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타임

by 셔블

창신동 상하방은

아직 앳되었던 갓 스물 언니의 작은 보금자리

1986년 어느 날의

가지런히 정돈된 고요가

순간으로 박제되어 아픔으로 남았다


‘참 별걸 다 기억한다’

웃는 언니 목소리

아무런 말 없던 그때마냥 예쁘다


1948년생 전태일

버들다리서 살아 진 그 날이

일구칠공년 십일월 십삼일인 줄을

어제야 눈에 넣었다


9일간 의기양양 단일화 예비 후보,

새벽부터 새벽까지 광대처럼 취해버린 하루살이

대선후보, 그해의 행시 출신 한덕수씨 보다

한 살 위 형이시구나


‘어느 때까지뇨’


열 아홉, 스물, 스무 두 살의 꽃다운 나이는

얼마나 아름답고 사무치는 그리움인지

여덟 살 아이 눈에 천사같던 누이도

‘오늘 큰 일이 있었단다’

전해 준 이야기...


위로 받기를 거절하며 울부짖는 여인에게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둘러 안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일(a new thing)을 만들었으니

그만 눈물 뚝 더 이상 방황하지 말라던

신의 말씀과


"... and my sleep was sweet..."


그 날이 오면

곤하고 약한 영혼들이 안전하고 풍요로이

살리란 꿈을 꾸고 깨어보니

세상 개운한 꿀잠이었노라던 그 말도


서기관이 기록했다


아비들이 신 포도를 먹어

자손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이 영원히 사라지고

당사자의 죄악으로만 죽음에 이를 뿐이요

그 또한 법으로

영원히 용서하고 잊어버릴 것임을

각자 자유로와진 마음 속에 새겨

스스로 알리란

새로운 약속 하나

연하디 연한 봄날의 순 같은

가지에 걸었다


형제를 노비 다루듯 모리(謀利)하여 얻은

힘과 이익 때문에

무참히 약속을 깨는 고관대작과 무리들,

그리고 '나의 의'만 소중한 왕에게

'우리의 의 (Our righteousness)'를 가르칠

길고 쓰리고 참혹한 종말의 서사와

가녀린 희망은

벌써 2600년이 다 되어가는

먼 옛 사람의 예언이었다


근로기준법 책이나 태워 시위하려던 노동자들을

지레 먼저 밟으니

차라리 제 온몸을 태워버렸다는 바보회

바보 미싱사


남편 노릇 아비 노릇 못하도록

술직 술직한 것을

딸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만든 교복을 입고

눈으로 배워 뇌에 욱여 넣은 글씨들이

무슨 힘이 있었을까

여기 붙이고 저기에서 떼

령과 률과 례와 고의 혈관으로 끌어모으고

겹겹이 샐 틈 없이 둘러 지킨

정의없고 상식없는 공공의 풍요가

웃다 울고 싶을 만큼 이상하게 뒤틀려

글로벌 Κ-파워를 떠받치는

자살률 1위의

씁쓸한 오늘을 만든 것일까

어차피 나기도 전의 일

어제까지도 감히

모르고 싶었다


하디드의 곡선이 멋진 동대문에서

오래 전 창신동 상하방 문턱 위

유물처럼 반짝이던 고요함을

날려보냈다


플랫폼이라고

AI라고 다르기야 할까마는

오늘도 쌓여가는 새로운 말과 글에

점으로 점으로

살아 지는

순수(純粹)를


드르륵 드르륵

꿰메어 보려다

도로

풀어 놓는다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놓은 수 처럼

째깍째깍 가는 바늘 침마다

이쪽으로 쌓이는 건 바람

저쪽으로 쌓이는 건

더욱 초조해진

시간


21세기가 딛고 서고픈

우리들의 얼굴일까

떨리는 손가락이

묻는다


지나 온 모든 고독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이곳은


"Do not kill children"

차마 부끄러워 내지르지 못했던 말이

멋지게 우뚝 선

그 날


'그래'

'아마 처음일거야'


몰랐을 때 보다

아프고

믿었을 때 보다

불안하고

잊어버렸던 때 보다

뚜렷해진 감각을


미싱은 알까?


자신있어?

자신 있지!


타임머신 대신에

머신타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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