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싱글몰트 위스키와 오크통 숙성 증류식 소주의 탄생
2021년, 한국 주류 산업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첫 싱글몰트 위스키가 출시되었다. 쓰리소사이어티스의 '기원 호랑이'다. 다음해 이어서 쓰리소사이어티스는 '기원 유니콘'을,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에서 첫 싱글몰트 '김창수위스키 첫번째 에디션'을 출시했다. '김창수위스키 첫번째 에디션'은 336병을 22만원대에 내놓자마자 완판시키며 오픈런 열풍을 일으켰다. 또한, 쓰리소사이어티는 가장 한국적인 위스키를 표방하며 증류소 투어와 한정판을 통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2020년 경기도 남양주에 '쓰리소사이어티스'가 국내 최초 싱글몰트 증류소를 세웠고, 같은 해 '김창수위스키'도 문을 열었다. 이제 막 5-6년 차에 접어든 이 증류소들의 위스키는 국제 시상식에서 호평받고, 일본 이토추 상사와 유통 계약을 맺으며 14개국 이상으로 수출되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코리안 싱글몰트 위스키(Korean Single Malt Whisky)'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하고 있지만, 그 접근 방식은 극명하게 다르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최근 사명을 아예 제품명인 '기원(KI ONE)'으로 변경하며 정체성을 강화했다. '기원'이라는 이름에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한자어로 '시작(起源)'은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로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는 뜻이고, '바람(祈願)'은 한국 위스키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다. 영문 표기 'KI ONE'에는 숫자 'ONE(하나)'을 포함해 독보적인 첫 번째라는 상징성도 담았다.
반면 '김창수 위스키'는 위스키 마니아였던 김창수 대표가 스코틀랜드 증류소 102곳을 자전거로 일주하고, 일본 지치부 증류소에서 연수를 받은 뒤 직접 세운 '1인 증류소'에서 출발했다. 설비를 직접 설계하고 설치할 만큼 수제(Craft) 방식을 고수하며, 배치마다 실험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 장인 정신이 핵심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이 두 브랜드가 한국 위스키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갈지, 아직 입증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가능성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원'과 '김창수 위스키'의 가장 큰 차이는 '맛의 결'에서 드러난다. 기원은 재미교포인 도정한 대표, 경력 40년의 스코틀랜드인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 그리고 한국인 직원들이 모여 '세 개의 사회'가 만났다는 뜻을 담고 있다. 스코틀랜드 포사이스사의 대형 증류기를 도입해 연간 100만 리터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춘 시스템화된 증류소로, 처음부터 글로벌 표준을 지향했다.
'기원'의 라인업은 상징적인 동물들로 구성됐다. '호랑이 에디션'은 한국을 상징하며 셰리 캐스크와 와인 캐스크를 사용해 풍부한 과실 향과 달콤함이 특징이다. '독수리 에디션'은 미국을 상징하며 켄터키 버번 캐스크와 아메리칸 뉴 오크를 사용해 바닐라와 복합적인 오크의 단맛이 도드라진다. '유니콘 에디션'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피트(Peat) 위스키로 훈연향과 오크의 풍미가 조화롭다. 이들은 버진 아메리칸 오크를 주로 사용하여 강렬한 오크향, 바닐라, 복숭아의 단맛 뒤에 오는 한국적인 스파이스가 전체적인 맛의 특징이다. 이미 미국, 일본, 대만 등 10개국 이상에 진출하며 'K-위스키의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반면 '김창수 위스키'는 정규 라인업보다는 각 '배치(Batch)'와 특정 지역을 기념하는 제품으로 유명하다. 2025년 출시된 플래그십 제품 '김창수 위스키 김포'는 증류소가 위치한 김포를 기리며 9가지 다른 캐스크의 원액을 블렌딩했다. 3년 이상 숙성된 원액들을 사용해 안정적인 밸런스를 갖췄다. 싱글 캐스크 시리즈는 번호를 매겨 출시하며, 물을 섞지 않은 캐스크 스트렝스(CS) 방식이 많다. 특히 국산 몰트나 국산 오크통(신갈나무)을 사용한 실험적 제품들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신화적인 인기를 끈다. 나무 발효조를 사용하고 피트를 과감하게 사용하거나 다양한 와인 캐스크를 활용하는 김창수 위스키는 전반적으로 아이라(Islay) 스타일의 피트감과 진한 셰리 풍미를 한국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년이라는 짧은 숙성 기간에도 불구하고 꾸덕한 과일 향과 깊은 질감을 뽑아내 "저숙성 같지 않다"는 극찬을 받으며, 출시 때마다 편의점이나 주류점 앞에 긴 줄을 세우는 '오픈런'의 주인공이 됐다.
