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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여, 이 한 잔을 위하여

올 어바웃 스카치 위스키

by 송지

“We’ll take a cup o’ kindness yet, / For auld lang syne.”

(“우리가 우정의 잔을 들리, / 오랜 옛날을 위하여.”)


이 구절은 세계적인 송년가, 스코틀랜드의 민요 'Auld Lang Syne'의 가사다. "오랜 옛날부터(For old long since)"라는 뜻을 가진 이 노래의 가사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술잔을 나누고 옛 정을 기리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연말연시, 전 세계의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한다. 샴페인 코르크가 터지는 화려한 축제 현장부터 가족과 함께 조용히 나누는 잔까지, 은 이 특별한 시간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라가 바로 스코틀랜드다. 그들의 신년 전야 축제인 호그마니(Hogmanay)는 단순히 하루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 고대의 의식과 공동체의 정이 살아 숨 쉬는 문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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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랜드 사람들이 노래에서 말하는 '우정의 잔(a cup o’ kindness)'을 채우는 가장 전통적이고 필수적인 술은 무엇일까? 바로 스코틀랜드의 황금빛 보물,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다.


이 술은 단순히 마시는 것을 넘어, 호그마니의 핵심 풍습인
'퍼스트 푸팅(First-Footing)'의 상징적인 선물로 사용된다.
새해 자정 후 처음으로 남의 집에 들어서는 사람이
석탄(온기), 쇼트브레드(양식), 그리고 위스키(번영과 행운)를 가져와야
한 해 동안 복이 깃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위스키는 번영을 기원하는 행운의 상징이다.


스코틀랜드의 서늘한 기후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된 위스키는 단순한 독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우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묵직하게 담아내는 매개체다.


위스키, '생명의 물'의 탄생


앞서 스카치 위스키가 스코틀랜드의 연말 축제, 호그마니(Hogmanay)에 깊이 뿌리내린 ‘행운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 술은 처음부터 축배를 위한 음료는 아니었다. 오히려 혹독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을 지키는 '약(藥)'의 기능이 먼저였다.


위스키의 이름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고대 언어인 게일어(Gaelic)
'Uisge Beatha(위스게 바하)'에서 유래했다.
바로 '생명의 물(Water of Life)'이라는 뜻이다.
이 거창한 이름은 중세 시대 이 술의 역할에서 비롯되었다.


중세 시대, 증류 기술은 이슬람 세계에서 유럽으로 넘어와 주로 수도원의 수도승들에게 전해졌다. 지식의 중심지였던 수도원에서 이 기술은 보리 같은 곡물을 발효시켜 알코올을 추출하는 데 사용되었다. 당시 학술 언어였던 라틴어로 이 증류주는 'Aqua Vitae(아쿠아 비타에)', 즉, '생명의 물'이라 불렸다. 수도승들이 상처 소독, 강장제 제조 등 의학적 목적으로 이 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라틴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했고, 그 '우스게 바하'가 오랜 세월 발음이 변형되어 마침내 오늘날의 '위스키(Whisky)'가 되었다.


위스키가 단순한 독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 쓰임새를 보면 알 수 있다. 중세는 현대 의학이 미비했던 시절로 강력한 알코올은 당시로서는 거의 기적의 약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용도는 상처를 씻어내는 소독제와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마취제 역할을 했다. 또, 콜레라 같은 역병이 돌 때, 알코올이 질병을 막는다고 믿어져 치료제로 처방되기도 했다. 수도승들은 위스키를 각종 약초의 성분을 추출하고 보존하는 용매(Solvent)로 사용해 다양한 강장제와 묘약(妙藥)을 만들었다.


실제로 15세기 스코틀랜드의 기록에는 약사들이
왕에게 '생명의 물'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위스키는 한동안 약국에서 공식적으로 판매되었던 '약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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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곡물에서 이런 고농도의 '생명의 물'을 얻게 되었을까? 바로 증류(Distillation)라는 과학 원리 덕분이다. 증류의 핵심은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보다 알코올의 끓는점이 훨씬 낮기 때문에, 발효된 곡물액을 가열하면 알코올 성분만 먼저 증발하게 된다. 이 알코올 증기를 식혀 다시 액체로 만드는 과정이 증류다.

