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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삿갓 Nov 25. 2024

EP.28 동해 -> 삼척 22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전국일주를 시작하고 28일 만에 일출을 보게 되었다. 서서히 떠오르는 해는 주변을 붉게 물들여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했다. 해가 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쯤 숨어있던 해가 완전해졌다. 만물은 본연의 색깔을 되찾았다.

뭐가 그리 바빠 앞만 봤을까. 해가 뜰 때까지 바라봤다. 세상을 환히 비추는 태양이 부러웠다. 소소한 삶을 바라면서도 야망은 꿈틀거렸다. 그냥 태양이 되고 싶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저 사람 돕는 게 좋았던 학창 시절이었을까.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사회복지사 시절이었을까. 아니면 본래 가진 마음을 인제야 깨달은 걸까. 아, 사람을 사랑하게 된 그때였구나. 바로 나의 첫 국토종주 때였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생이 되었다. 자신감은 넘쳤지만, 달라진 점 하나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사람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소심쟁이고, 학생의 본분을 잊은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내세울 거라곤 군대에서 열심히 단련한 몸뿐이었다. 그래도 자기 객관화는 할 줄 아는 인간이라서 다행이었다. 변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부산으로 떠났다. 오로지 두 발로.

국토종주는 내 세상을 바꿨다. 자유를 알게 했고 사람을 사랑하게 했다. 그것은 곧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홀로 버틴 16일은 긍정적인 내일을 꿈꾸게 했다. 걷기가 가진 힘을 느꼈다. 이후로 걷기는 삶의 일부가 됐다. 걷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걷기가 가진 힘을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했다. 세상을 비추는 태양이 되고 싶은 이유는 그저 사람이 좋았으면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냥 태양이 되고 싶다.

대진항 - 대진 해변 - 어달 해변 - 어달항을 지나 묵호항으로 향하였다. 묵호항엔 ‘까막바위'가 있다. 까마귀가 바위에 새끼를 쳤다 하여 까막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다음으로 한섬 해변으로 향했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단풍잎은 온전히 색깔을 유지했다. 한섬 해변은 도시 속 작은 비밀정원 같았다. 해변이라고 칭하기엔 작게만 느껴졌다. 데크계단을 따라가면 감추해변과 이어진다. 한섬 해변이 작은 줄 알았는데 더 작은 해변이었다. 해변 옆에는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가 깃든 감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백제 무왕과 결혼한  백풍병이라는 변에 걸렸다고 한다. 이를 고치기 위해 감추로 향했다. 그곳에 있던 자연 동굴에서 3년간 불상을 모시며 기도하고, 매일 낙산 용소에서 목욕재계를 하니 병이 다 나았다고 한다. 부처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 감추사다.


“신이시여, 이 정도 간절함이라면 내 기도도 들어주시나이까. 걷고 쓰고, 걷고 쓰고 한 지 어언 3년이 다 되어갑니다. 정말 신이 있다면 나의 기도도 들어주시오. 이 방황하는 젊음이 길을 찾게 도와주시오.”


동해역을 지나 삼척으로 들어왔다. 삼척에는 관동팔경 중 하나인 '죽서루'가 자리 잡고 있다.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일 큰 누정이다. 죽서루에 도착했을 때 공사가 한창이었다. 혹시나 못 들어갈까 노심초사 발만 동동거렸다. 공사 현장 근처에 관리자가 있길래 입장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입장이 가능했다.


“삼척시 서쪽 천리 절벽이 맑은 강 위압하듯 다가섰는데, 그 위에 자리 잡은 누각이 죽서루이다. 죽서루에 올라가 난간에 의지하면 사람은 공중에 떠 있고 강물은 아래에 있어 파란 물빛에 사람의 그림자가 거꾸로 잠긴다. 물속 고기떼는 백으로 천으로 무리무리 오르락내리락 돌아가고 돌아오는 발랄한 재롱을 부린다. 가까이는 듬성듬성 마을 집이 있어 나분히 뜬 연기가 처마 밖에 감돌며, 멀리는 뭇 산이 오라는 듯 가뭇가뭇 어렴풋이 보이니 누대의 풍경이 실로 관동의 으뜸이다. <박종>”


그리고 죽서루 연근당 옆에 용문바위에 얽힌 전설도 흥미롭다. 신룡이 태어난 곳이 용화리의 용소인데, 광진의 용두에서 승천한 용이 백 일 동안 죽서루 아래 오십천에 뛰어들어 유유히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 용왕의 부름을 받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때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용문바위다.

가을 끝자락에 방문하여 죽서루의 아름다움은 덜 했다. 생명의 기운이 활발히 움직일 때 다시 방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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