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어바웃 위스키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위스키가 모두 스카치 위스키인 것은 맞지만, 법적으로 '스카치 위스키'라는 이름을 달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협회(SWA)가 정한 기본 요건은 다음과 같다.
먼저 스코틀랜드 내 제조다. 반드시 스코틀랜드 내 증류소에서 물과 발아된 보리(맥아)를 사용해 증류해야 한다. 몰트 위스키가 아닌 경우에는 다른 곡물을 추가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스카치 위스키에 '발아된 보리(맥아)'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숙성 조건은 더 엄격하다. 700리터 이하의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스코틀랜드 내에서 숙성해야 한다. 오크통은 위스키에 색상(골드빛)과 풍미(바닐라, 캐러멜 등), 그리고 부드러움을 부여하는 핵심 요소다. 첨가물은 물과 캐러멜 색소(색상 조정 목적에 한해서만) 외에는 일체 허용되지 않으며, 병입 시 알코올 도수는 최소 40% 이상이어야 한다.
스카치 위스키의 5가지 분류
1. 싱글 몰트(Single Malt): 하나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로, 발아된 보리 100%만을 사용한다. 풍미가 깊고 개성이 강하다.
2. 싱글 그레인(Single Grain): 하나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그레인 위스키로, 몰트 보리에 밀, 옥수수 같은 다른 곡물을 함께 사용한다. 가볍고 부드럽다.
3. 블렌디드 몰트(Blended Malt): 두 개 이상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싱글 몰트를 섞은 것으로, 발아된 보리 100%를 사용한다. 여러 몰트의 특징을 조합한다.
4. 블렌디드 그레인(Blended Grain): 두 개 이상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싱글 그레인을 섞은 것으로, 몰트 보리에 다른 곡물을 함께 사용한다. 매우 희귀하며 부드럽다.
5. 블렌디드 스카치(Blended Scotch): 하나 이상의 싱글 몰트와 하나 이상의 싱글 그레인을 섞은 것으로, 가장 흔한 형태다. 몰트와 다른 곡물을 모두 사용하며, 균형 잡히고 대중적인 맛을 낸다.
흥미로운 점은 스카치 위스키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피트 향이 실제로는 선택사항이라는 것이다. 맥켈란, 글렌피딕, 글렌리벳, 하이랜드 파크 같은 유명 싱글 몰트 브랜드들은 피트 향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완전히 배제한다. 이들은 주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오크통 숙성에서 오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으로 승부한다.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스카치 위스키의 약 90%는 블렌디드 스카치다. 블렌디드 스카치는 싱글 몰트와 싱글 그레인을 혼합한 것으로,
위스키를 대중화하고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블렌디드 스카치의 탄생배경
블렌디드 스카치의 탄생은 19세기 중반 연속식 증류기의 발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당시 몰트 위스키는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배치 방식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생산량이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맛은 대중의 입맛에 부담스러웠다.
여기에 경제적 요인이 결합했다. 맥아 보리는 발아 과정을 거쳐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옥수수나 밀 같은 곡물은 훨씬 저렴하고 대량 수급이 가능했다. 연속식 증류기는 이런 곡물을 원료로 한 번에 연속적으로 증류액을 생산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했다.
블렌디드 위스키의 가장 큰 강점은 일관된 품질이다. 여러 증류소의 싱글 몰트와 싱글 그레인을 혼합하기 때문에 특정 증류소의 공급이 부족해져도 다른 원액으로 대체할 수 있다. 조니 워커, 시바스 리갈 같은 브랜드가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대중적 접근성도 빼놓을 수 없다. 강렬한 몰트 위스키의 캐릭터를 부드럽고 가벼운 그레인 위스키가 감싸주어 마시기 편하다. 위스키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진입 장벽이 낮은 셈이다.
경제적 생산도 가능하다. 저렴한 그레인 위스키를 기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고가의 싱글 몰트만 사용하는 것보다 생산 단가를 낮추고 대량 판매가 가능하다.
