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의 순간을 여는 한 병
경쾌한 '펑' 소리가 울려 퍼진다. 병 안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거품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샴페인 한 잔에는 약 100만 개의 거품이 담겨 있다. 이 작은 기포들은 단순히 혀를 간지럽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가 체내 판막을 자극해 알코올을 빠르게 혈관으로 밀어 넣고, 곧장 뇌까지 도달한다. 일반 와인으로 같은 효과를 내려면 훨씬 더 오래 기다리거나 격렬하게 춤을 춰야 할 것이다.
샴페인은 관능과 화려함, 그리고 퇴폐미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찬란한 술의 뒤편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내가 별을 마시고 있다!
샴페인을 처음 맛본 돔 페리뇽 수도사가 외쳤다는 이 유명한 일화는, 안타깝게도 허구다. 더 놀라운 사실은 돔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17세기 후반, 오트빌레의 생 피에르 수도원에서 지하 저장고를 관리하던 돔 페리뇽은 실제로 뛰어난 와인 제조자였다. 그는 포도를 빠르게 압착해 신선한 즙을 얻는 법을 고안했고, 적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나무 마개 대신 신축성 좋은 코르크 마개를 사용해 이산화탄소로 인해 병이 깨지는 것을 막았고, 포도를 세 번에 걸쳐 압착한 뒤 각각의 즙을 따로 보관하다가 블렌딩하는 방법을 완성했다. 이는 오늘날 샴페인의 꽃이라 불리는 블렌딩 기술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와인은 발포성 와인이 아니었다. 당시 샹파뉴 지역의 와인 제조자들에게 거품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북방 한계선에 위치한 샹파뉴는 추운 날씨 탓에 효모가 발효를 끝마치기 어려웠다. 병입할 때 여과 기술이 없어 효모가 조금씩 병 속에 남았고, 겨울 동안 잠들었던 효모는 봄이 오면 깨어나 남은 당분을 먹으며 이산화탄소를 뿜어냈다. 탈출구 없는 이산화탄소는 와인에 녹아들었고, 조악한 병들은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저장고에서 터져버렸다.
그렇다면 샴페인은 누가 만들었을까?
프랑스 남서부 리무의 생틸레르 수도원. 1531년, 이곳의 수도사들은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을 기록으로 남겼다. '블랑케트 드 리무'라 불리는 이 와인은 샴페인보다 100년 이상 앞선 최초의 공식 기록이다.
영국도 샴페인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662년, 과학자 크리스토퍼 메렛은 와인에 설탕을 첨가해 2차 발효를 유도하는 방법을 상세히 문서화해 왕립 학회에 제출했다. 프랑스가 이 기술을 정립하기 훨씬 이전이었다. 영국의 석탄 유리 제조 기술은 샴페인의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병을 만들어냈고, 17세기 후반부터 영국 상류층은 샹파뉴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을 열광적으로 수입했다. 정작 프랑스인들이 발포성을 '결함'으로 여기던 시기에 말이다.
샴페인은 한 천재의 발명품이 아니라,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과 기술적 진화,
리고 국경을 넘나든 지식의 교류가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샹파뉴 지역은 원래 피노 누아 포도로 부르고뉴와 유사한 옅은 색의 스틸 레드 와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 루이 14세의 주치의 기-크레상 파공은 왕에게 샹파뉴 와인이 산도가 높아 위장에 좋지 않다며 더 강한 부르고뉴 레드 와인을 권했다. 왕의 선호는 곧 유럽의 유행이었다. 왕실의 후광을 잃은 샹파뉴 와인은 판매에 큰 타격을 입었다.
생존을 위해 샹파뉴 생산자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그동안 결함으로 여겨왔던 와인의 '거품'이었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이 발포성 와인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오늘날 샴페인의 시작이었다.
18세기 후반, 샹파뉴 지역의 와인 매출은 2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샴페인 생산은 여전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2차 발효 시 발생하는 높은 압력을 병이 견디지 못해 매년 총생산량의 30~50%가 저장고에서 폭발했다.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가격은 원가의 8배까지 치솟았다.
역설적이게도 높은 가격은 샴페인을 신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전환점은 1836년 찾아왔다. 약사 앙드레 프랑수아가 설탕의 양에 따른 병의 압력을 계산하는 과학 공식을 고안한 것이다. 병 파손율은 5%로 떨어졌고, 샴페인 사업은 비로소 수익성 있는 사업이 되었다.
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1818년 마담 클리코는 피피트르를 이용한 르뮈아주 기법을 체계화했다. 병을 조금씩 회전시키며 침전물을 병목으로 모으는 이 방법 덕분에 샴페인은 맑고 투명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844년 아돌프 자케는 코르크 마개가 튀어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뮤즐렛, 즉 병마개 위 철사 캡을 발명했다.
오늘날 샴페인 한 병을 만들려면 1.2kg의 포도가 필요하다. 샹파뉴 지역은 세 가지 품종만을 사용한다. 피노 누아(38.4%로 가장 많음), 샤도네이, 피노 뫼니에. 프랑스 북동부의 비교적 낮은 기온과 유명한 백악질 토양이 이 포도들에게 특별한 개성을 부여한다.
7천만 년 전 이곳은 바다 밑이었다. 화산 활동으로 백악 지층이 밀려 올라와 지금의 급경사지를 만들었다. 백악토는 세제곱미터당 최대 400리터의 물을 저장하는 지하 저수지 역할을 하면서도 배수가 원활해 뿌리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한다. 태양광과 온기를 포도나무에 반사하고, 미네랄 풍미를 제공한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이탈리아 남부 지방을 따라 '캄파니아'라 불렀고, 그 이름이 샴페인으로 변했다.
