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쿠 테이

9시, 한밤의 진통

by 셔블

열흘이 넘도록 꼼짝없이 진통으로 애만 태우며 나올 기미가 없더니, 사방이 컴컴한 밤 아홉시경에야 드디어 쑥 빠져 나온다.


아아, 제법 늠름한 티가 나는 숫송아지다.


모든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지고 기쁨과 놀라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일순간, 나도 모르게 입까지 벌리고 크-게 공기를 들이 마신다. 차가운 공기가 폐속 깊숙히까지 닿는 걸 느끼며 그제야 길-게 휴 내뱉는 한숨과 함께 보름간 들러 붙어 있던 피곤함이 사르르 몸을 빠져 나간다.


밖에는 눈이 나린다.

시린 바람에 울타리를 감고 야무지게 메마른 며느리밑씻개 넝쿨마저 온전히 아름다워 보이는 밤 - 크리슾한 새틴이 사각대는 오스트리아 무도회 한복판에서 도도한 왈츠를 추는 황태자비라도 이 보다 사랑스러울 것 같지 않다. 날이 풀리면 금방이라도 보란 듯 생기가 차오를 것만 같다.


오늘 밤 온 기운을 쓰고도 자신을 지켜보는 어미 곁에서 갓난 송아지는 부르르 떨며 세상 모를 평안한 잠에 빠져 들 테다. 차일피일 핑계를 벌어주던 산파일이 끝났다. 넝쿨 처럼 세월을 감고 영혼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집요하게 하루하루 가슴을 옥죄던 그 일을 이제 피할 수 없이 고스란히 마주할 시간. 차라리 잘 되었다. 농 익은 고름이 터지면 상처는 낫는 법이다. 벌써 가슴 한켠이 후련하다.


에이는 추위가 마지막 온기를 뺏지 못하도록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뺨을 스치고 코 끝을 찌르는 찬 바람이 콧속을 통해 머릿속을 빠르게 한바퀴씩 돌아 나온다. 잡스런 생각까지 깨끗하게 거르고 비워주는 이 작은 필터 가 사실은 마지막 영혼까지 숨쉬게 하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며칠이 흘렀다.


여전히 좀처럼 짬이 나지 않더니, 사그러질 듯 계속 이어지는 한파와 폭설에 없을 것 같던 말미가 생겼다. 세상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한결같은 그녀를 생각한다. 요도쿠 테이. 감당키 어려운 수천 겹의 파도라도 무서워하지 않는 그 강한 부드러움은 처음부터 타고난 것일까? 우리 모두는 그녀를 닮은 것일까? 닮았다는 것도 다르다는 것도 지금은 중요치 않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 차를 물고 길을 나선다. 이제 시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