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인 (1)

4년 만에 미사를 보다

by 김규민

수능을 봤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수능은 인생의 첫 관문이랄까, 나에겐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무언가였는데. 지금 회상해 보면 수능의 기억은 마치 꿈과도 같다. 1교시가 끝나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보다 훨씬 더러운 화장실에서 비참하게 훌쩍이던 기억도, 다음날 조심스럽게 나의 결과를 물어보던 동급생들의 질문들도.


수능 전날 나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겁먹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6시쯤이었나, 엄마가 나른 데리고 성당에 갔다. 수능미사? 였던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그날의 미사는 수험생들을 위한 미사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정도까진 매주 빠짐없이 일요일 오전의 미사에 참석하고는 했던 나였으나,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학원이 생기며 신앙심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런 나인데, 한참이 지나서야 수능 하루 전날에 미사에 참석한다? 신이 있다면 나의 이런 태도는 굉장히 오만하게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위의 이유와 귀찮고, 예민한 나의 상태가 섞여, 나는 엄마에게 미사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도 지지 않았다. 그녀도 불안했던 거였을까, 수능이 끝난 시점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엄마는 나를 두고 먼저 성당에 갔고, 나를 이끌고 성당에 데려간 존재는 의외로 여동생이었다. 그녀의 논리에 반박할 수 없었기에(여동생의 논리는 지금 시점에서는 기억이 안 나나, 아무튼 설득당했던 기억이 난다.), 거의 5년 만에 나는 성당에 가게 되었다.

미사가 시작하기 30분 전쯤에 나는 도착했다. 몇몇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이곳에서 전례부를 하던 시절, 같이 놀곤 했던 친구들의 얼굴들. 그들은 모두 고해성사실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수능 전에 고해성사를 보면 뭔가 좋나 보다. 엄마도 먼저 출발하시기 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었지.

그들도 내일 수능을 보는구나, 하며 나는 구석으로 갔다. 딱히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여동생에게 화가 나 있었다.

"오빠, 고해성사 안 해?"

"안 해."

목소리에 약간 힘을 주며 말했다. 여동생에게 내가 화났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자 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엄마를 찾으러 간 걸까? 생각했으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약 3분 뒤에 밝혀졌다.

3분 뒤, 어떤 여성이 나타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오 동생이시죠? 지오가 부탁해서요. 고해성사해보시는 게 어떠세요?"

나는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나에게 고해성사를 시키고 싶나. 그 녀석은. 나는 결국 동생에게 두 손을 들었다.

먼저 소설 같은 전개를 기대했던 독자가 있다면 그런 일은 없다는 걸 먼저 언급해야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시의 나는 매우 예민했다. 자발적이지도 않은 고해성사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줄에서 만난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와 짧은 잡담을 나누다가 나의 차례가 되었고, 그대로 성사실에 들어간 나는 형식적인 말만을 했다. 그 말에 진심 같은 건 없었다. 신부님이 보석을 주시고, 고해성사실에서 나온 나는 자리로 돌아가 신부님에게서 받은 보석을 외우는 척하며 속으로 30을 셌다. 30초가 지나고 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성전에는 그새 아는 얼굴이 더 늘어나 있었다. 그중에는 초등학교시절 혼자 좋아했던 아이의 얼굴도 있었다. 정말 다 오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들 중 가장 신앙심이 부족한 사람은 내가 아닐까. 저들은 자발적으로 미사에 참석하는 것일 테지, 라며 스스로를 매도했다.


중학교시절의 기억은 흐릿했지만, 미사는 나의 기억상의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봉헌금, 영성체, 신부님의 말씀... 등등. 조금, 아니 많이 길게 느껴졌다. 부담스러운 미사가 끝나고, 이상한 간식상자를 나눠 받으며 나는 도망치듯 나왔다. 밖에는 엄마가 동생과 함께 웃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어때, 편해졌지?"

"응."

거짓말이었다. 사실 미사로 인해 나의 기분은 더 불쾌해진 상태였다. 수능이라는 큰 의례를 위해서 3년 만에 종교적 의식에 출석한다는 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의 나나, 당시의 나나 종교는 흥미로운 하나의 학문이었지, '믿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집에 도착하고 잠에 들 때까지 나는 말이 없었다. 불을 끄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에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수능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지도 않았던 신에게 기도드리며 나는 잠에 들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