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him cook

한국인은 아닌데 한국 이름을 가진 호주 국적 골프 선수

by Dylan Kim

'그가 요리하게 해'

라고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엔 다른 방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2022년부터 SNS에서 쓰이기 시작한 이 신조어는 '그가 뭘 하는지 보자' 또는 '그가 하도록 내버려 둬' 정도로 해석되고도 있다.


이민우 선수는 SNS에 진심이다. 골프만큼은 아니더라도, PGA 투어 소속 선수들 중에서도 유독 활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Let him cook’이라는 문구도 처음엔 게시물에 붙인 태그였지만, 어느새 그의 상징이 되었다. 대회에선 갤러리들이 이 문구를 외치며 환호한다. 하얗고 긴 요리사 모자를 쓴 그는 이제 ‘셰프’로 불린다.


1701002118664.jpeg Let him cook!


팬들과 소통에 진심이고, 관심을 끄는데 적극적인 이유는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다. 남들을 웃기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게 재밌다는, 소위 말하는 인싸 기질을 가진 덕분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90만 명을 넘어섰다. 타이거 우즈(약 370만)와 로리 매킬로이(약 350만) 등 실력으로 최정상급에 오른 선수들에 비할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투어에서 우승 경력이 가장 적은 선수 중엔 단연 가장 많은 팔로워 수를 보유하고 있다.


DP 월드투어에서는 이미 세 차례 우승을 거두며, 우승 경쟁에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증명해 왔다. 그러나 토미 플리트우드처럼, PGA 투어에서는 오랜 시간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프로 데뷔 7년 차, PGA 투어 입성 4년 만에 텍사스 칠드런스 휴스턴 오픈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image.jpg 182cm, 75kg. 상대적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졌지만 폭발적인 스윙 스피드를 보여준다. 투어 평균 볼 스피드보다 훨씬 높은 수치는 그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세계랭킹 1, 2위인 스코티 셰플러와 로리 매킬로이가 나란히 출전한 이번 대회는, ‘셰플러의 시즌 첫 승이냐, 매킬로이의 시즌 3승이냐’를 두고 마스터스 토너먼트 전초전으로 주목받던 무대였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이민우가 버디 7개를 몰아치며 보기 없이 코스를 깔끔하게 요리해 냈고, 합계 17언더파로 단독 선두에 올라선다. 파이널 라운드에선 게리 우드랜드(8 언더)와 스코티 셰플러(7 언더)가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이민우는 3 언더를 더하며 합계 20언더파, 두 선수를 1타 차로 제치며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위닝 퍼트를 앞둔 마지막 홀에서 나왔다. 세컨드 샷이 살짝 길어 온그린에 실패했다. 프린지에 안착한 공은 퍼터로 홀컵을 노렸다. 공은 홀컵과 단 8인치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갤러리는 물론 선수와 캐디도 우승을 확정 짓는 분위기로 현장은 뜨거워졌다. 동반자들이 퍼트를 마무리하고 다시 볼마커 앞에 공을 올려놨다. 이때, 8인치라는 매우 짧은 거리를 남기고도 공과 홀컵사이에 서서 그린 경사를 읽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자 갤러리와 중계진들 모두 박장대소했다. 퍼트를 준비하며 홀컵에 공이 떨어지기 전 고요함을 깨는 이례적인 장면은 이민우 선수가 골프를 그만큼 즐기고 있고,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진심임을 보여줬다.


commflags__3_.png 2025 텍사스 칠드런스 휴스턴 오픈에서 첫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이민우


그는 기량에 비해 PGA 투어 첫 우승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선수였다. 남매인 이민지 선수와는 나란히 US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권에서 우승하며 호주 남자 선수로는 최초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는 그야말로 촉망받는 골프 유망주였다. 골프 코치인 어머니와 싱글 핸디캐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둘은 DNA에 각인된 골프 유전자를 바탕으로 일찍부터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성장했다.

누나 이민지는 프로 데뷔 11년 차 베테랑으로 LPGA 투어에서 메이저대회 3회 포함 11차례나 우승하며 정상급 골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동생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누나는 착실하게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그때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이민지의 동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렇다면 동생이라는 이유로, 데뷔가 늦었다는 이유로, 기량이 차이나고 우승 횟수가 차이나는 걸까? 이 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골프에 접근한다. 이민지는 "나는 루틴에 집중하고 차분하며 정적인 사람"이라 표현하며, "민우는 자유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성격도, 플레이스타일도 N극과 S극과 같은 정반대지만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좋은 경쟁자이자 조력자다.


SNS에 빠져 산다는 얘기는 곧 연습을 게을리하지는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연습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독하리만큼 연습에 매진했다던 비제이 싱 선수와는 다르게 연습장에 틀어박혀 공만 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경기를 즐기고, 필드 위에 서 있는 순간에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골프를 물론 잘 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골프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프로로서 집중력은 당연히 필요하죠. 하지만 계속해서 몰아친다고 좋은 결과가 따르는 건 아니에요.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에요.”



경기 중에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무게 잡기보단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하고, 그 속에서 유쾌한 에너지를 퍼뜨린다. 이민우식 골프는 기술보다 태도에서 드러나고, 꾸준함보다는 즐거움에서 힘을 얻는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호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두 국가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잘 어우러진 사람임을 보여준다.


골프를 대하는 방식은 어쩌면 치열한 경쟁 시대와 조금 엇박자를 이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발걸음이야말로 이민우라는 이름을 이젠 '이민지의 동생'이 아닌 '셰프'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한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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