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수능 당일.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날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죽이 아니었을까.) 또한 나는 지금 내가 응시했던 시험장이 어디의 무슨 학교였는지를 잊었음을 깨닫고 놀라고 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부모님의 차를 타러 나갈 때 공기가 차가웠는지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 글에서 회상이라 하면 주변의 환경이나 날씨부터 언급하는 법인데(그날은 추웠다, 같은 느낌으로). 어째서 나에게는 날씨의 기억이 없을까. 차를 타고 이동하며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기억 속의 11월 13일은 내가 고사실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기록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당시 스마트폰은 당연히 출입금지일줄 알고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들어오고 보니 내가 속한 반의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개인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고사실에 발을 들이고 가장 먼저 느낀 생각이었다. 가방을 열어 내가 열심히 정리해 둔 사회탐구 영역, 그중에서도 생활과 윤리의 노트를 펼쳤다. 1교시는 국어였지만, 나는 국어는 실전에서 결정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에, 모 강사들의 기출 예측 같은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이 어물쩡하게 지나고, 문이 열리며 중성적인 외모의 감독관이 들어왔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같은 말은 하지 않겠다. 단순하다. 나는 긴장했다. 댐에 난 작은 틈 사이로 긴장이라는 이름의 물이 조금씩 나오다가, 감독관이라는 존재의 등장을 계기로
그 틈은 터졌다. 국어학원 원장님이 입에 달고 다니셨던 말씀.
현장감.
현장감은 1등급도 4등급으로 만들 수 있다. 내려가는 사람은 자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라.
설마, 내가 그런 건 ㅡ
생각을 그만뒀다. 왠지 모르게, 그 이상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컴퓨터 사인펜을 받고, 손목의 시계를 풀어 책상에 두고, 시험지를 받고, 등등. 옆의 아이가 전자시계를 가지고 와 압수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그 아이는 이후 시험도중마다 손을 들어 감독관의 손목시계를 보곤 했다).
그리고 대망에 첫 번째 과목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평소대로 선택과목, 화법과 작문부터 풀기 시작했다.
화법과 작문의 경우 평소보다 조금 늦게 끝났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다행히도 나의 정신상태는 양호했다.
그다음, 문학.
국어학원 선생님도 인정하실 정도로, 문학의 한해서 나의 실력은 상위권에 속했다.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독서(비문학)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능에서의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ㅡ화작, 문학 다 맞고, 독서에서 최대한 점수를 가져가기.
그간의 실전 모의고사와 같은 전적을 고려할 때 화작, 문학을 다 맞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할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다. 이 계획이 성공할 경우, 2등급은 확보가 가능했다.
고전소설까지는 순탄했다. 후에 많은 수험생들이 흔들렸다고 말하는 '범 내려온다'도 무난히 풀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었다.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문제를 푸는 데에만 집중하던 흐름이 끊기고, 이성이 돌아왔다. 학원에서 연계될 것이라며 예측했던 작품이 실제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 연계작품이네. 학원에서 뭐를 강조했더라.'
이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학원의 가르침을 떠올리려 애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막히면 넘어가라는 선생님의 충고도 그때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무너졌다. 그냥 풀면 됐을 텐데. 모르는 작품이었다면 오히려 풀었을 텐데. 본래 수능에서 도움을 받으라고 듣는 연계특강의 가르침이 오히려 나에게는 독이 된 것이다. 물론 이건 나의 정신력이 약한 탓이겠지만 말이다.
시계를 보니 30분밖에 남지 않았었다. 정상적인 템포였다면 나는 이미 비문학을 시작했어야 하는 시간대였다. 나는 현대시를 겨우 넘기고 문학의 중후반부를 풀고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지금 못 풀겠다, 를 반복하며, 지문을 넘기고, 넘겼다. 이건 다음에. 이건 다음에. 절망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국수영중 가장 내가 고점을 받을 수 있는과 목이 국어인데. 그 국어를 나는 망치고 있었다. 가장 보기 안 좋은, '멘탈 무너진 사람이 국어를 푸는 형태'에 참으로 부합하는 형태로. 최저점을 국어에서 찍게 되다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이 말씀하셨던 내려가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별다른 변화 없이, 지문을 오고 가며 건너뛰기를 반복하다가 나의 1교시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 다음은 정말 쓰기 싫지만... 나는 울었다.
물론 교실에서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향했다. 뛰면 우는 게 들킬까봐 일부러 천천히 걸어갔던 것도 기억이 난다. 화장실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화장실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더러웠다. 그리고 창문이 열려있어 찬 공기가 그대로 들어왔다. 가장 끝의 칸에 들어가 조용히 울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에 대한 울음이었고, 다음에는 응원해 준 주변인들에게 미안한 것에 대한 울음이었다. 그리고 조금 진정될 즈음, 다시 울었다. 1교시가 끝나고 춥고 더러운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왜 울었니, 11월 13일의 나야. 이 울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