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New 삼총사 : 봄동, 미나리, 두릅나물
요사이 두쫀쿠의 열풍이 한풀 꺾이면서 보다 화제가 된 음식이 있다. 바로 봄동이다. 그러한 탓인지 올 봄 봄동 가격도 덩달아 들썩였다. 올해 2월에는 도매 기준으로 한 달 새 30% 이상, 전년 같은 시기보다 70~80% 가까이 오르며, 가락시장 기준 15kg 상자에 5만4천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마트에서는 한 포기에 6,000원을 웃도는 경우도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금(金)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이해가 될 만했다.
봄동 인기의 배경에는 기후 변화와 SNS의 파급력이 함께 작용했다. 주요 산지인 전남 진도·해남 지역의 겨울철 기온 변화와 일조량 부족이라는 공급 측의 문제가 있었고, 여기에 SNS에서 '봄동 비빔밥'이 유행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탓도 컸다. 2008년 방영된 〈1박 2일〉의 '강호동 먹방' 클립이 알고리즘을 타고 역주행하며 유튜브·인스타 릴스에서 조회수 245만 회를 넘기면서 재조명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MZ세대 사이에서 조리법이 간단하고 가성비가 좋은 집밥 메뉴로, '웨이팅 없이 싸게' 즐길 수 있다는 반응이 회자되면서 '두쫀쿠' 열풍을 잇는 가성비 대안으로 부상했다. 검색량 500%↑, 언급량 540% 증가라는 수치가 그 인기를 뒷받침한다.
원래 겉절이로 막 무쳐 먹던 서민적인 식재료였던 봄동은,
최근 샐러드나 파스타의 가니시로 활용되는 등
서양의 엔다이브나 로메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식재료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본래 봄동은 '품종'이 아니라 '상태'를 일컫는 이름이었다.
가을에 김장용으로 심은 배추 중 속이 꽉 차지 못해
수확되지 않고 밭에 남겨진 노지배추들이 그 기원이다.
봄동은 추운 계절에 스스로를 지면에 바짝 붙여 납작하게 만드는 생존 방식을 택했다. 더불어 영하의 기온을 견디기 위해 잎의 수분을 줄이고 당분을 높여 이른바 '천연 부동액'을 만든 것이 또 하나의 비결이다. 이 혹독한 버팀의 시간이 봄동 특유의 맛을 완성하는데 일반 배추보다 훨씬 달고 고소하며, 씹을수록 단맛이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아삭한 식감이 바로 그 흔적이다. 볼품은 없지만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 비타민 C가 일반 배추의 2배 가량에 달하고 아미노산도 풍부해, 봄철 춘곤증 예방에도 그만이다.
이제는 봄동용 불결구배추 품종이 따로 개량되어 전문 재배되고 있지만, 재배 방식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전남 완도·진도·해남·신안 등 남도의 따뜻한 기후를 가진 지역에서 9월 말~10월 초에 파종해 노지에서 겨울을 나게 한 뒤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확하는 방식으로, 이 네 지역이 전국 생산량의 90% 이상을 담당한다. 한때 결구 실패종으로 홀대받던 봄동이 이제는 그 맛을 살리기 위한 전용 품종까지 탄생시킨 주인공이 된 셈이다.
배추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토종 배추는 잎이 옆으로 활짝 벌어진 비결구 형태로 오늘날의 봄동과 흡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김장에 쓰이는 배추의 조상은 19세기 말 중국(청나라)에서 들어온 품종으로, 오랑캐를 뜻하는 '호(胡)' 자를 붙여 호배추라 불렀다. 속이 꽉 차 수확량이 많고 수분이 풍부해 아삭하고 맛은 좋지만 우리 기후에는 취약했다. 이를 한국 토양에 맞게 개량해 오늘날의 '한국형 결구배추'를 완성한 인물이 바로 우장춘 박사다.