가격대는 '김창수 위스키'의 경우 700ml 기준 21만~23만 원대를 형성하며, 리셀 시장에서는 200만 원까지 치솟기도 한다고 한다. '기원'은 같은 700ml 기준으로 배치에 따라 가격 변동 폭이 크다. 배치 13은 14만 8,500원에서 21만 9,000원 사이이며, 캐스크 스트렝스 버전인 배치 3 CS는 21만 9,000원, 피티드 버전인 배치 4는 26만 3,000원에 달한다. 전체적으로 '기원'의 가격대는 김창수 위스키보다 가격 스펙트럼이 넓다. '김창수 위스키'가 안정적인 프리미엄 포지션을 유지하는 반면, '기원'은 배치별 실험과 캐스크 선택에 따라 입문자용 14만 원대부터 고급 마니아용 26만 원대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제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둘 다 한정판으로 품절이 잦아 리셀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 현실이다.
수십 년씩 숙성하는 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의 위스키와 달리 불과 몇 년 만에 깊은 풍미를 낸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위스키의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한국의 사계절에 있다. 스코틀랜드는 연교차가 적어 숙성이 천천히 진행되지만, 한국은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최대 60도까지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오크통이 강하게 수축·팽창하며 원액에 나무의 풍미가 훨씬 빠르게 스며든다.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불리는 연간 증발량도 스코틀랜드는 2% 내외지만 한국은 5~10%에 달한다. 유지비 부담은 크지만, 단기간에 매우 진하고 복합적인 맛을 내는 '고숙성 같은 저숙성' 위스키는 한국 위스키만의 특징이 됐다. 이른바 '익스트림 에이징(Extreme Aging)'이다.
최근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나만의 캐스크(오크통)'를 통째로 사는 분양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증류소에 '나만의 캐스크'가 있다는 것은 위스키 마니아들에게는 가장 높은 수준의 자부심이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캐스크는 나무(주로 참나무, Oak)로 만든 숙성용 오크통을 말한다. 위스키 세계에서 캐스크는 단순히 술을 담는 통이 아니라, 위스키의 영혼과 색, 맛의 70% 이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갓 증류된 투명한 스피릿은 이 오크통 속에서 숨을 쉬며 변화를 겪는다. 나무 성분에서 바닐라, 초콜릿, 견과류, 과일 향 등이 우러나오고, 투명했던 술이 우리가 아는 아름다운 호박색으로 변한다. 나무 벽면을 통해 공기가 소통하며 거친 알코올 성분은 증발하고 맛은 부드러워진다.
개인이나 단체가 증류소의 '캐스크 한 통'을 통째로 소유하는 것을 '프라이빗 캐스크(Private Cask)'라고 한다. 그 캐스크에서 나온 술은 세상에 오직 200~500병뿐이다. 다른 통과 섞지 않기 때문에 그 오크통만이 가진 고유한 풍미를 온전히 소유하게 되는 독보적인 희소성을 갖는다. 소유자는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숙성을 멈추고 병에 담을 수 있으며, 병 라벨에 자신의 이름이나 특별한 문구를 새길 수 있어 기념비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아무에게나 캐스크를 팔지 않는 증류소들이 많기 때문에 증류소에 자신의 캐스크가 있다는 것은 그 증류소의 공식적인 파트너이자 주요 후원자라는 사회적 위상을 상징한다. 더욱이 시간이 흐를수록 위스키 원액의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자산 가치를 높이는 투자 목적으로 캐스크를 구매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소위 '위테크(Whisky + Tech)'라 불리는 위스키 투자 열풍이다.