이 증류 기술을 과학적으로 정립하고 현대적인 증류 장치 개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중세 이슬람의 연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불멸의 영약을 찾겠다는 목표로 증류 실험에 매진했으며, 그들이 만든 증류 장치 '알-앰비크'가 오늘날 위스키 증류기의 모태가 되었다. 이 기술은 십자군 전쟁과 지식 교류를 통해 유럽으로 넘어왔고, 유럽의 의사와 수도승들에 의해 '만병통치약'을 만드는 데 활용되면서 비로소 약용 증류주, 즉 위스키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즉, 위스키는 메소포타미아의 향수 추출 기술에서 시작해,
이슬람 연금술사들의 과학적 발전을 거쳐,
중세 유럽 수도원의 의약품으로 완성된
동서양 지혜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술이 되었나?


그런데 이 위스키의 종주국은 왜 유럽 전역이 아닌, 스코틀랜드아일랜드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그 지역의 지리, 역사, 그리고 곡물이라는 세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위스키 제조의 최적 조건: 보리와 물

위스키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원료는 보리(Barley)와 물이다. 위스키의 주재료는 발아시킨 보리, 즉 몰트(Malt)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는 기후 조건상 포도 재배는 어렵지만, 위스키에 필수적인 보리 농사에는 매우 적합했다. 포도가 풍부했던 프랑스에서는 증류 기술이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Brandy)로 발전한 반면, 보리가 풍부했던 이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보리 증류주인 위스키가 주류가 된 것입니다.

또한, 이 지역은 빗물이 화강암이나 이탄(泥炭, Peat) 지대를 거치며 정화된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 매우 흔하다. 특히 스코틀랜드 위스키 특유의 훈연 향을 내는 피트(Peat)는 이탄 지대에서만 구할 수 있는 독특한 원료다.


가혹한 통제와 비밀 증류의 역사

위스키의 역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세금'과 '밀조(密造)'다. 정부의 가혹한 규제가 오히려 위스키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17세기 후반부터 잉글랜드는 위스키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증류업자들은 세금 징수원의 감시를 피해 산골짜기나 외딴섬으로 숨어 들어가 위스키를 제조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밀 증류(Illicit Distilling) 시대는 위스키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증류업자들은 세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량 생산 대신 소규모 배치(Small Batch)로 고품질의 술을 만들었고, 오크통에 숨겨두는 과정에서 우연히 숙성(Ageing)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19세기 중반, 위스키에 대한 세금 규제가 완화되면서 밀주업자들이 다시 합법적인 증류소로 돌아왔지만, 이미 위스키는 수백 년간 서민들의 생계와 삶의 일부로 깊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이 경험이 위스키에 강인하고 불굴의 전통을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날씨가 준 선물: 숙성 환경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서늘하고 변덕스러운 기후는 위스키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오크통 속에서 위스키가 증발하는 양(천사의 몫, Angel's Share)을 줄이고, 액체가 나무의 성분과 느리고 안정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만든다. 이 느린 숙성 과정이 위스키에 복합적이고 깊은 풍미를 부여하는 핵심 비결이다.


결국 위스키는 단순히 증류 기술이 전파되어 만들어진 술이 아니라, 보리 농사가 잘 되는 지리적 조건, 정부의 규제에 저항하며 비밀리에 전통을 지킨 역사, 그리고 숙성에 최적인 서늘한 기후가 합쳐져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민족 정체성과 하나가 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스카치와 아이리시 위스키의 분화


두 이웃 나라는 같은 '생명의 물(Uisge Beatha)'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위스키를 발전시켜 오늘날 '스카치(Scotch)'와 '아이리시(Irish)'라는 확연히 다른 두 거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일랜드 위스키: 뚝심과 전통의 '세 번 증류'

아일랜드는 위스키의 역사에서 증류 기술을 유럽에 처음 도입한 나라 중 하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전통적으로 '포트 스틸(Pot Still)'이라는 단식 증류기를 사용하며, 대부분 세 번 증류하는 것이 특징이다.


