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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삿갓 Nov 18. 2024

EP.27 강릉->동해 34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24~26일은 서울 일정이 있어 서울에 다녀왔다. 부딪히는 술잔 사이로 퍼지는 대화 소리 끝에 맺힌 왁자지껄한 웃음은 거품처럼 흩어졌다. '혼자' 남겨졌다. 이 이유 모를 공허함이 찾아와 외로움을 꺼내줬다. 한동안 깜깜한 어둠 속에 있던 외로움은 신났다. 한껏 모은 어둠을 여기저기 뿌리더라.

정동진에 도착했다. 정동진 해변을 지나 모래시계 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멀리서 정동진의 상징물인 썬크루즈 호텔이 보였다. 정동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마주치는 사람이 많았다. 저마다 짝이 있고, 가족이 있는데 지금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허기진 배라도 달래면 외로움이 사라질까, 눈에 띈 가게에 들어가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반쯤 먹고 있을 때, 나처럼 혼자인 여행객이 들어왔다. 그녀를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정동심곡 부채길로 향했다. 혼자 사진 찍고, 풍경에 감탄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힘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온 사람과 비교해 너무 초라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분명 조만간 사라질 테지만 한 번씩 찾아올 때마다 무섭다. 이 외로움을 없앨 방법이 더 이상 없다면 그땐 어떨지 싶다. 정동심곡 부채길에는 독특한 모습을 가진 두 개의 바위가 있다. 투구바위와 부채바위다. 두 바위의 설화를 보며 관심을 돌려보았다.

투구바위
아주 옛날 육발호랑이가 밤재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사람(스님)으로 변해 내기 바둑을 두자고 하고, 열십자의 바둑판을 그려놓고 호랑이가 이겨 사람을 잡아먹었다. 당시에는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이 밤 재길 밖에 없어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마침, 그 당시 고려시대 명장인 강감찬 장군이 강릉에 부임해 와 마을 주민들이 밤재에 사는 육발호랑이를 없애달라고 간청하니 강감찬 장군이 내력을 듣고 관리를 불러 ‘밤재에 가면 스님이 있을 테니 그 스님한테 이걸 갖다 주거라’하고 편지를 써주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 편지를 받은 즉시 그곳에서 떠나거라. 만약 떠나지 않으면 일족을 전멸시킬 것이다.’라고 썼다. 육발호랑이가 강감찬 장군님을 알아보고 백두산으로 도망을 갔다. 그래서 그 이후로 육발호랑이가 없어졌고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동해를 바라고는 비장한 바위의 모습이 당시 용맹스러운 강감찬 장군의 형상으로 비친다.
출처 : 정동심곡바다부채길 홈페이지 <강원 어초지연 전설 민속지, 강원도, 1995년 발행>


부채바위
지금부터 한 200여년 전에 이씨 노인의 꿈에 어여쁜 여인이 함경도 길주에서 왔다고 하면서“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방에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했다.
이 씨 노인이 이튿날 새벽 일찍 배를 타고 가 보니 부채바위 끝에 나무 궤짝이 떠내려 와 있어서 열어 보니 여자의 화상이 그려져 있어 이를 부채바위에 안치해 두었다. 그 뒤 이 씨 노인은 만사가 형통했다고 한다. 얼마 후 노인의 꿈에 그 여인이 외롭다고 해서 서낭당을 짓고 화상을 모셔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출처 : 정동심곡바다부채길 홈페이지 <강원도 어촌지역 전설 민속지, 강원도, 1995년 발행>


도직 해변, 망상 해변을 지나왔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무사히 노봉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외로움과 사투하느라 힘들었으니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혼자 도보여행을 한다면 외로움을 잘 견뎌야 한다. 특히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생각하겠지만 정말이다. 외로울 때 사람을 만나면 감정은 해소된다. 일시적으로. 사람과 헤어진 후, 사라졌던 감정은 배가 되어 돌아온다. 주위는 고요해지고, 공허함이 찾아온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그래서 여행도, 걷기도 거의 혼자 한다. 그럼에도 외로움은 언제나 낯설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입맛도 없어 식사를 거른다. 카카오톡을 열어 연락처를 확인한 뒤, 약속을 잡아 사람을 마구 만난다. 그땐 외로움을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것이 찾아올 때마다 사람이 필요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겨내기 힘들었다. 그러다 ‘외로운 게 왜 힘들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혼자니까 힘들다. 혼자가 좋다고 외로움을 잘 견디는 것은 아니었다. 감정을 받아들이니 이겨낼 수 있었다. ‘혼자 잘 있으면서 왜 외로운 거야?’ ‘기가 빨린다고 사람 많은 곳은 가기도 싫어하면서 외로워지니까 사람들을 찾아?’라며 당연한 감정을 외면했다. 혼자가 편한 사람도 외로움을 겪을 수 있다. 인정하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지금도 낯선 감정임이 틀림없지만, 이제는 충분히 느끼다 보내준다.

사람은 감정을 느낀다. 감정이 찾아오면 그냥 받아들이자. 그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왜 기쁜지, 왜 슬픈지, 왜 화가 나는지, 왜 외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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