포도는 모두 손으로 수확한다. 과즙이 껍질에 닿을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압착된 포도의 약 80%가 '퀴베', 최초의 과즙이다. 섬세하고 우아한 샴페인의 핵심이다. 압력을 높여 마지막으로 얻는 '타이유'는 따로 판매되거나 와인에 구조감을 더하기 위해 다시 혼합된다.
샴페인 하우스는 샴페인 전역에서 포도를 사들여 품종별로 따로 발효시킨다. 스테인레스스틸 탱크나 오크통에서 발효가 끝나면 블렌딩 단계가 시작된다. 포도원, 품종, 수확 연도를 조합하면 베이스 와인의 범위는 무한정 확장된다. 대형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처럼, 샴페인의 비결은 블렌딩이 좌우한다.
블렌드된 와인에 설탕과 효모가 배합된 '리쾨르 드 티라주'를 주입한다. 이때 설탕과 효모의 양은 정확히 최대 7바의 압력(2층 버스 타이어 압력에 해당)을 만들도록 계산된다. 병은 지하 창고에 가로로 적재되고, 연중 10~12도가 유지되는 환경에서 효모는 추위를 견디며 압력 속에서 당분을 섭취한다. 알코올 도수가 1도 올라가고 거품이 생성된다. 최대 3개월 후 모든 효모 세포가 소멸하고 바닥에 침전물로 가라앉는다. 모든 샴페인은 최소 15개월 이상 병 숙성을 거친다. 소멸한 효모 세포는 자가 분해되며 미묘하고 견과류 같은, 고소하고 브리오슈 비슷한 향을 만들어낸다.
'르뮈아주'를 통해 거품 손실 없이 병 안의 침전물을 제거한다. 과거에는 4~5주가 걸렸지만 자이로팔레트를 사용하면 3~4일이면 충분하다.
'데고르주망' 단계에서 병을 뒤집고 병목을 액체질소로 냉각시킨 후 병마개를 제거하면, 압력에 의해 2.5cm 정도의 얼어붙은 효모 덩어리가 샴페인 코르크처럼 튀어나온다.
빠져나간 술을 보충하고 코르크 마개로 밀봉하면 샴페인이 완성된다.
19세기만 해도 샴페인은 달았다. 특히 러시아로 수출되는 샴페인은 리터당 50그램 이상의 당분을 함유했다.
하지만 19세기 말 영국과 미국의 선호에 따라 샴페인은 점차 드라이해졌다.
1874년 포므리가 최초의 '브뤼' 샴페인을 출시했다.
'브뤼'는 프랑스어로 '원시적'이라는 뜻인데,
100년 전만 해도 극도로 무미건조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엑스트라 브뤼'는 리터당 6그램까지, '브뤼'는 리터당 최대 12그램의 당분이 허용된다. 당도가 낮은 샴페인이 선호되는 현대의 입맛에 맞춰 샴페인도 진화한 것이다.
19세기에 단단하고 흠집 나지 않는 유리가 발명되면서 샴페인 병이 터지는 사고는 사라졌다.
하지만 실온에서 샴페인을 개봉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다.
20도 이상에서 보관된 샴페인은
아이스 버킷에 넣어 30분 이상 급속 냉각하거나
냉장고에서 최소 3~4시간 충분히 식힌 후 개봉해야 한다.
샴페인을 5도 이하로 냉각하면 압력이 절반 수준인 2.5기압으로 떨어진다.
서빙 온도는 5~9도가 적당하다. 유리잔 안에서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얼음통에 넣어둬 병이 지나치게 차가워지면 향과 풍미가 무뎌진다. 플루트 잔은 너무 작다. 튤립 모양의 화이트 와인 잔이 샴페인의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한다. 개봉된 병에 전용 마개를 끼워 냉장고에 보관하면 주말 동안 샴페인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샴페인은 유난히 자외선에 민감하다. 구매할 때는 너무 오랜 기간 상점의 불빛 아래 진열된 것을 피해야 한다. 어둡고 서늘하며 온도가 일정한 곳이 샴페인을 보관하기에 적합하다.
샹파뉴 지역의 랭스는 프랑스 국왕들이 대대로 대관식을 거행했던 성지다. 5세기 프랑크 왕국의 시조 클로비스 1세가 랭스에서 세례를 받고 즉위하면서 이 지역의 와인이 축하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차 발효로 인한 병 폭발 위험과 까다로운 제조 과정 때문에 생산량이 적고 가격이 비쌌던 샴페인은 왕족과 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1814년 워털루 전쟁부터 1815년 빈회의까지, 샴페인은 수많은 연회와 파티에서 제공되었다. 승리와 평화를 축하하는 자리에 샴페인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샴페인과 축하, 즐거운 시간의 연관성이 공고해졌다.
샴페인의 화려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모습과 코르크 마개를 딸 때 나는 '펑' 소리는 즉각적으로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샴페인이 터지는 순간과 넘치는 거품은 "이 순간을 잊지 말자"고 외치는 듯한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연말의 절정인 자정,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식에 샴페인만 한 것이 없는 이유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샴페인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격이 점차 하락했다.
샴페인 하우스들은 샴페인을 '축하와 특별한 날의 음료'로 적극 홍보했다.
일상적으로 마시기엔 여전히 비싸지만,
특별한 순간을 위해 구매할 만한 가치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한 잔의 샴페인에는 세계가 담겨있다. 샴페인 한 잔을 들어 올릴 때, 우리는 7천만 년 전 바다 밑이었던 백악 지층의 미네랄을, 손으로 수확한 포도의 정성을,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된 블렌딩의 기술을, 지하 창고에서 15개월 이상 기다린 시간을 함께 마신다.
출처 : 샴페인 수업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