비용은 국내 기원이나 김창수 위스키의 경우 캐스크 크기에 따라 약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선에서 시작한다. 해외 스코틀랜드 신생 증류소는 약 700만 원에서 1,400만 원 정도면 중소규모 증류소의 캐스크를 소유할 수 있다. 맥캘란, 스프링뱅크 같은 명품 증류소는 수억 원대를 호가하거나 아예 일반인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유지비는 생각보다 저렴하다. 연간 보관료 및 보험료는 약 10만~20만 원 수준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금이다. 위스키는 병에 담겨 창고를 나갈 때 세금이 부과되는데, 특히 한국은 종가세 체계라 숙성 후 가치가 높아진 위스키를 국내로 들여올 때 세금이 초기 구매비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천사의 몫으로 숙성 중 액체가 증발하고, 간혹 오크통 자체의 결함으로 맛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만의 라벨이 붙은 세상에 하나뿐인 위스키 수백 병을 보유한다는 개인적 가치와, 가치가 급등하는 증류소의 경우 캐스크 채로 되팔아 높은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수익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위스키 제조 공정에서 '커팅(Cutting)'은 품질과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과정이다. 증류기에서 나오는 원액은 시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초류(Foreshots 또는 Head)로 증류 초기에 나오는 부분이다. 아세톤 향이 나고 독성(메탄올)이 있을 수 있어 반드시 버려야 한다. 두 번째는 중류(Heart 또는 Middle Cut)로 가장 깨끗하고 향기로운 부분이다. 위스키의 본체가 되는 핵심 원액이며 이 부분만을 수집한다. 세 번째는 후류(Feints 또는 Tail)로 증류 끝부분이다. 무겁고 퀴퀴한 냄새, 기름진 성분이 섞여 나와 역시 버린다.
증류의 핵심인 커팅은 독성이 있거나 향이 나쁜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가장 깨끗한 원액만 골라내는 과정이다. 이 '선택과 집중'이 곧 생산 단가와 품질로 직결된다. 초류와 후류를 버리는 양이 많을수록 중류의 순도는 높아지지만, 그만큼 수율이 떨어져 생산 단가가 올라간다. 반대로 커팅을 느슨하게 하면 수율은 높아지지만 품질이 떨어진다.
'김창수 위스키'처럼 장인 정신을 강조하는 증류소는 중류의 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잡아 순도 높은 원액을 생산하고, '기원'처럼 시스템화된 증류소는 안정적인 커팅 기준으로 일관된 품질을 유지한다. 커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증류소의 철학이 담긴 예술이며, 이것이 위스키의 최종 풍미를 결정한다.
'스피릿(Spirit)'과 '위스키(Whisky)'의 관계는 원재료와 완성품의 관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모든 위스키는 스피릿에서 시작하지만, 모든 스피릿이 위스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저숙성 위스키의 판매가 많아지면서 스피릿의 중요성이 높이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오크통 숙성 여부다. 스피릿(New Make Spirit)은 곡물을 발효시켜 막 증류해 나온 투명한 원액이다. 흔히 '뉴 메이크'라고 부르며, 갓 구운 빵이나 생곡물의 향이 강하고 무색투명하다. 위스키는 이 스피릿을 오크통에 넣고 일정 기간 숙성시킨 술이다. 숙성 과정을 거치며 오크통에서 색과 향(바닐라, 초콜릿, 오크 등)이 입혀져 우리가 아는 호박색 위스키가 된다.
법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스카치 위스키 기준으로 스피릿을 오크통에서 최소 3년 1일 이상 숙성해야 비로소 '위스키'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숙성 기간이 3년 미만이거나, 도수가 40도 미만으로 낮거나, 다른 첨가물이 들어갔다면 법적으로 위스키가 아닌 '스피릿 드링크'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 다만 한국과 미국 주류법에는 숙성 기간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3년이 안 된 스피릿을 위스키로 판매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숙성 기간이 채워지지 않은 스피릿 제품들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오크통의 영향을 받기 전, 증류소 고유의 원액 맛(New Make)을 궁금해하는 마니아들의 탐구심 때문이다. 하이볼 트렌드와 맞물려 스피릿 자체의 가치도 재조명받고 있다. 증류기에서 막 나왔을 때는 알코올 도수가 60~70%에 달해 맛이 매우 거칠고 타오르는 듯한 자극이 강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증류소의 '본연의 개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숙성 기간 동안 알코올이 일부 증발하고 물을 섞어 도수를 조절하면서 맛이 부드럽고 복합적으로 변하기 전의 순수한 맛을 경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골든블루 같은 로컬 브랜드들은 오랫동안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2009년 골든블루가 국내 최초 36.5도 저도수 프리미엄 위스키를 출시하며 로컬 위스키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했고, 스카치 원액 블렌딩과 항아리 숙성으로 한국 입맛에 최적화된 제품을 선보였다. 2016년 '더 다이아몬드' 시리즈, 2020년대 K-위스키 프로젝트(국내 숙성 원액 25% 이상)를 추진하며 시장을 확대해왔다.