장점이 대중적 성공을 가져왔지만 단점은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주로 언급된다.
풍미의 복합성이 감소한다. 블렌딩 과정에서 강렬하고 독특한 개성을 가진 몰트 위스키의 풍미가 희석되거나 중화된다. 다양한 풍미가 조화를 이루는 대신 평균적인 맛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원산지의 개성도 상실된다. 싱글 몰트가 특정 증류소와 지역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는 반면, 블렌디드 스카치는 여러 지역의 원액을 섞기 때문에 지역적 개성이나 증류소의 특징이 약해진다.
조니 워커(레드 라벨, 블랙 라벨, 블루 라벨), 시바스 리갈, 발렌타인, 제이앤비, 커티 삭 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마스터 블렌더가 수십 가지의 싱글 몰트와 싱글 그레인 원액을 섞어 일관된 맛을 만들어낸다.
그레인 위스키는 발아된 보리(맥아)를 포함하되, 주로 옥수수, 밀, 호밀 같은 통곡물(Unmalted Grain)을 함께 사용한다. 소량의 맥아 보리는 당화를 돕는 효소 역할을 한다. 연속식 증류기로 증류하며, 90~94% ABV의 높은 알코올 도수로 증류되기 때문에 풍미가 가볍고 부드러우며 깨끗하다.
그레인 위스키의 풍미는 몰트 위스키 특유의 강렬한 캐릭터는 적고,
주로 바닐라, 카라멜, 꿀 같은 오크통 숙성에서 오는 향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숙성 기간과 오크통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숙성 연수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레인 위스키는 대부분 블렌디드 스카치의 기주로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고품질 그레인 위스키를 단독으로 병입한 싱글 그레인 위스키도 등장하고 있다.
오크통 사용의 차이
몰트 위스키(특히 싱글 몰트)는 값비싼 셰리 캐스크나 새 오크통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강렬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반면 그레인 위스키는 보통 재사용된 오크통(Refill Cask)을 더 많이 사용한다. 그레인 위스키의 목적이 몰트 위스키처럼 강한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블렌디드 스카치의 부드러운 바탕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증류기의 차이
몰트 위스키는 오직 물과 발아된 보리(맥아) 100%만을 사용하며, 다른 곡물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단식 증류기를 사용한 배치 생산 방식을 고수한다. 한 번에 일정량의 원액을 넣고 끓여 증류한 후, 다시 원액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보통 2~3회 증류 과정을 거쳐 알코올 도수를 60~75% ABV 수준으로 맞춘다.
알코올 도수가 낮게 증류될수록 에스터, 알데하이드, 퓨젤 오일 같은 동류체가 더 많이 보존된다. 이 동류체가 과일향, 꽃향, 스파이시함, 유분기 같은 복합적인 개성을 부여한다. 연속식 증류기가 90% 이상의 깨끗한 고도수 알코올을 생산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역사적으로도 18세기 영국 정부가 맥아에 세금을 부과했을 때,
밀주업자들은 작고 운반하기 쉬운 단식 증류기를 사용했다.
이 전통이 이어져 몰트 위스키의 제조법으로 정착됐다.
현재 스카치 싱글 몰트로 인정받으려면 발아된 보리만을 원료로 하고
단식 증류기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단식 증류기의 크기와 모양(목의 길이, 구리 재질 등)은 최종 위스키의 풍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구리 재질은 깨끗한 증류액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증류소마다 증류기의 크기와 모양이 달라 각 증류소의 고유한 맛을 형성한다. 결국 몰트 위스키가 단식 증류를 고집하는 것은 복합적인 풍미와 개성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제조 철학이자, 스카치 싱글 몰트로 인정받기 위한 법적 조건이다.
블렌디드 스카치가 대중성과 경제성으로 위스키 시장을 지배하는 동안,
싱글 몰트는 개성과 복합성으로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 방식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스카치 위스키 산업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역사를 함께한 문화였다. 세계사를 움직인 인물들 중에는 위스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이들이 많다.
