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가기
잡다한 짐들을 버린다고 열심히 버렸는데 아직 버리지 못한 짐들이 많았다.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 가구들과 살림살이를 가져가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생 때는 옷 짐들과 책 정도만 싸서 이사하면 되었기에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었는데... 문득 그때가 그리웠다.
이사 온 첫날, 새로운 집과의 만남.
나름 알아본 집 중에서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구조도 괜찮아서 보자마자 바로 계약했던 집이다.
익숙했고 늘 함께할 줄 알았던 옛 집과의 이별.
오래 살다 나가니 집주인 아저씨께서 잘 돼서 나가는 거냐고 물으셨다.
전혀 그런 게 아닌데... 어설픈 부정의 대답과 함께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인사하고 새집으로 왔다.
그런데 이 집을 계약할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계약을 취소하고 싶을 만큼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 집과 비교가 되면서 집주인을 향한
나지막한 불평의 마음이 일었다.
조금만 더 투자해 주지. 요즘이 어떤 때인데 이런 낡은 것들을 방치해 놨을까.
문고리며 화장실 수납장이며 주방 수납장이나 가스렌지나 심지어 에어컨 실외기까지...
이것저것 그 전집과 비교가 되니 마음이 조금씩 우울해졌다.
'잘 살 수 있을까? 빨리 좋은 다른 집 구해서 나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라고 알려 주며 따뜻한 햇살이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주는 신선한 하루의 시작.
일어나서 창가를 바라보았다. 건물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아래가 훤히 들여다 보이고 저 멀리 산등성이와 하늘이 보이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전에 누릴 수 없었던 새로운 기쁨이 생겼다.
전에 살던 집은 일층이어서 창문을 열어 봤자 옆 건물 벽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일층이어서 짐 옮기기도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나름 좋은 매일의 근력 운동이 된다.
집이 좁아지니 청소든 설거지든 재깍재깍 하지 않으면 눈에 너무 띄어서 안 할 수가 없어
게을렀던 내가 훨씬 부지런해졌다.
생각했던 것처럼 답답한 느낌도 없었다. 나름 가구 배치도 생각해서 해 보았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구조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거구나. 그리고 삶의 모습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사람은 잘 적응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살아간다.
이 전 집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럽게 잘 살고 있는 요즘. 감사하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