이들 기성 브랜드와 신생 K-위스키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한국 주류 산업을 키울 수 있을까? 답은 시장의 이원화에 있다. 골든블루나 윈저 같은 로컬 위스키는 대중적인 저도수 시장을 지탱해주고, 기원이나 김창수 같은 브랜드는 프리미엄 싱글몰트 시장을 개척하며 한국 위스키를 문화적 자산이자 투자 대상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이 두 층위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며 전체적인 파이를 키워야 한다.
한국 위스키 산업은 이제 '입문-대중-프리미엄'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K-위스키가 K-푸드, K-뷰티에 이어 다음 세대 한류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잠재력이다.
한편, 최근 주류 시장에 '조선 위스키'라는 독특한 용어가 등장했다. 이는 증류식 소주를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숙성시켜 위스키와 유사한 색상과 풍미를 내는 제품들을 일컫는다. '화요 X.P', '일품진로 오크43', '마한 오크' 등이 대표적이다. 김창수 위스키도 최근 안동에 제2증류소를 건설하며 위스키와 전통 소주의 접점을 찾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K-위스키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술들은 위스키의 바닐라·오크 향과 전통 소주 특유의 쌀·누룩 향이 절묘하게 섞여 오크통 풍미와 곡물의 감칠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제3의 맛'을 낸다. 서양 위스키의 스파이시한 타격감 대신, 쌀 특유의 은은한 단맛과 누룩에서 오는 참외나 배 같은 과일 향이 베이스에 깔리고, 누룽지 사탕 같은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풍미를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술은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는 '소주'이지만 해외에서는 '위스키'로 팔린다. 국내 주세법상 위스키는 발아된 곡류(몰트)가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쌀이나 누룩으로 만든 증류주를 오크통에 숙성하면 '증류식 소주' 혹은 '일반 증류주'로 분류된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기준에서 보면 곡물 베이스 증류주를 오크통에 숙성했기때문에 동일한 술을 위스키로 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주세법상 증류식 소주를 1년 이상 장기 숙성하면 술의 색상 때문에 일반 증류주로 분류되면서 소주로서의 익숙한 지위를 잃게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조선 위스키는 1년 미만 오크 숙성을 선택한다.
'화요(HWAYO, 광주요)'는 2005년 전통 도자기 업체인 광주요 그룹의 조태권 회장이 '최고급 도자기에 담긴 우리 음식에 어울리는 고급 술'이라는 콘셉트로 탄생시킨 브랜드다. '소주(燒酒)'의 '소(燒)'자를 파자하여 '불(火)'과 '요(堯: 높고 멀다)'를 결합해 '불로 다스린 귀한 술'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감압증류 방식을 도입하고 옹기에서 6개월간 숙성하여 증류식 소주 특유의 누룩 냄새를 잡아내며 '깔끔한 프리미엄 소주'의 기준을 세웠다.
'화요 XP(Extra Premium)'는 화요의 정체성을 한 단계 더 확장한 제품으로, 처음부터 위스키와 경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됐다. 화요 41도의 원액을 미국산 화이트 오크통에 넣어 장기간 숙성(5년)시켜 소주의 깨끗함과 오그러크통의 풍부한 바닐라 향이 만나 독특한 풍미를 완성했다. 출시 초기 오크 숙성으로 인해 색깔이 위스키처럼 변하자 당시 주세법상 소주의 범위를 벗어나는 문제가 생겼고, 결국 '일반증류주'로 분류되어 출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화요 XP는 세계적인 트렌드인 '라이스 위스키(Rice Whisky)' 카테고리에서 한국이 가진 잠재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샘플이다.
