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은 찰나의 순간이었음을

실력은 녹슬어도 마음가짐은 변함없어야

by Dylan Kim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피파랭킹 6위였던 강력한 우승 후보 이탈리아는 안정환 선수에게 골든골을 허용하며 16강에서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하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과 프랑스를 각각 준결승과 결승에서 격파하며 4번째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자국에게 선물한다. 월드컵 한정으로 이탈리아 축구의 정점을 찍은 시기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2 무 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만다. 디펜딩 챔피언 답지 않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같은 조의 잉글랜드를 상대로 1:1 동점인 상황에서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가 후반 5분에 넣은 역전골에 힘입어 간신히 체면을 살렸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와 우루과이에게 내리 2패를 당하며 잉글랜드와 함께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월드컵 우승팀이었던 이탈리아는 이제 월드컵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인재 육성 실패와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보수적인 시스템 등, 다소 느슨해진 스탠스가 만들어낸 안일함의 결과라고 평가받고 있다.


마리오 발로텔리는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이 정점을 찍고 추락하던 시점 세대교체의 중심에 있었던 선수였다. 자국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까지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며 유럽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유로 2012에서 독일을 무너뜨리고, 2014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마지막 월드컵 골을 기록하며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커리어를 기록했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소속 클럽에서는 성실하지 못한 태도와 각종 불화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찍혔다. 잦은 이적으로 입지도 불안정 해지며 재능을 꽃피울 새가 없었다. 결국 감정 기복이 심하고, 돌발 행동과 거친 언행으로도 갖은 질타를 받다가 어느새 하위리그 팀을 전전하는 평범한 선수로 몰락하고 말았다.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인상을 남겼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맨체스터 더비 전날 집에서 폭죽놀이를 하다 집을 홀라당 태워먹고 팬들에게 무수한 질타를 받은 후 당일 득점에 성공하며 보여준 세리머니가 바로 'Why Always Me'.


윈덤 클락은 2022년 3월, 함께 해온 스윙 코치들과 관계를 정리했다. 긴 슬럼프와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성과들만 쌓여가며 자신에 대한 분노가 커져만 갔다. 캐디와 에이전트는 그가 바뀌길 원했다. 하지만 단순히 스윙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내면 한 구석에 응어리를 갖고 있었다. 조언에 따라 그해 12월, 스포츠 심리상담사 줄리 엘리언을 만났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컸다. 자신을 향한 실망감, 프로로서의 실패감,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 대신 자신에게 말을 걸고, 과정을 믿게 했다.

그 변화는 마침내 2023년 5월, 웰스파고 챔피언십에서 현실이 되었다. 잰더 쇼플리를 4타 차로 따돌리고 19언더파로 첫 PGA 투어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즌 초 100위권 밖이었던 세계 랭킹은 단숨에 10위권으로 진입했다.


좋은 체격과 볼 스트라이킹 능력에도 이견이 없었을 만큼 그의 자질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항상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피지컬이 문제가 아니었다. 상담을 통해 감정적으로나 멘탈적으로 흔들렸던 부분을 개선해 나갔다. 이는 오랜 기간 가슴 깊이 쌓아 두었던 '나는 안된다'는 의문을 사라지게 했다.


시그니처 대회인 웰스파고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맞이한 US 오픈에선, 투어 1승을 막 따낸 무명의 언더독 포지션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클락에겐 투어 우승이 운이 아닌 실력이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한 곳에 모인 메이저 대회인 만큼 경쟁은 치열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는 상담사 줄리와 나눴던 말들을 떠올렸다.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어.”

우선 좋은 경기를 하는데 집중했다. 결과를 먼저 생각하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이유를 과정에 집중하고 잘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찾아냈다. 그러자 US 오픈 우승이라는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10년 전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손에 넣기 시작했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줄리는 그의 잠재력을 믿었고, 클락은 그 믿음을 현실로 바꿨다. 그 해 윈담 클락은 데뷔 이래 최고의 시즌을 장식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2023 US 오픈 마지막 위닝 퍼트를 성공시키고 1타 차이로 로리 매킬로이를 누르며 메이저 대회 우승자 반열에 오른 순간


이듬해도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페블비치 프로암에서 또 한차례 우승을 따내며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통산 3승을 기록했다. 3월에 열린 시그니처 대회인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과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도 각각 2위와 공동 2위를 달성하며 세계 랭킹 한자리 수에 진입했다. 첫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선 아깝게 컷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지만, RBC 헤리티지에서 3위를 차지하며 스코티 셰플러와 잰더 쇼플리에 이어 커리어 사상 가장 높은 순위인 세계 랭킹 3위에 오른다. 그렇게 명실상부 네임드 선수 반열에 올랐다. 하반기에 열린 파리 올림픽에선 미국 남자 골프 대표팀으로 발탁되며 명예로운 커리어를 추가했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서도 준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하며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됐다.


그런 그에게 드라이버 정확도는 투어 시절 내내 약점으로 꼽히는 아킬레스건이었다. 투어 평균보다도 낮은 수치는 항상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았다. 티 샷 영점이 잘 잡히지 않았던 대회에서도 그나마 어프로치와 퍼트로 리커버리를 해낸 덕분에 나쁜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하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PGA 챔피언십 마지막 날 최종 라운드 15번 홀이었다. 보기 5개와 버디 4개를 기록하며 타수를 줄이지 못한 채로 15번 홀 티 박스에 들어섰다. 티 샷이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진 걸 확인하자마자 드라이버를 뒤로 내던졌다. 드라이버는 그대로 광고판을 강타했다. 드라이버는 헤드와 샤프트가 분리되고, 광고판 또한 파손되었다. 갤러리들은 프로답지 못한 행동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광고판 뒤에서 깃발을 들고 있던 보안요원은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추후 SNS에 윈담 클락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대회가 끝나고 팬들과 관계자들로부터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다. 곧바로 SNS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프로로서 부적절한 행동이었음을 밝혔다. 이유는 작년과 재작년에 보여준 퍼포먼스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메이저 대회를 치르고 있었던 자신에게 화가 났었기 때문이라고.


비교적 짧은 시간만에 높은 곳에 올랐지만, 너무 급하게 올라온 나머지 그가 2년 전 US오픈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과정'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며 들어 올린 트로피가 무색하게 2년 만에 돌아온 US오픈에서 컷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함께 주말 라운드 티켓을 반납했다. 하지만 감정을 또다시 다스리지 못한 나머지, 클럽하우스의 라커룸을 파손하며 불명예스러운 방식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말았다.



모든 프로 선수들은 슬럼프를 겪는다. 그러나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식은 곧 그 선수의 품격을 말해준다. 드라이버를 던지거나, 라커룸을 문짝을 부순다고 해서 실력이 돌아오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을까? 설령 가능한들 그렇게 상실과 슬픔을 해소하려는 방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없다. 특히나 오랜 전통을 가진 신사적인 스포츠인 골프계에선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감정을 다스리며 통제할 수 있는 선수만이 존경과 함께 오랜 시간 잔디 위에 머무를 기회가 주어진다.


윈담 클락이 첫 투어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세계 랭킹은 31위였다. 2년이 지난 현재는 30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반등하는 과정을 찾는 선수가 될지, 결과를 좇는 선수가 될지는 마음가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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