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커피, 피시앤칩스의 공통점은?
오늘 이야기는 질문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파스타, 커피, 피시앤칩스. 이 세가지 인기음식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파스타는 이탈리아, 커피는 유럽 전역, 피시앤칩스는 영국. 각자가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모두 다른데요. 그런데 이 음식들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 모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동” 이라는 지역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죠.
"중동 음식"이라는 말은 사실 꽤 뭉뚱그린 표현이에요. 지리적으로 중동은 이란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까지, 터키에서 시리아, 오만, 예멘까지를 아우르거든요. 더 넓게 보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레반트 지역), 종교 문화 및 정치적으로 공통점이 강한 북아프리카 지역인 모로코, 알제리 등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서 그 안에 수십 개의 민족과 언어, 식문화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중동음식이 무엇이다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죠.
그 가운데 중동 음식의 두 중심축을 꼽는다면
페르시아 음식과 아랍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두 문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많은 음식의 뿌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같지 않고요. 오히려, 전혀 달라요. 이것이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많은 비극의 출발점이 아닐까 합니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을 말합니다. 1935년까지 국제사회에서 이 나라를 부르던 공식 명칭이었어요. 당시 국왕(레자 샤 팔라비)이 "우리 땅은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뜻의 '이란(Iran)'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름이 바뀌게 되었어요.
당연히 이란인의 조상은 페르시아인인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아리아인’입니다.
이들은 유럽인이나 인도 북부사람들과 혈통적으로 더 가깝고,
언어학·유전학적으로 보면 아랍인보다 그리스인이나 이탈리아인에 더 가까워요. 그래서 셈족인 아랍인과는 완전히 다른 민족적 뿌리를 가진다고 할 수 있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요. 이란의 공식어는 파르시(Farsi), 즉 페르시아어로, 아랍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입니다. 이란은 7세기에 아랍에게 정복된 이후 아랍 문자를 빌려 쓰기 시작했는데요. 문자는 같아도 언어 자체는 끝내 바꾸지 않았어요. 아랍 문자는 쓰지만 아랍어가 아닌 것이죠. 마치 베트남어를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 세계인이 '아라비안나이트'라고 부르는 그 이야기 책도, 원래는 페르시아 왕에게 지혜로운 왕비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매일 밤 들려준 페르시아 이야기였습니다. 후에 아랍어로 번역·편집되면서 아랍 이야기들이 추가됐고, 후에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죠.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50년, 키루스 대왕이 세운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 중 하나였어요. 현재의 중동 전체는 물론 파키스탄·중앙아시아까지, 당시 인류가 알던 세계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아우르는 다민족 대제국이었습니다.
키루스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통치 방식을 택했는데요. 정복한 민족에게 언어와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어요. 그의 원칙은 점토판에 새겨졌는데, 이것이 바로 '키루스 실린더(Cyrus Cylinder)'로,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으로 평가받으며 유엔 본부에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제국은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한 번 무너졌다가 파르티아 제국, 사산 왕조로 이어졌어요. 그러다 사산 왕조마저 마침내 7세기에 이슬람으로 통합된 아랍 군대에 정복되게 됩니다. 1,200년 문명국이 사막의 유목민에게 패배한 것이었죠.
그러나 이후 아랍인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아바스 왕조)의 관료, 학자, 의사, 요리사 상당수가 페르시아인이었습니다. 이슬람 황금기의 대수학(algebra), 의학, 천문학을 이끈 주역도 페르시아인이었고요. 군사적 정복 이후에도 페르시아 문화는 이슬람 문명 안에서 살아남았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독자적인 음식 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를 시작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중동음식의 두가지 축인 ‘페르시아 음식’과 ‘아랍 음식’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페르시아 음식의 핵심 키워드는 "섬세한 균형"이에요. 단맛, 신맛, 쓴맛, 고소한 맛을 한 접시 안에서 동시에 조화시키고 이를 가장 세련되게 완성시킨 것이 바로 페르시아 음식이었어요. 고기 요리에 호두·피스타치오·아몬드·말린 살구 같은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함께 사용해요. 마치 한국 갈비찜에 밤과 말린 대추를 넣는 것과 유사하죠. 고기 요리에 과일과 단맛을 함께 쓰는 것은 사실 인류의 오래된 자연스러운 조리 방식이었는데요. 중세 유럽(5~15세기)도 고기에 꿀과 말린 과일을 함께 넣었어요.