윈스턴 처칠: 위스키를 생명수처럼 여긴 지도자
영국의 위대한 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위스키를 '생명수'처럼 여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위스키 애호가가 된 계기는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에서 소위로 복무할 때 마실 수 있는 물이 깨끗하지 않자, 그는 "더러운 물에 위스키를 조금 타는 것"을 선택했다. 이 경험이 평생 위스키와 함께하는 삶의 시작이었다.
처칠의 일상에서 위스키는 빠지지 않았다. 그는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약간의 위스키를 섞은 물이나 소다수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에게 위스키는 특정 안주와 곁들이는 음료가 아니라 풍성한 식사의 일부이자, 하루 종일 이어지는 습관적인 음료였다.
1954년 미국 방문 중 작성한 기내식 메뉴판을 보면 그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으깬 계란과 토스트, 잼, 버터, 커피, 차가운 우유, 차가운 닭고기 요리 등을 주문한 후, 마무리로 위스키 소다와 담배를 따로 요청했다. 처칠에게 위스키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 얄타 회담에 참석했을 때의 일화도 흥미롭다. 영국 보급업체가 준비한 물품 목록에는 엄청난 양의 주류가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처칠을 위한 물품으로 조니 워커 레드 라벨과 킹 조지 4세 위스키 등 다양한 위스키가 대량으로 실려갔다. 그는 접근성이 좋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블렌디드 스카치를 일상적으로 즐겼다.
조니 워커 레드 라벨은 1909년 탄생한 조니 워커의 가장 기본적인 엔트리급 제품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중 하나다. 하이볼용으로 적합해 콜라나 진저에일 같은 탄산음료, 칵테일에 섞어도 맛이 죽지 않는다. 네모난 병 모양은 운송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이다.
킹 조지 4세 위스키는 한때 조니 워커처럼 인기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였다. 이름의 유래가 된 조지 4세는 스코틀랜드 위스키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1822년 스코틀랜드를 방문하여 당시 밀주가 성행하던 글렌리벳의 밀주를 맛보고 극찬했다. 이 일화는 이후 영국 의회가 1823년 증류법 개혁을 단행하는 데 영향을 미쳐, 스카치 위스키 산업이 합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교적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맛으로 알려져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 위스키와 함께 영원으로
20세기 최고의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인 프랭크 시나트라는 잭 다니엘스의 광적인 애호가였다. 그는 생전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잭 다니엘을 마실 때"라고 말할 정도로 이 위스키를 사랑했다.
시나트라가 즐겨 마시던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세 개의 얼음, 두 손가락(Two Fingers) 높이의 위스키, 그리고 물." 여기서 '두 손가락'은 위스키를 따르는 양을 나타내는 용어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시그니처 주문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위스키 사랑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98년 사망했을 때, 그는 한 병의 잭 다니엘스(다른 설에는 잭 다니엘스 시나트라 셀렉트), 지포 라이터, 그리고 10센트 동전 2개(공중전화 요금)와 함께 관에 넣어 매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죽어서도 위스키와 함께하겠다는, 진정한 애호가의 모습이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잭 다니엘스에서는 '시나트라 셀렉트'라는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처칠과 시나트라가 사랑한 위스키는 스카치와 아메리칸 위스키였다. 위스키의 세계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 각국은 각기 다른 원료, 기후,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위스키 문화를 꽃피웠다. 이들은 스카치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개성을 담아낸 위스키로 세계 시장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 개척자의 강인함을 담은 위스키
미국 위스키는 개척 시대의 강인한 역사와 광활한 옥수수밭에서 비롯된 강렬한 단맛과 스파이시함이 특징이다. 버번 위스키(Bourbon Whiskey)는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하며, 안을 태운 새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최소 숙성 기간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지만, 이 새 오크통이 버번 특유의 바닐라와 캐러멜 향을 만들어낸다. 짐 빔, 메이커스 마크, 와일드 터키가 대표적이다. 테네시 위스키(Tennessee Whiskey)는 버번과 동일한 조건으로 만들어지지만, 병입 전 단풍나무 숯 여과(링컨 카운티 프로세스)를 거쳐 더욱 부드러워진다. 시나트라가 평생 사랑했던 잭 다니엘스가 바로 테네시 위스키다. 라이 위스키(Rye Whiskey)는 호밀을 51% 이상 사용해 버번보다 더 스파이시하고 드라이한 맛을 낸다. 불릿 라이, 사제락 라이 등이 유명하며, 최근 칵테일 문화의 부흥과 함께 재조명받고 있다.