봄동은 옆으로 활짝 퍼진 비결구 형태가 옛 조선배추와 흡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겨울을 난 호배추'라 할 수 있다. 비슷한 형태로 자주 혼동되는 얼갈이배추는 그 결이 사뭇 다르다. 얼갈이라는 이름은 겨울에 '얼어 있는 땅을 갈아서 심었다'는 데서 유래했으며, 비닐하우스 등 시설 재배로 짧고 연하게 키워낸 탓에 조직이 섬세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봄동은 노지에서 바람과 추위를 고스란히 버텨낸 채소다. 그 시간의 무게가 잎의 두께와 씹히는 단맛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봄동이라는 이름을 '봄'과 '겨울(冬)'의 합성어로 아는 분들이 많지만, 국어학적으로는 '봄'과 '동(꽃대)'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 이름이 문헌에 공식 등장하거나 대중화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70년대 이후 결구배추가 전국적으로 정착하면서, 반대로 '결구되지 않고 노지에서 겨울을 난 배추'를 구별해 부를 이름이 필요해졌다. 그때 남도 지방의 방언이었던 '봄동'이라는 단어가 시장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봄동은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반면 단백질과 지방이 부족하다. 그래서 무엇과 함께 먹느냐가 맛의 완성도를 가른다. 차돌박이를 구워 봄동과 유자 드레싱으로 버무리면 서양식 웜 샐러드처럼 즐길 수 있고, 겉절이에 멸치액젓과 참기름을 듬뿍 넣으면 한국식 봄 샐러드가 된다. 두 가지 모두 봄동의 제맛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봄동 비빔밥을 만들 때는 봄동 잎을 한 입 크기로 썰어 고춧가루·간장·다진 마늘·설탕·액젓으로 버무린 뒤, 밥 한 공기에 얹고 계란프라이를 올리는 것까지는 기본. 마지막에 참기름과 볶은 깨를 넉넉히 두르는 것이 킥이다.
봄동만큼이나 봄의 도래를 알리는 채소가 미나리다. 제철은 지금인 3월부터 5월까지로, 이 시기의 미나리는 줄기가 연하고 향이 가장 진하며 보드라운 식감이 절정에 달한다. 특히 일교차가 큰 초봄에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미나리는 영양분이 가장 풍부한 때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미나리는 단순한 채소 이상이었다. 성균관이나 향교 앞에 '반궁(泮宮)'이라는 연못을 파고 미나리를 심었는데, 이를 '근당(芹堂)'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이 미나리에 담긴 세 가지 덕(德)을 따르고자 했다.
첫째는 정화(淨化)의 덕이다. 오염된 물에서도 잘 자라며 주변을 맑게 하는 능력을 선비의 지조에 빗댔다. 그러나 바로 이 정화 능력 때문에 미나리는 '어디서 자랐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금속을 흡수해 조직 내에 격리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검증된 청정 지역의 것을 골라야 한다. 청도가 미나리의 산지로 유명하다.
둘째는 불굴(不屈)의 덕이다. 혹한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파릇하게 솟아오르는 강인함이다.
셋째는 포용(包容)의 덕이다.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며 독을 해독하는 넉넉함이다. 이 해독 능력은 현대 과학으로도 입증된다. 미나리에는 '퍼시카린'이라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풍부해 간 보호와 해독 작용이 탁월하다. 복어탕에 미나리가 들어가는 것이 단순한 요리 관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조의 지혜였던 것이다. 미나리가 복어의 독을 직접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것은 아니나, 강력한 이뇨 작용과 간 해독 지원 기능이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미량의 독소를 빠르게 몸 밖으로 배출하도록 돕는다.
미나리의 생명력이 가장 짙게 응축된 때가 바로 3월이다.
이 시기엔 데치지 말고 생미나리 무침으로 즐기거나,
삼겹살에 쌈 대신 미나리 줄기를 통째로 곁들여보길 추천한다.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을 미나리의 아삭한 식감과 향긋한 향이
깔끔하게 잡아주는 것이 일품이다.
요사이 곰 위에 잘게 썬 생미나리를 수북이 얹거나, 수육과 미나리를 함께 내는 방식으로 미나리를 주인공 삼는 유명 맛집도 등장했다. 실제로 미나리는 탕, 전, 무침, 쌈 어디에 넣어도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전체를 조화롭게 이끄는 힘이 있다. 이 곳의 인기비결도 미나리의 향이 고기 특유의 잡내를 잡아주면서 한 그릇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덕분이다.
미나리를 고를 때는 줄기가 너무 굵지 않고 밑동이 연한 녹색을 띠며 잎에 윤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세척 시 거머리 제거를 위해 찬물에 식초를 한두 큰술 풀어 10분 정도 담가두는 방법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놋수저나 10원짜리 동전을 함께 넣으면 효과가 배가된다. 구리 성분이 용출되면서 피부가 예민한 거머리에게 강한 자극제로 작용해, 줄기 속이나 잎 사이에 숨어 있던 것들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봄동과 미나리가 민초의 나물이라면, 봄나물의 제왕이라 불리는 것은 두릅이다. 나무가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밀어 올리는 첫 번째 싹, 그것이 두릅이다. 조선 후기 유중림이 엮은 『증보산림경제』 산나물 편에는 두릅을 '목두채(木頭菜)'라 명명하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木頭菜, 卽楤木芽也. 春初採芽, 煮食甚美."