이것이 바뀐 계기는 17세기 프랑스의 오트 퀴진(Haute Cuisine_라바렌) 때문이에요. 이때부터 단맛 요리(Sweet)와 짠맛 요리(Savory)를 구분하는 메뉴 구성이 등장했고, 이후 프랑스 요리가 유럽 전체의 기준이 되면서 '고기에는 단맛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굳어졌습니다.
페르시아 음식의 주식은 쌀이에요. 쌀밥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메뉴는 '타딕'인데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누룽지와 같아요. 주로 고기 스튜와 함께 상에 오르는데, 가족 모임이나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서 솥 뚜껑을 열었을 때 타딕이 잘 나오면 요리 잘했다는 뜻이에요. 페르시아에서는 이 타딕을 손님에게 대접하는 영광의 음식으로 여겨요.
페르시아 음식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사프란이에요. 사프란은 크로커스 꽃의 암술머리를 손으로 직접 따서 말린 향신료로, 음식에 선명한 황금빛 색을 입히고 은은하면서도 독특한 꽃 향기를 나게 해요. 꽃 한 송이에서 세 가닥밖에 나오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로, 이란이 세계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합니다.
장미수 역시 페르시아 음식의 중요한 재료인데요. 이란 카샨(Kashan) 지역은 수천 년 전통의 세계 최대 장미수 생산지로, 아이스크림·전통 과자는 물론 홍차에도 장미수를 넣어 먹는다고 해요.
페르시아 음식 철학의 핵심은 음식과 약을 하나로 보는 것이에요.
이들은 음식을 뜨거운 성질과 차가운 성질로 나눴는데,
온도가 아닌 몸에 끼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한 분류예요.
호두는 뜨거운 음식, 석류는 차가운 음식이에요.
이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이 페르시아 출신의 의학자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예요. 그가 쓴 『의학정전(Canon of Medicine)』은 600년 이상 유럽 의과대학의 교재로 쓰였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끼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우리가 동양 고유의 사상이라고 알고 있는 '약식동원(藥食同源) —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는 바로 그 철학과 유사하죠. 중국에서도 이 사상이 독자적으로 발전했고, 그것이 한반도로 이어져 우리 한의학의 음양 원리로 자리잡았어요. 지리적으로 먼 두 지역이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이 흥미롭죠. 그런데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말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데, 중세까지 유럽도 음식과 약을 같은 맥락에서 봤어요. 이 관점이 사라진 건 17~18세기 근대 의학이 본격화되면서예요. 의학과 영양학이 분리되고, 음식과 약이 전혀 다른 영역이 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에요.
실제로 고대 페르시아 의학서에서 '뇌를 닮은 음식은 뇌에 좋다'는 원리에 따라 호두는 두뇌 건강 식품으로 분류됐고, 이 생각은 이븐 시나의 의학서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어요. 그로부터 수천 년 뒤, 근대 과학은 호두의 오메가-3 지방산이 실제로 뇌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밝혀냈죠. 페르시아인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던 것을 현대 과학이 뒤늦게 증명한 셈입니다.
호두 이야기가 나온 김에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요. 호두는 고려시대(1290년경) 유청신이라는 인물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충남 광덕사 인근에 심은 것이 한국 최초의 호두나무인데 그 지역이 바로 지금의 천안입니다. 호두가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을 거쳐 고려에 들어와, 결국 천안 명물이 된거죠.
