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최초를 쓰다

마이크 위어가 특별한 이유

by Dylan Kim

왼손잡이 골퍼는 생소하다. 일상생활에서도 보기 힘든 왼손잡이인데, 골프까지 왼손으로 치는 사람은 주변에서 보기 드문 존재다. 실제로 골프를 치는 사람들 중 약 10%가 왼손잡이다.


왼손잡이는 제약이 많다. 실생활에서도 오른손잡이를 위한 인프라가 대부분이다. 골프연습장도 열이면 아홉이 오른손잡이를 위한 타석이다. 타석 가장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가야 왼손잡이를 위한 타석이 마련되어 있다. 이렇듯 장비는 물론이고, 레슨도 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왼손잡이들은 수많은 제약을 받으면서 골프를 치고 있다.


원래 왼손잡이지만 오른손으로 골프를 시작한 선수들도 있다. 골프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벤 호건은 왼손잡이였지만, 당시 왼손잡이용 골프용품을 구할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오른손잡이 골프선수가 되었다.

백상어라는 별명을 가진 호주 출신 그렉 노먼은 왼손으로 쥘 수 있는 클럽의 한계, 스윙을 가르쳐줄 스승의 부재 등을 꼽으며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른손골퍼가 되었다.


반대로 투어 45승에 빛나는 필 미켈슨은 오른손잡이였다. 하지만 오른손잡이인 아버지가 스윙을 하는 모습을 거울 보듯 앞에서 따라 하다가 왼손잡이 골퍼가 되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왼손잡이 골퍼 중에선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skysports-phil-mickelson-masters_4617371.jpg 2004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자인 필 미켈슨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주는 마이크 위어


마이크 위어 역시 오른손잡이였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소년에게 골프채 대신 하키 스틱이 먼저 쥐어졌다. 아이스하키가 국민 스포츠였으니까. 유년기 시절엔 또래와 마찬가지로 하키 스틱을 잡고 새하얀 빙상장을 내달렸다. 문제는 손잡이였다. 스틱을 쥘 때 왼손이 아래로 가는 ‘왼손 스윙’이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그러나 하키 선수로는 체격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골프로 전향하게 되지만 습관은 고치지 못했다. 하키 스틱을 잡던 방식 그대로, 클럽을 왼손으로 쥐었다. 왼손잡이 골퍼의 시작이었다.


이른 나이에 종목을 전향했지만, 항상 왼손으로 쥐는 게 문제였다. 왼손으로 하면 불리하니까 오른손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조언을 받아왔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쥔다는 이유만으로 늘 의문과 싸워야 했다. 사춘기 소년에게 쉽지 않은 무게였다.

11살이 되던 해, 그의 고향인 사르니아에 위치한 휴런 오크스 골프 클럽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골프 전설인 잭 니클라우스를 만난다. 훗날 그는 방황하는 마이크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왼손으로도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면 더욱 그래야지.”

그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왼손잡이 골퍼로 끝을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이 조언이 담긴 편지는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언을 따라 왼손 골퍼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캐나다라는 환경은 골프 선수에게 기회의 땅이라기보다는 한계의 벽에 가까웠다. 계절적인 한계, 골프 인프라 부재는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어떻게든 미국으로 진출해야만 했다.


20대 초반은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그리고 유타주에 있는 브리검영 대학교로 진학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2년 프로로 데뷔하여 자국 리그인 캐나다 프로 골프투어에서 3차례 우승을 이뤄낸다. 하지만 프로세계는 냉정했고, 살아남기란 더더욱 힘들었다.


프로 전향 이후부터 1997년까지 Q-School에 수차례 도전했지만, 매번 카드 획득 직전에 탈락하며 길고 긴 무명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경험을 쌓을 수 있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1998년, 결국 Q-School 마지막 라운드에서 메달리스트로 등극하며 PGA 투어 카드를 획득하며 끊임없는 도전 끝에 마침내 투어에 입성한다.


이듬해 1999년,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노스뷰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에어캐나다 챔피언십은 그가 첫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기에 가장 완벽한 대회였다. 45년 만에 캐나다에서 개최된 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캐나다인이라는 명예도 함께하며, 모국 팬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GettyImages-539472-e1606925060926-1024x576.jpg 벙커샷 하는 마이크 위어. 2000 WGC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데뷔 이후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무렵, 공교롭게도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와 겹치며 언론의 관심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때를 기다렸다.

20세기의 끝자락은 물론이고, 21세기가 시작되고도 타이거 우즈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그야말로 골프 절대자 그 자체였다. 2001년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으로 타이거슬램이라 불리는 4대 메이저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는 유일무이한 골프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던 타이거 우즈는 2002년 마스터스까지 우승하며 2년 연속 마스터스 우승에 성공한다.