일본: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섬세함
일본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섬세한 밸런스를 더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일본 위스키의 가장 큰 특징은 섬세한 균형감이다. 몰트와 그레인 위스키를 블렌딩할 때 극도의 조화를 추구하여 부드럽고 우아한 맛을 낸다. 히비키와 타케츠루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이를 대표한다.
독창적인 숙성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 고유의 미즈나라 오크통을 사용하여 백단향, 코코넛 같은 독특하고 깊은 풍미를 더한다. 야마자키와 하쿠슈 같은 싱글 몰트가 이 방식을 활용한다. 또한 청정한 일본의 수자원을 사용하여 위스키의 깨끗한 풍미를 강조하는데, 산토리 가쿠빈은 하이볼 베이스로 특히 유명하다.
일본 위스키의 창시자들
일본 위스키의 역사는 두 거장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야마자키 위스키를 처음 만든 토리이 신지로는 원래 포도주와 서양 주류를 수입하고 판매하던 상인이었다. 그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독자적인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강한 열망을 품고, 1923년 교토 외곽의 야마자키 지역에 일본 최초의 몰트 위스키 증류소를 건설했다.
토리이가 설립한 회사는 현재 세계적인 종합 식음료 그룹인 산토리(Suntory)다. 회사 이름은 그가 처음 판매했던 포도주의 이름 'Sun'과 자신의 성 'Tori'를
합친 것에서 유래했다.
산토리는 야마자키 외에도 하쿠슈, 히비키 등
유명 위스키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2014년 산토리는 미국의 유명 주류 회사 빔(Beam)을 인수하면서 '빔 산토리'라는 거대 주류 회사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야마자키, 히비키 같은 일본 위스키는 물론, 짐 빔, 메이커스 마크 같은 버번 위스키와 라프로익 같은 스카치 위스키까지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스카치의 전통을 일본에 들여온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아, 이제는 세계 5대 위스키 산지의 핵심 브랜드를 모두 거느린 진정한 글로벌 위스키 그룹으로 도약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 위스키의 진정한 아버지는 따로 있다.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20세기 초 일본의 주류 회사(셋쓰) 주조의 간부로, 회사 지시에 따라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그곳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위스키 제조법을 공부했고, 헤이즐번 등 여러 증류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전통적인 스카치 위스키 제조 기술을 몸으로 익혔다. 유학 중 만난 스코틀랜드 여성 리타와의 결혼 이야기는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유명하다.
일본으로 돌아온 다케쓰루는 토리이 신지로와 의기투합하여 야마자키 증류소 건설과 초기 위스키 생산을 이끌었다. 하지만 위스키에 대한 제조 철학의 차이로 둘은 결별하게 된다. 토리이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부드러운 맛을 추구한 반면, 다케쓰루는 자신이 스코틀랜드에서 배운 피트 향이 강하고 묵직한 정통 스카치 스타일을 고집했다.
1934년 다케쓰루는 자신의 위스키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닛카 위스키를 설립했다. 그가 선택한 요이치는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가장 흡사하여 정통 스카치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요이치 증류소는 석탄 직화 방식으로 몰트를 건조하는 등 스코틀랜드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이후 1969년에는 다양한 풍미의 원액을 확보하기 위해 센다이 근처에 미야기쿄 증류소를 추가로 설립했다.