아랍 음식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아랍'이라는 말은 언어와 종교를 공유하는 문화권을 가리킬 뿐, 지리적으로는 대서양 연안의 모로코부터 페르시아만의 오만까지 약 1만 킬로미터에 걸쳐 있어요. 지중해 연안의 레반트, 사막 내륙의 걸프, 사하라와 맞닿은 북아프리카는 기후도, 주요 식재료도, 역사적으로 영향 받은 문명도 모두 다릅니다. 이 지역들이 서로 다른 식문화를 가지는 이유죠. 그럼에도 공통점 또한 상당 부분 존재합니다.
일단 페르시아가 쌀 문화인 반면에, 아랍은 빵 문화에요. 피타(Pita)·라파(Laffa) 같은 납작빵이 식사의 중심입니다. 올리브유는 특히 레반트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이고, 병아리콩도 즐겨 쓰이는 식재료예요. 향신료는 균형을 추구하는 페르시아 요리와는 달리, 음식에 직접 넣어 강하고 분명한 맛을 냅니다.
아랍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메제(Mezze) 문화인데요. 여러 가지 작은 요리를 한 상에 늘어놓고 함께 먹는 이 문화는, 한국의 반찬 혹은 안주 문화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레바논 전통에서 메제는 아락(아랍의 증류주)이나 와인과 함께 천천히 즐기는 사교의 장에 함께 해요. 지금도 레바논에서는 술 한 잔에 작은 접시 하나씩 추가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레바논이 이런 음주 문화를 가질 수 있는 건 중동에서는 드물게 기독교 인구가 약 40%에 달하는 다종교 국가이기 때문이에요. 그 덕분에 레바논은 중동에서 손꼽히는 와인·아락 생산국으로, 역사적으로 개방적인 음식 문화를 유지해 왔어요. 반면 사우디·UAE 같은 걸프 지역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음주를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메제는 술 없이 즐깁니다.
아랍 음식의 세계화는 크게 두 경로로 이루어졌어요. 하나는 식민지배입니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132년간 지배하면서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대거 프랑스에 정착했고, 그들의 음식 문화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죠. 다른 하나는 이민이에요. 인구 500만의 레바논이 1,400만 해외 이민자를 가진 나라인 덕분에, 레바논 사람이 가는 곳마다 그들의 음식도 함께 퍼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랍의 대표 음식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볼게요.
후무스(Hummus)는 병아리콩을 삶아 으깬 뒤
타히니(참깨 페이스트)·올리브유·레몬즙·마늘을 섞어 만드는
크림 형태의 딥 소스에요.
요사이 저속노화 같은 건강 트렌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유행하고 있는 메뉴로 국내 편의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병아리콩이 레반트 지역에서 이렇게 중요한 재료가 된 데는 이유가 있는데요. 이슬람의 돼지고기 금지, 사막이라는 기후적 특성이 맞물리면서 콩류가 일상의 핵심 단백질로 자리 잡은 거예요.
그런데 이 음식은 레바논·이스라엘·시리아 등이 8개국이 직간접적으로 원조 논쟁을 벌이고 있어요. 레바논은 EU의 지리적 표시제(GI)를 통해 후무스를 레바논 음식으로 공식 등록하려 했지만, EU는 "여러 나라가 공통으로 먹어온 음식"이라며 등록을 거부했어요.
원조 논쟁은 기네스 기록 경쟁으로도 번졌어요. 2008년 이스라엘이 약 400kg으로 기록을 세우자, 레바논이 맞받아쳐 기록을 깨기를 반복했어요. 마침내 2010년 5월, 레바논이 10.4톤으로 최종 기록을 가져갔고 지금도 유효해요.
납작하고 얇게 구운 피타(Pita) 브레드는 아랍 빵 문화의 상징이에요.
이 빵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주머니처럼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이에요.
얇게 밀어 편 반죽을 230~260도의 매우 뜨거운 화덕에 넣으면, 표면이 순식간에 굳으면서 안의 수분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증기가 돼요. 이 증기가 반죽의 두 층 사이를 밀어 올리면서 그 사이에 빈 공간이 남는 거예요. 이 주머니 덕분에 채소와 고기를 넣어 쌈처럼 먹을 수 있어요.