'일품진로(하이트진로)'는 '시간의 우연'이 만든 술이다. 1996년 위스키 열풍 속에 출시된 '참나무통 맑은소주'가 출시 한 달 만에 600만 병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단종됐다. 팔지 못한 수천 개의 오크통이 이천 공장 창고에 방치됐다가, 2005년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하며 재발견됐다. 10년 가까이 자연 숙성된 원액은 알코올 향이 사라지고 위스키처럼 부드러운 향과 은은한 호박색을 띠게 되었고, 2006년 '일품진로'라는 프리미엄 증류주로 재탄생했다. 현재는 18년, 20년, 24년 등 고숙성 빈티지를 한정 출시하며 K-위스키와 견주는 하이엔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마한오크(스마트브루어리)'는 전통주 전문가가 의도적으로 위스키의 문법을 우리 술에 이식한 '설계된 명작'이다. 쌀 100%와 국산 누룩을 사용하는 전통 안동소주 제조법을 따르되, 마지막 숙성 단계에서 미국산 화이트 오크통을 사용한다. 특히 감압증류(Reduced Pressure Distillation) 방식을 사용해 40~50도의 낮은 온도에서 증류함으로써 탄내 없이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구현한다. 감압증류는 열에 의한 변형이 적어 쌀 본연의 향긋함을 살리면서도 무거운 성분은 제거해 정제된 풍미를 만든다. 첫 맛은 위스키처럼 묵직한 오크 향(바닐라, 카라멜, 스모키)이 치고 올라오지만, 목 넘김 이후에는 증류식 소주 특유의 깔끔하고 부드러운 쌀의 여운이 남는다. 40도와 46도 라인업으로 출시되며, 높은 도수임에도 오크 숙성 덕분에 알코올의 거친 느낌이 적어 위스키 애호가와 매니아층을 타깃으로 한다.
"우리 술이면 더 저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산 위스키나 오크 숙성 소주가 수입 위스키보다 비싼 경우가 많은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빠른 증발량이다. 연간 5~10%씩 증발하면 생산 단가가 그만큼 높아진다. 둘째, 현행 종가세 체계다. 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구조라 비싼 재료를 쓰고 오래 숙성할수록 세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일반 증류식 소주나 위스키는 주세 72%에 교육세 30%, 부가세 10%가 차례로 붙는다. 반면 전통주로 지정되면 주세가 36%로 절반 감면된다.
업계는 알코올 양에 세금을 매기는 종량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통과될 경우 국산 고숙성 위스키의 가격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종량세 전환은 K-위스키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최근 규제 완화로 소규모 주류제조면허 취득이 용이해졌다. 이는 마치 수제 맥주 붐처럼 개성 있는 크래프트 위스키 증류소들이 전국 각지에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단순히 술 종류가 많아지는 것을 넘어, 증류소 투어를 통한 지역 관광 활성화와 농산물 소비 촉진으로 이어진다.
K-위스키는 해외 시장에서 단순한 술이 아닌 'K-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소비되고 있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시장에서 먼저 인정받은 후 유럽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쓰고 있으며, 인천공항 면세점에서는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선물'로 포지셔닝하며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의 카발란(Kavalan)이 그랬던 것처럼, 기후의 특수성과 한국인의 섬세한 기술력을 결합해 세계 위스키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위스키는 무조건 오래 숙성한 고연산이 최고"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숙성은 기간보다 균형이 중요하다. 위스키나 오크 숙성 소주 모두 숙성 기간에 따라 품질이 우상향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종 모양의 곡선을 그린다. 초기에는 알코올의 거친 맛이 날아가고 오크통의 바닐라·캐러멜 향이 입혀지며 부드러워지지만, 너무 오래 담가두면 오크통의 탄닌 성분이 과하게 우러나와 술이 떫고 써지며 원액 본연의 개성이 나무 향에 묻혀버린다.
특히 조선 위스키는 쌀의 단맛과 오크의 바닐라 향이 만난 '제3의 맛'이 특징이므로, 무조건 오래된 것보다 본인의 취향과 음식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 조선 위스키의 '제3의 맛'은 하이볼로 만들었을 때 특히 빛을 발한다. 일반 위스키 하이볼보다 훨씬 더 한식과의 페어링이 좋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전통 증류식 소주들이 오크 숙성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안동소주, 문경소주 등 무형문화재 증류소주가 오크통 숙성으로 '코리안 위스키(Korean Whiskey)'로 글로벌 마케팅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으며, 제주에서도 전통 고소리술(차조)을 오크통에 숙성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명인안동소주 목향, 안동소주 일품 골드블랙 등 3만~6만원대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며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
K-위스키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지만, 종량세 전환이라는 정책적 뒷받침만 이루어진다면 K-푸드에 이어 K-위스키가 글로벌 주류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극한 기후, 전통 증류 기술, 그리고 오크 숙성의 만남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국면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 도전의 시간은 지나고, 도약의 시간이 왔다.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