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인 (외전)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나의 근황

by 김규민

재수를 결심한 건 11월 말이었다. 그 어떤 이전의 시험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는 최저점의 등급이 나로서는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그러나 나의 계속된 설득에, 힘겹게 허락을 받아냈다.

주변의 재수한다는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은 대부분 1월 이던데, 나의 경우에는 2월 중순이다. 그래서 나는 정확히 1월 1일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요즘 나의 일과는 이렇다.

월요일~금요일: 6시 30분 기상, 헬스장 가서 30분 동안 5km 뛰기, 8시 오픈인 할리스 커피숍에 가서 5~6시까지 독서 및 공부하기.

주말:가족일정, 집에서 공부, 개인적인 일정 소화

단순하다. 단순한데, 은근히 힘들다. 굵고 짧은 것보다, 얇고 긴것ㅡ 요컨대 지속성을 요하는 행위가 생각보다 참으로 어렵더라.

아침에 헬스장을 다니며 느낀 게 있다. 우리나라에는 참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많구나(?),라는 감상이 그것이다. 1월 1일 이전에 헬스장은 친구들과 하기 위해 오후 3시에 가곤 했고, 어떨 땐 오후 8시에도 가봤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오전 7시의 헬스장은, 러닝머신의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30분에 4km도 힘들어했는데, 지금의 나는 5km를 뛰고도 지치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다. 이렇게 성장하는 나를 보며 재수에 희망을 가지는 요즘의 본인이다.

헬스가 끝나면 젖은 몸을 이끌고 집에 간다. 겨울이라 집에 가는 과정은 고된다. 땀에 젖은 목이 식으며 생기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생의 더러운 물건을 보는 듯한 눈빛을 받으며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아침을 생략하고 카페로 간다. 방송국 안에 있는 할리스 커피숍인데, 내가 이렇게 매일 오픈런(?)을 하는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그곳의 2층에는 매우 사적인 느낌의 자리가 하나 있다. 이 자리는 인기가 많아서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뺏길 위험이 있다. 아직까지 다행히도 뺏긴 적은 없다. 이틀 전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버리고 아샷추라는 걸 마셔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앞으로 그것만 마실지도. 오픈런을 하면 사적인 공간 앞의 개방적인 자리에 늘 앉아있는 아저씨가 있다. 학원 선생님인 거 같았다. 맨날 학습지 비슷한 무언가를 펼쳐놓고 컴퓨터를 두드리는 걸 봐서는 말이다.

카페에서는 모의고사도 풀고, 책도 읽는다. 최근에 책을 읽을 때마다 자랑하듯(?) 인스타에 올리곤 했는데, 꼴값 떠는 거 같아서 그만해야겠다. 12월 한 달을 백수처럼 놀았더니, 모의고사의 점수가 말이 아니다. 그 와중에도 웃기고 슬픈 건, 그래도 수능성적보다는 높다는 거다...

이렇게 살고 있다. 아. 1월 1일 이후로 술은 딱 세 번 먹었다. 아버지와 한 번, 학교 친구들과 한 번, 학원 친구들과 한 번. 나의 소주 주량은 3잔이더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말해본다. 내 인생에서 술이 그렇게 많을 거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빨리 평일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 카페에서 공부하면 묘한 성취감에 빠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공부하는 나의 모습에서 묘한 변태적인(?) 성취감을 얻는 거 같다.

엄마는 기뻐 보인다. 최근 사주에서 올해 내가 집의 위상을 높일 거라고 나왔다나 뭐라나. 참고로 내 엄마는 수능 100일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백일기도에 참석하신 천주교인이시다.

아무튼 난 이렇게 산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이 행위도 나에겐 일종의 자기만족의 일환이니까...


아, 재수 성공하면 좋겠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