수천 년 전 중동 사람들이 화덕 돌 위에서 구워낸 이 단순한 빵은, 오늘날 전 세계 샌드위치·랩 문화의 가장 오래된 형태 중 하나예요.
케밥(Kebab)은 사실 하나의 음식 이름이 아니에요.
고대 시리아 지역의 아람어에서 유래한 "구운 고기"를 뜻하는
포괄적인 표현인데요.
꼬챙이에 꿰어 굽거나, 다져서 굽거나, 회전 꼬치에 굽는 등 그 방식은 다양합니다. 이 케밥을 두고 원조 논쟁도 뜨거운데요. 이란은 사프란 밥에 곁들이는 "첼로 카밥(Chelo Kebab)"이 페르시아 왕들이 즐겨 먹던 메뉴라며 원조라고 주장해요. 황금빛 사프란 쌀밥 위에 여러 종류의 구운 고기가 올라가는 이 음식은 지금도 이란의 국빈 요리예요. 터키는 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굽는 "시시케밥(Shish Kebab)"이 오스만 군인들이 이동 중에 만들어 낸 원조라고 맞서고 있죠. 오늘날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케밥의 직접적인 출발점은 1972년 독일 베를린이에요. 터키 이민자들이 터키식 납작빵에 ‘되네르 케밥’을 넣어 팔기 시작한 것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아랍 음식 중에 전 세계로 가장 널리 퍼진 주식을 꼽으라면 단연 쿠스쿠스(Couscous)예요. 세몰리나 밀가루를 손바닥으로 굴려서 작은 알갱이 모양으로 만든 뒤 쪄낸 이 음식은, 요즘은 샐러드 재료로도 자주 등장해서 익숙한 분들도 계실 텔데요.
쿠스쿠스는 북아프리카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의 음식으로, 그들은 아랍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북아프리카에서 살아온 사람들인데요. 이슬람 문명이 북아프리카로 확장되면서 쿠스쿠스도 아랍·이슬람 음식 문화 안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됐고,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오늘날 쿠스쿠스는 모로코·알제리·튀니지를 넘어 프랑스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가 됐어요. 프랑스가 알제리를 132년간 지배한 역사 덕분에, 수백만 명의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이 음식을 함께 가져간 거죠. 지배한 나라가 오히려 피지배 문화를 흡수한 사례입니다.
그런데 사실 쿠스쿠스와 파스타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음식이에요. 둘 다 세몰리나로 만들었고, 둘 다 북아프리카 음식에서 출발했거든요.
10세기 아랍 식료품 상점에는 '이트리야(itriya)'라는 국수가 있었다고 해요. 밀가루를 반죽해서 길게 뽑은 뒤 햇볕에 말린 건조 국수였는데 장거리 여행에 가져가기 좋고, 끓는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먹을 수 있었죠.
이트리야는 아랍 상인들의 배에 실려 시칠리아로 건너가게 되는데요. 당시 시칠리아는 아랍이 200년 넘게 지배한 땅이었어요. 시칠리아의 건조한 기후와 풍부한 밀은 면을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죠. 11세기 후반에 노르만족이 시칠리아를 정복했지만, 아랍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흡수했어요. 그들은 아랍의 건조 파스타 기술도 그대로 이어받아 오히려 산업으로 발전시켰어요.
이트리야는 지중해 무역망을 타고 이탈리아 본토로 퍼져나갔고,
이탈리아어권에서는 '반죽'을 뜻하는 말에서 온
'파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이탈리아 남부로 서서히 퍼져나갔어요. 건조한 바람과 풍부한 햇살 덕분에 면 말리기에 최적이었던 나폴리는 새로운 파스타의 중심지가 됐고, 싸고 오래 보관되는 건조 파스타는 수백만 나폴리 빈민층의 주식이 됐어요.
