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경주에 돌아왔다. 화려했던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왔다. 길을 걸으며 하늘을 자주 바라봤다.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다. 패러글라이딩 성지라 불리는 단양에서 날아봤다.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 세상을 누비는 자유로움. 하늘을 나는 것은 세상을 가지는 것이었다.
서울에 다녀왔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버거킹을 찾았다.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물었다. 고기패티와 소스는 어우러져 혀를 무대로 화려한 춤사위를 보였다.
"햄버거가… 이렇게 맛있구나."
눈을 감았다. 식비를 줄이겠다고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웠다. 차디찬 겨울이었던 입속에 봄이 찾아왔다. 그동안 가혹하게 굴었던 입에게 먹는 행복을 선사했다. 양꼬치, 피자, 뷔페 등- 그래, 이게 행복이었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기란 쉽지 않지만, 버리고 나면 알 수 있다. 당연했던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경주대학교를 지나다 발견한 농구코트, 골대를 보니 과거가 떠올랐다. 농구를 참 좋아했다. 나름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실력이 떨어진 것도, 흥미를 잃은 것도 생각해 보면 '자만'때문이었다. 연습을 안 해도 잘 들어가니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주위 사람의 신체능력은 향상되었고 더 이상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땐 이미 늦어버렸다. 키가 작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을 극복하니 잊었다. 내가 왜 그렇게 슛을 던졌는지 말이다. 익숙해지면 잊기 마련이다. 처음 3점 슛을 성공시켰던 설렘을, 나보다 10cm가 큰 사람 위로 던져진 공이 링을 통과할 때의 통쾌함을 나는 잊었다. 그렇게 농구는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전국일주를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둘 내려놨다. 편안한 잠자리,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 편리한 대중교통. 버리고 나니 알게 되더라. 매일 당연하게 행한 일은 당연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매일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 익숙해지면 무뎌지고 잊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하고 확인해야 했다. 그러지 않다가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당연한 건 없다.
경주여자중학교를 지나는 중에 자전거를 끄는 아저씨를 만났다. 해병대 출신으로, 그의 말투에는 시원시원함이 묻어났다.
"걸어서 전국일주 중이라고! 이야~ 대단하네. 해병대 시절에 행군도 많이 했지. 그래!! 열심히 해라!!"
그는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첨성대에 도착했다. 수학여행으로 자주 왔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왔다. 이전과는 다른 이질감이 들었다.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였다. 10대의 내가 30대의 나로 바뀌었으니까. 수학여행 자체로 마냥 즐거웠던 내가, '첨성대를 통해 별을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감성 젖은 의문을 가지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