(목두채는 곧 총목(두릅나무)의 싹이다. 초봄에 그 싹을 채취하여 삶아 먹으면 그 맛이 매우 아름답다.)
봄철 두릅은 단순히 잎을 먹는 나물이 아니라, 나무의 정기가 응축된 '싹'을 먹는다는 의미다. 과거 선비들은 이를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봄의 기운을 가장 먼저 영접하는 의식으로 여겼다. 가지 끝에 딱 하나만 맺히고, 하나를 따면 그해 그 자리에는 다시 나지 않는 두릅의 희소함이 이를 귀하고 의미있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두릅은 제철이면 왕실에 진상하던 품목이었다. 주로 강원도와 지리산 인근(경남 함양·전남 구례)의 것을 최고로 쳤다. 고산 지대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늦게 피어나는 강원도 두릅은 향이 매우 짙고 육질이 단단해 임금의 수라상에 오른 귀한 식재료였으며, 일교차가 큰 지리산 두릅은 사포닌 함량이 높고 식감이 아삭해 조선시대부터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
우리가 '두릅'이라 부르는 것들은
식물학적으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생김새와 맛이 비슷해 같은 이름을 공유한다.
참두릅(나무두릅)은 두릅나무에서 나오는 진짜 두릅으로, 향이 은은하고 식감이 부드러워 가장 대중적이다. 나무 껍질과 뿌리는 한약재로도 쓰이며, 심신을 안정시키고 숙면을 돕는다고 알려져 수험생에게도 좋다고 전해진다. 수확 시기는 4월 초부터 4월 중순이다.
한편 개두릅은 엄나무(음나무)에서 나오는 새순으로, 참두릅보다 향이 훨씬 강하고 쓴맛도 진하며 잎이 더 뾰족하고 거친 느낌이다. '개'라는 접두사는 진짜(참)보다 야생의 기운이 강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칭이다. 수확 시기는 제주 및 남부 지방 기준 4월 중순, 강원도 고산 지대는 5월 초가 되어야 절정의 향을 낸다. 4월 말에서 5월 초, 딱 보름 정도만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다. 참두릅이 대중적이라면, 나물 좀 아는 미식가들이 으뜸으로 치는 것은 단연 개두릅이다. 강렬한 쓴맛과 입안 가득 퍼지는 약초 같은 향 때문이다. 엄나무는 험한 가시 때문에 잡귀를 쫓는 영험한 나무로 여겨졌는데, 그 무시무시한 가시 사이에서 돋아난 보드라운 순이라는 반전이 개두릅만의 매력이다.
그 밖에 땅두릅(독활)은 나무가 아닌 땅에서 솟아오르는 순으로,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사이에 나오며 사각거리는 식감이 매력적이다.
두릅 조리 시에는 손질에 주의가 필요하다. 개두릅은 쓴맛이 참두릅보다 훨씬 강하므로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충분히 데친 뒤 찬물에 잠시 담가 쓴맛을 우려내야 제맛이 난다. 참두릅은 반대로 찬물에 열기만 가볍게 제거하고 바로 꺼내는 것이 포인트다. 보관 시에는 밀폐용기에 두릅을 세워 밑동이 잠길 정도로만 물을 부어 냉장하고, 오래 두려면 소금에 절이거나 데쳐서 냉동하면 된다.
데쳐서 숙회로 즐기거나, 된장과 들기름에 무치거나, 장아찌를 담가 두고 오래 먹는 것 모두 두릅을 즐기는 훌륭한 방식이다. 색다른 페어링을 즐기고 싶다면, 산미가 살아있는 스타일의 샴페인과 함께해보시길 권한다. 개두릅의 쌉싸름한 풍미와 샴페인의 산뜻한 산미가 만나 입안을 아주 세련되게 마무리해준다.
두릅은 혈액순환을 돕고 혈당과 혈중 지질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며, 단백질이 비교적 풍부하고 사포닌을 다량 함유한 봄철 최고의 기력 식재료다. 다만 미량의 독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데쳐 밑동 부분의 독성을 제거한 뒤 먹어야 한다. 생으로 먹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달래, 냉이만 봄나물인 줄 알았다면 봄날의 쾌락을 반밖에 알지 못한 것과 같다. 봄동은 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겨울을 버텼고, 미나리는 찬물 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뻗었으며, 두릅은 험한 가시 사이를 비집고 기어코 돋아났다. 요란하지 않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그들을 입에 넣는 순간, 계절이 바뀌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제철 밥상이 특별한 이유는 결국 하나다. 그 한 접시 안에 자연이 버텨온 시간, 그 찰라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