그런데 당시 파스타는 지금과 전혀 달랐어요. 치즈·올리브유·버터와 함께 먹었고, 귀족들은 설탕과 향신료(후추와 넛맥)를 넣어 달콤하게 즐겼다고 해요. 19세기 초에 비로소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토마토가 파스타와 만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음식이 탄생했고,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수백 년을 여행해 새로운 재료와 결합한 끝에 한 나라의 상징이 된 것이죠.
페르시아 왕실에는 식초를 넣은 육류 스튜인 ‘시크바즈’라는 연회음식이 있었어요. 13세기 바그다드 요리서에서 첫 번째 레시피로 꼽을 만큼 중세 아랍-페르시아 요리 세계에서 가장 격이 높은 음식이었죠.
7세기에 아랍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이 요리를 흡수했어요. 이후 이슬람 선원들이 그 조리법을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갔고, 고기 대신 생선을 사용했어요. 8세기 초,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면서 이 요리도 함께 상륙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여정은 두 갈래로 갈렸어요. 포르투갈에서 시크바즈는 생선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기는 음식으로 변형됐는데요. 포르투갈 선교사와 상인들이 16세기에 이 튀김 기법을 일본에 전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덴뿌라(天ぷら)가 탄생했습니다.
한편, 15세기 말 알함브라 칙령으로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이 이후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이 튀긴 생선 요리를 함께 가져갔어요. 이들에게는 반죽을 입혀 튀긴 생선을 차갑게 먹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요리가 런던에 뿌리를 내리면서 19세기 중반에 감자튀김과 만나 피시앤칩스로 탄생하게 되었어요. 페르시아 왕실 요리가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데 꼬박 천 년이 걸린 셈이죠.
현대인들이 가장 즐겨마시는 음료인 아메리카노는 이름에 '아메리카'가 들어가니 미국 음료처럼 들리지만, 사실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들이 에스프레소가 너무 진해서 물을 타 마신 데서 유래했어요. 고향에서 마시던 드립커피에 익숙했던 미군들이 에스프레소를 희석해 마시던 것이 하나의 음료로 자리 잡은 거예요.
에스프레소는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증기 압력으로 커피를 빠르게 뽑아내는 커피 추출 방식이에요. 이탈리아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건 1600년경입니다. 오스만 제국과 활발히 교역하던 베네치아 상인들을 통해서였어요.
오스만 제국에 커피가 등장한 건 16세기 중반이에요. 오스만이 예멘을 정복하면서 커피도 함께 이스탄불로 들어왔고, 1554년 이스탄불에 최초의 커피하우스(카흐베하네)가 문을 열었습니다. 시인과 철학자와 상인이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여 정치를 논하자 오스만 술탄들이 커피하우스를 금지하려 했을 정도였어요.
커피의 출발점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밤새 기도를 드려야 하는 수도사들이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온 붉은 열매를 끓여 마셨고, 바로 잠이 달아나는 체험을 하게 됐어요. 그 음료의 아랍어 이름은 '까흐와(qahwa)'.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 지방 이름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식욕을 억제한다'는 뜻에서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널리 통용되는 것은 원래 아랍어로 '와인'을 뜻하던 단어를
커피에 가져왔다는 설이에요.
커피가 와인처럼 정신을 고양시키는 음료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죠.
이슬람에서 술은 금지되었지만, 논쟁 끝에 결국 이 음료만은 받아들여졌고, 사람들은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라 불렀습니다. 술을 금지한 종교가, 와인이라는 이름의 음료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는 것이 꽤 아이러니하죠.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공통된 뿌리가 있었어요. 그러나 동시에,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음식들은 각 시대와 문화를 거치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죠. 그렇기에 음식의 역사는 인류가 걸어온 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식탁은 어느 한 민족의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문명이 서로 만나고 나누며 빚어낸 인류 문화의 유산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오늘 먹는 밥 한 끼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듯 합니다.
참고 자료: 댄 주래프스키, 『음식의 언어』, 통합유럽연구회(서강대), 『식탁에서 만나는 유로메나』, 메리 화이트·벤저민 워개프트, 『다른 방식으로 먹기』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