이처럼 다케쓰루는 야마자키를 세운 후 독립하여 닛카 위스키를 창업했고, 현재 산토리와 함께 일본 위스키 산업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캐나다: 호밀이 만든 부드러움
캐나디안 위스키는 '라이(Rye, 호밀)'를 주로 사용하여 가볍고 부드러우며 뛰어난 음용성을 자랑한다. 옥수수, 보리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하지만, 호밀을 첨가해 스파이시함과 풍미를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 블렌디드 위스키로 생산되며, 깊은 향보다는 쉽고 부드러운 목 넘김을 추구한다. 캐나디안 클럽, 크라운 로열, 시그램스 V.O. 등이 대표적이다. 오크통 숙성을 거치며, 호밀이 들어간 위스키를 관습적으로 '라이(Ry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최근 인도, 대만의 카발란, 호주 등도 위스키 생산국으로 급부상하며 세계 위스키 시장의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의 지리와 문화가 위스키 한 잔에 녹아들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낸다.
위스키의 세계를 여행하며 각국의 개성 넘치는 맛을 탐험했다면, 이제 그 풍미를 더욱 돋보이게 할 페어링을 고민할 차례다. 위스키는 홀로 마셔도 좋지만, 적절한 안주와 함께하면 서로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치즈와 위스키의 조합은 가장 클래식하다. 스모키한 아일라 싱글 몰트에는 강한 풍미의 블루치즈가 잘 어울리고, 부드러운 스페이사이드 몰트나 블렌디드 스카치에는 크리미한 브리나 카망베르가 조화롭다. 버번의 단맛에는 체다 같은 숙성 치즈가 균형을 맞춰준다.
다크 초콜릿은 위스키의 복합적인 풍미를 강조한다. 특히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된 위스키와 만나면 카카오의 쌉싸름함과 위스키의 단맛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룬다. 카카오 함량 70% 이상의 다크 초콜릿을 추천한다.
견과류도 빼놓을 수 없다. 구운 호두나 아몬드의 고소함은 위스키의 오크통 숙성 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특히 버번이나 일본 위스키처럼 바닐라와 캐러멜 향이 두드러지는 위스키와 잘 맞는다.
캐러멜은 위스키의 단맛을 부드럽게 연결해준다. 솔티드 캐러멜이라면 더욱 좋다. 짠맛이 위스키의 단맛을 강조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맛의 변주를 만들어낸다.
바비큐나 훈제 연어 같은 훈제 요리는 피트 향이 강한 위스키와 천생연분이다. 라프로익이나 아드벡 같은 아일라 위스키의 스모키함이 훈제 향과 만나 깊이를 더한다. 훈제 연어의 기름진 질감은 위스키의 알코올과 균형을 이루며, 바비큐의 달콤한 소스는 버번의 캐러멜 향과 조화롭다.
크래커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짠맛이 위스키의 단맛을 강조하고, 바삭한 질감이 입안을 정리해 다음 한 모금을 더욱 신선하게 만든다. 버터 크래커나 소금 크래커 모두 좋다.
신선한 과일은 위스키에 산뜻함을 더한다. 멜론이나 배처럼 수분이 많고 달콤한 과일은 특히 일본 위스키나 부드러운 블렌디드 스카치와 잘 어울린다. 과일의 청량함이 위스키의 알코올 감을 부드럽게 감싸주어 더욱 편안한 음용 경험을 선사한다.
위스키 한 잔에는 세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 스코틀랜드의 안개 낀 고원에서, 미국의 광활한 옥수수밭에서, 일본의 청정한 산간 계곡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빚어진 위스키들은 이제 우리의 잔 속에서 하나가 된다. 좋은 음식과 함께라면, 그 여정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한해를 보내며, 치어스(Cheers)!.
출처 : 술잡학사전 외
이범준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