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위스키 시장 현황과 한국 위스키의 역사
"요즘 위스키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30% 대의 폭풍 성장을 기록하며 '위테크(위스키+재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국내 위스키 시장이 2025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 말은 정확히는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렸다.
오히려 시장규모가 축소된다기 보다는 성숙해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2024년 위스키 수입량은 전년 대비 10.3% 감소했고, 2025년 상반기에도 감소세가 이어졌다. 마트 오픈런은 실종됐고, 리셀 프리미엄은 폭락했다. 하지만 이는 거품이 빠진 것이지, 시장이 죽은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 열풍'에서 '취향의 분화'로 전환되며 비로소 질적 성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 양극화다. '하이볼용 가성비 위스키'를 찾는 입문자와 '고연산 한정판'을 찾는 마니아층으로 시장이 완전히 갈라졌다. 어중간한 가격대 제품은 힘을 못 쓴다. 또한, 스마트 오더 앱(데일리샷, 달리)이 보편화되며 정보 비대칭성이 사라졌다. 이제 위스키는 발품을 파는 술이 아니라 집 앞 편의점에서 픽업하는 '디지털 소비 재화'가 되었다. 위스키가 대중화되면서 강남·한남동에 집중됐던 전문 바들이 주택가 골목으로 스며들며 '심야식당' 같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2021년 한국에서 첫 싱글몰트 위스키가 출시되었다. 140년 남짓한 국내 위스키 역사를 고려할 때 "우리 기술로 만든 위스키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준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김창수 위스키'와 '기원'이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리츠 컴페티션(SFWSC)', '인터내셔널 와인 앤 스피리츠 컴페티션(IWSC)' 같은 국제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러한 성과를 거두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 완화가 있었다. 2025년부터 증류식 소주·브랜디·위스키 등 증류주까지 소규모 제조면허가 허용됐다. 이유는 연간 1조 1천억 원에 달하는 주류 무역 적자를 줄이고, 주류를 규제 대상이 아닌 수출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더불어 소규모 제조업체에 대한 주세 감면 요건도 완화됐다. 발효주 생산량 기준은 500kL에서 1,000kL로, 증류주는 250kL에서 500kL로 상향 조정됐다.
한편, 국산 위스키 판매 활성화에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지역특산주 원료 규제 완화는 진행 중이다. 기존에는 상위 3개 원료를 100% 해당 지역 농산물로 써야 했는데, 위스키 대량 생산 시 수십 톤에서 수백 톤의 보리가 필요해 사실상 불가능한 기준이었다. 정부는 이를 "제품 중량 기준 일정 비율 이상 지역 농산물 사용"으로 완화하는 법개정을 추진 중이다. 지역특산주로 지정되면 온라인 직판이 가능하다. 2017년부터 지역특산주는 네이버·카카오 등을 통한 온라인 판매가 허용됐다. K-위스키가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K-위스키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요인은 과세방식이다. 좋은 재료를 쓰고 오래 숙성할수록 원가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종가세 방식 하에서는 원가가 오르면 세금이 폭탄처럼 늘어난다.
현행 종가세 체계는 1967~68년 도입되었다. 당시 경제 개발을 위한 재정 확보가 절실했고, 양주는 상류층의 사치품이었다. "비싼 술을 마시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소득 재분배의 논리를 적용했다. 하버드대 리처드 머스그레이브 교수가 개발도상국의 상황을 고려해 종가세를 권고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한동안 이 체계는 저가 소주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EU와 미국이 "왜 수입 위스키와 국산 소주를 차별하느냐"며 WTO에 제소했고, 한국이 패소하면서 2000년부터 모든 증류주 세율이 72%로 통일됐다. OECD 38개국 중 종가세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 멕시코, 칠레 등 극소수다. 대부분은 알코올 도수와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채택한다.
맥주와 막걸리가 종량세로 전환된 배경도 같다. 수입 맥주는 마케팅비가 빠진 '수입 신고가'에만 세금을 매겨 '4캔 만 원'이 가능했지만, 국산 맥주는 제조원가에 판매비까지 포함된 가격에 세금을 매겨 역차별을 당했다. 종량제로 바꾸면서 좋은 홉과 몰트를 써도 세금 부담 없이 고품질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종량세 전환이 이뤄지면 프리미엄 K-위스키 생산의 구조적 장벽이 사라진다. 2025년 현재, 논의는 활발하지만 법 개정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해보인다.
2025년에 새롭게 정착된 합리적 위스키 소비 행태로 '바이알(Vial) 문화'를 꼽고 싶다. 바이알은 원래 약품을 담는 작은 유리병인데, 고가 위스키를 30ml씩 소분해 나눠 마시는 문화를 말한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위스키를 혼자 구매하기 부담스러울 때, 여러 명이 비용을 나눠 한 병을 산 뒤 바이알에 소분한다.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종류를 경험할 수 있다. 희귀한 술을 구한 사람이 다른 동호인에게 맛을 보여주기 위해 선물하거나 교환하기도 한다. 술 이름, 도수, 병입 날짜를 꼼꼼히 적은 라벨을 붙이는 게 관례다. 한 병을 다 사는 대신 소량 분할 소비를 하는 합리적 대안이자, 지식과 취향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활동의 일환이다. 이는 MZ세대의 '디깅(Digging) 소비'와 맞물려 더욱 활발해졌다.
믹솔로지(Mixology)도 빼놓을 수 없다. 믹솔로지는 술을 섞는 기술(Mix)에 만드는 이의 철학과 과학적 연구(Logy)를 더해 맛의 신세계를 탐험하는 문화다. 코로나 19 이후 집에서 위스키나 진을 구매해 섞어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최근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믹솔로지가 트렌드다. 독한 술을 빨리 마셔 취하기보다는, 낮은 도수의 술을 맛있고 예쁘게 즐기려는 젊은 세대들로 인해 하이볼은 이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주류 카테고리로 안착했다. 편의점 RTD(Ready-to-Drink) 캔 하이볼이 대중화되며 위스키 입문 장벽을 낮췄고, 자신의 취향대로 술을 조합하는 문화가 번졌다. 여기에는 주어진 대로 마시지 않고 편의점 재료 등을 조합해 나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MZ세대의 성향, 즉 모디슈머(Modisumer) 문화가 반영되었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 아닌 테이스팅 노트를 쓰고 위스키 역사를 공부하는 '학구적 음주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위스키 클래스와 증류소 투어가 열풍인 이유도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위스키 소비국에서 생산국으로의 전환점에 서 있다. 한국 위스키 시장은 식지 않았다. 단지 성숙해가는 중이다.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