증류 횟수가 많을수록 알코올 도수는 높아지고
술의 잡미는 줄어들어 더 부드럽고 가벼운 풍미를 갖게 된다.
또한,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와 달리 보리를 건조할 때
이탄(Peat)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아이리시 위스키는 훈연 향이 없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이러한 부드러운 맛과 전통 덕분에 19세기까지 아이리시 위스키는 세계 위스키 시장의 선두 주자였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아일랜드의 독립 전쟁이라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치명타를 입었고, 그 위세는 잠시 꺾이게 된다. 핵심 수출 시장이 막히고 국내외적인 혼란이 겹치면서 수많은 증류소가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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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위스키: 혁신과 세계화의 '두 번 증류'

스코틀랜드 증류업자들은 아일랜드와 달리 두 번 증류하는 방식을 표준화했다. 이 방식은 세 번 증류보다는 풍미가 더 강하게 남는 특징이 있다. 스코틀랜드는 보리를 말릴 때 이탄(Peat)을 태워 건조하는 방식을 선호했고, 이로 인해 위스키에 스모키하고 독특한 훈연 향이 스며들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는 연속 증류기(컬럼 스틸)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이 기계를 통해 가볍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그레인 위스키(Grain Whisky)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 그레인 위스키와 몰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Blended Scotch Whisky)를 개발하여 전 세계로 수출하며 위스키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이처럼 혁신적인 기술 도입과 다양한 풍미의 결합을 통해 대량 생산의 기반을 마련하고, 대영제국의 해상 무역로를 따라 전 세계인의 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서 간략히 언급한 바와 같이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역사는 곧 세금과의 투쟁의 역사다. 17세기 후반부터 잉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 위스키에 막대한 소비세(주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주요 생계 수단이자 문화였던 위스키 산업을 억압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내포하고 있었다. 증류업자들은 이 가혹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세관원의 감시가 닿지 않는 하이랜드(Highland)의 깊은 산속이나 외딴 지역으로 숨어들었다. 이때부터 위스키는 '밀주(Illicit Whisky)'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수많은 증류소가 밀주를 만들면서 오히려 위스키의 품질은 아이러니하게 향상되었다. 세관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오크통에 술을 숨겨두었는데, 그 과정에서 장기간의 숙성 효과가 발견되었다. 무색투명했던 증류액이 오크통 속에서 황금빛으로 변하고 부드러우며 복합적인 풍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길고 지난했던 세금 투쟁의 역사는 19세기 들어 전환점을 맞이했다. 1822년, 영국의 조지 4세 국왕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밀주로 유명한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의 글렌리벳(Glenlivet) 위스키를 마시고 그 맛에 완전히 반했다고 한다. 국왕이 공식적으로 밀주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으로 이 사건은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1823년, 영국 의회는 세금 부담을 대폭 낮추고 합법적인 증류를 장려하는 소비세법(Excise Act)을 공포했다. 이 법 덕분에 밀주업자들이 합법적인 증류소로 대거 전환하며 스코틀랜드 위스키 산업이 양지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더불어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세계 시장의 패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포도밭의 재앙이었다. 19세기 후반, 포도나무에 치명적인 해충인 필록세라(Phylloxera)가 프랑스 전역의 포도밭을 휩쓸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주력 수출품이었던 브랜디(Brandy)와 와인 생산이 거의 멈추게 되었다. 유럽과 전 세계 주류 시장에 공백이 생겼고, 이때 스코틀랜드가 블렌디드 위스키라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시장을 빠르게 대체했다. 이미 연속 증류기를 도입하여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던 스코틀랜드는 이 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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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위스키가 금주법과 독립 전쟁으로 기세가 꺾일 때, 스카치 위스키는 혁신적인 블렌딩 기술프랑스산 술의 공백이라는 행운이 겹치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오늘날 세계 위스키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거인이 된 것이다. 스코틀랜드 위스키(Scotch Whisky)는 이처럼 수많은 역경과 기회 속에서 단련되었으며, 그 정체성은 매우 엄격한 법적 정의 속에 보존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위스키 애호가들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위스키와 페어링하면 좋은 음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출처 : 술잡학사전 외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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