다리'라는 이름을 차지하게 됐다. '담배도다리'라 불리는 진짜 도다리는 어획량이 적어 시장에서 보기 힘들고, 대부분 산지에서 소화되거나 아는 미식가들만 찾는 귀한 생선이다.


3월은 산란을 마친 도다리가 다시 살을 찌우기 시작하는 시기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국물이 시원하게 우러나 보양식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봄 도다리(문치가자미) 역시 성장이 느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양식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장에서 만나는 봄 도다리는 100% 자연산이다.


회로 먹으려면 뼈째 썰어라

산란을 마친 초봄의 도다리는 살의 조직감이 연약하다. 따라서 포를 뜨면 식감이 단조롭다. 이때는 세꼬시 방식, 즉 뼈째 썰기를 택하는 것이 좋다. 뼈의 칼슘이 주는 고소함과 씹는 맛이 더해지면, 무른 살의 단점이 오히려 미식적 장점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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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과 도다리, 이 조합에는 과학이 있다

초봄의 쑥에는 비타민 A·C와 미네랄이 응축되어 있다.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고 간 해독과 살균을 돕는다. 산란 후 도다리는 지방은 적지만 대사 효율이 높은 양질의 수용성 단백질과 타우린이 풍부해 간 세포 재생을 돕는다. 겨울 동안 정체됐던 신진대사를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 몸이 강력한 해독제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쑥과 도다리는 최적의 조합이 되는 것이다.


쑥은 오래 끓이면 향이 날아가고 질겨진다. 도다리 쑥국을 집에서 끓일 때는 도다리가 다 익어갈 무렵, 불을 끄기 1분 전에, 쑥을 올려 잔열로 숨만 죽여야 한다. 이렇게 해야 향이 폭발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봄바다는 풍요롭고 관대하다. 소라껍데기에 웅크린 주꾸미도, 산란을 마치고 돌아온 도다리도, 제철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을 내어준다. 그 계절을 알고 먹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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