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자는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외로움을 견디고 고독을 즐길 수 있었다. 정을 주는 순간 떠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니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야 했다. 이방인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도보여행자에게 친구가 없는 건 아니다. 산이, 하늘이, 바람이 그의 친구였다. 돌집 야영장으로 가는 길목에 유명한 카페가 있어 경유지로 택했다. 카페 '감자밭'에선 오리지널 감자빵, 치즈 감자빵, 초코 감자빵 3가지 종류를 판매했다. 오리지널, 치즈 감자빵을 1개씩 구매하고 시그니처 라떼인 감자라떼를 주문했다. 하루 종일 햇볕을 내리쬐면서 지겹지도 않나 보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어깨도 그제야 휴식을 취했다. 쫀득한 감자빵을 입에 물고 라떼를 마셨다. 입안 가득 감자향이 퍼졌다.
카페에서 휴식을 취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배후령 고개는 지옥이었다. 처음 오를 때는 강원도니까 도로가 높다고 생각했다. '해발 500m입니다' 표지판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욕이 저절로 나왔다.
"시x, 힘들어."
욕하면서도 오르는 내가 대단했다. 진짜 의지 하나는 인정해 주고 싶었다. 시골엔 아주 유명한 마약이 있는데 중독성이 강해 한 번 맡기 시작하면 코를 계속 킁킁거린다. 고약한 구린내, 이것을 ‘똥카인’이라 부르겠다. 그 위력은 대단했다. 냄새에 취해 빠르게 위로 올랐다. 약(?)기운에 취해 흥이 올라 노래를 부르고, "할 수 있어!"를 수시로 외쳤다.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범벅이 된 몸을 식혔다. 그리고 천국이 보였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고난 끝에 낙이 온다고, 인생은 행복하기만 할 수 없고, 불행하기만 하지 않다. 그래서 우린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내리막이 끝나자, 국도가 나타났다. 야영장까지 쭉 이어졌다.
야영장에는 이상하게 텐트가 하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오늘 예약 손님이 나 혼자였다. 텐트를 설치하고 사장님과 짧게 대화했다. "야영장 아래서 음식점을 하고 있어요, 저녁에는 자리를 비우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매점은 셀프로 운영되며 카드 결제 또는 계좌이체로 이용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혹시 예약을 두 번 했어요? 트레일러도 가지고 있나요?"라고 묻는 사장님. "어… 저는 트레일러가 없는데요. 예약은 한 번 확인해 볼게요." 예약을 다시 확인했는데 두 번 예약한 기록은 없었다. 예약자 연락처 확인이 가능하다고 하여 확인해 보니 동명이인이었다. 외자는 흔하지만 똑같은 이름이라니 신기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야영장에 홀로 남았다. 적막이 흐를수록 고독이 진해지는 밤이었다. 어제 남은 닭강정과 함께 맥주 두 캔을 홀딱 마셨다. 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많진 않았지만, 반짝이는 별 덕분에 외로움이 가셨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언제 강원도 고성까지 갈지 생각에 잠겼다(이때까지만 해도 120일이라는 시간이 후딱 갈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