마이크는 2003년 세계랭킹 10위권에 안착하여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왔다. 일찍이, 2월에 열린 대회에서 두 차례나 우승을 하며 그야말로 물이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가 여전히 큰 벽으로 자리 잡고 있던 시기라 상대적으로 압박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고, 3 연속 마스터스 우승 가능성을 두고 언론과 골프팬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2003년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우천으로 목요일이 아닌 금요일에 티 오프되었다. 때문에 모든 선수가 1번 홀에서 시작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1번 홀과 10번 홀에서 출발하는 투 웨이 방식으로 하루에 1라운드와 2라운드를 진행했다. 마이크는 각 라운드에서 2 언더와 4 언더를 치며, 합계 6 언더로 2위와 4타 차로 여유롭게 선두자리에 올라섰다.

하지만 무빙데이인 3라운드에서는 3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6타수를 줄인 제프 매거트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마무리했다. 우승 경쟁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도 치열했다. 선두를 달리던 제프는 3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와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3라운드 이븐파로 마무리했던 렌 마티어스가 무려 7타를 줄이며, 4타를 줄인 마이크와 나란히 7 언더로 오거스타 내셔널에서의 72홀을 끝마쳤다.


둘은 곧바로 파 4 10번 홀에서 서든 데스 플레이오프를 준비했다. 두 선수의 티 샷은 깔끔하게 페어웨이 중앙으로 안착했다. 하지만 렌의 171미터 아이언 샷이 당겨지며 온그린에 실패했다. 반면 마이크의 6번 아이언 세컨 샷은 온 그린에 성공하며 약 13미터 버디 퍼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렌의 그린 주변 어프로치가 홀컵을 넘어 길게 떨어졌고, 파 퍼트를 준비해야만 했다. 마이크는 버디로 게임을 끝낼 수 있었던 상태, 하지만 오거스타 내셔널의 유리 같은 그린은 쉽사리 공을 홀컵에 떨어지게 허락하지 않았다. 렌의 파 퍼트 또한 쉽지 않았다. 내리막 슬라이스 라이를 타고 홀컵을 지나 그린 끝에 가서야 멈췄다. 신중하게 그린을 다시 읽고 보기 퍼트를 했지만 다시 힘 조절에 실패하며 볼마커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는 파 퍼트를 남겨두고 있었지만, 보기를 해도 괜찮았다. 공은 홀컵 왼쪽을 살짝 비켜가며 탭인 보기를 할 수 있는 거리에 멈춰 섰고, 보기 퍼트가 홀컵에 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게 되었다.


그는 마스터스 역사상 첫 왼손잡이 챔피언이자, 캐나다 출신 최초의 그린 재킷 주인공으로 이름을 새겼다. 이 우승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을 넘어 캐나다 골프 역사 자체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캐나다는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낸 골퍼가 거의 없었고, ‘골프 불모지’라는 꼬리표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마스터스 제패는 캐나다 전역에 “골프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었고, 수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훗날 브룩 헨더슨과 같은 차세대 스타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불씨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메이저 대회 우승은 왼손잡이 골퍼들에게 상징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전까지 마스터스 그린 재킷은 철저히 오른손잡이들의 것이었지만, 위어는 편견을 깨고 왼손잡이가 가진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이후 필 미켈슨, 버바 왓슨 등이 마스터스를 제패하며 '왼손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도 위어의 선구자적 우승 덕분이라고 평가된다.


Big-Read-Mike-Weir-with-Tiger-Woods-Green-Jacket.jpg 당시 세계 랭킹 1위 타이거 우즈로부터 그린 재킷을 가져오는 2003 마스터스 토너먼트 챔피언 마이크 위어


하지만 그 영광 뒤에는 긴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듬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마스터스에선 컷 탈락이라는 잔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무난한 커리어를 이어가던 중, 2010년 팔꿈치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사생활에서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사유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삶과 딸의 양육을 위해 잠시 골프를 쉬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부진이 계속해서 짙어가던 2014년이었다.


투어의 냉혹한 현실은 잔인했다. 한때는 투어 카드를 지켜내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깊은 슬럼프에 빠졌지만, 위어는 완전히 클럽을 내려놓지 않았다. 콘페리 투어와 1부 투어를 오가며 끝없는 재기를 꿈꿔온 끝에, 시니어 투어 무대에서 다시 불꽃을 되살렸다. 2021년 인스페리티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PGA 챔피언스 우승은 그가 여전히 경쟁자임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2024년, 그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역할을 맡았다. 바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프레지던트컵 국제팀 단장직에 선임되었다. 비록 우승트로피는 또다시 미국팀에게 돌아갔지만, 고국에서 후배 골퍼들과 함께 팀을 이뤄낸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계 골프 무대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최초의 왼손잡이 챔피언’이라는 상징성이 이제는 후배 세대를 이끄는 자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단순한 메이저 대회 우승자가 아닌, 역경과 편견을 딛고 최초의 길을 걸어간 개척자로 기억한다. 왼손으로 휘둘러낸 스윙은 오거스타의 그린 위에서, 그리고 캐나다 골프 역사 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결실로 남게 되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캐나다 출신 골프 선수들과 왼손잡이 골프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스윙을 하고 있다. 그 뒤엔 후배들을 바라보는 전설, 마이크 위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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