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대회 우승자로 알아보는 트렌드
골프 팬이라면 누구나 주목하는 최고의 영예인 메이저 대회 우승은 골프 선수로서 달성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커리어다. 그중에서도 모든 메이저 대회를 한 차례씩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수준 높은 선수들에게만 허락된 타이틀이다.
현재 PGA 투어는 4대 메이저 대회 - 마스터스 토너먼트, US 오픈, PGA 챔피언십 그리고 디 오픈 챔피언십 - 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LPGA 투어는 - 셰브론 챔피언십, PGA 챔피언십, US 오픈, 에비앙 챔피언십 그리고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 5대 메이저 대회로 진행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지난 수년간 PGA 투어와 LPGA 투어의 메이저 대회 우승자 국적 분포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는 점이다. PGA 투어는 대다수 미국인 선수들이 우승을 독식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LPGA 투어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하며 글로벌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PGA 투어에서 개최된 메이저 대회에서 지난 10년간은 미국인 선수들이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취소된 2020 디 오픈 챔피언십을 제외하고 39번의 대회가 열렸다. 그중 미국인 선수들이 28번 정상에 올랐다. 주요 선수로는 현재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 브룩스 켑카, 잰더 쇼플리, 브라이슨 디섐보, 콜린 모리카와 그리고 저스틴 토마스 등 주로 최상위권 선수들이 다수의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며 뚜렷한 강세를 보였다.
반면, 나머지 11회 우승자들의 국적은 스페인(3회), 영국(2회)을 비롯해 일본, 호주, 스웨덴,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에서 각각 한 명씩 우승했다. 특히 PGA 챔피언십은 지난 10년간 미국인 선수들이 우승컵을 독식하며 2015년 우승자 제이슨 데이를 이후로 비미국인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는 미국 골프 인프라, 대규모 스폰서, 그리고 PGA 투어의 미국 중심적 운영 구조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넓은 면적을 바탕으로 골프 코스와 훈련 시설이 풍부하고, 아마추어 및 주니어 골프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구축되어 있어 유망주들이 일찍부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보니 대회의 경쟁 수준은 자연스럽게 높아졌고, 압도적인 상금 규모와 스폰서십 시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일반 대회의 평균 총상금이 올해 기준으로 8백만 달러 이상, 시그니처 대회와 메이저 대회는 약 2천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매주 열리는 대회가 메이저급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선수들에게 경기력 발전과 함께 더 큰 동기 부여를 제공한다.
PGA 투어의 상금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3년 약 2.6억 달러였던 총상금이 2023년에는 5.6억 달러를 넘었다. 작년 기준 상위 50위권 선수기준 평균 상금 수입 550만 달러를 벌어들일 정도로 경제적 지표는 국제 골프 무대에서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준다. 다만 이런 수익에도 불구하고 캐디와 코치 그리고 세금 등 비용을 제외하면 실제 손에 남는 금액은 절반을 넘기기 어렵다는 점들을 고려했을 때, 비미국인 선수들에게는 주거 및 이동에 따른 추가 지출로 인해 실질적으로 불리함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상당수 해외 선수들이 투어 활동을 위해 미국에 별도 거주지를 마련하지만, 이는 사실상 ‘강제된 선택’에 가깝다.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정과 환경은 자국 선수들에게 안정적인 기반이 되지만, 해외 선수들에게는 생활 근거지마저 옮기게 만드는 구조적 장벽이자 약세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PGA 투어 연간 대회는 45개 전후로 매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몇몇 소수 대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대회가 미국과 북중미 그리고 캐나다에서 개최되어 자국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대륙간 이동이 없기 때문에, 시차 적응 부담이 적다. 때문에 컨디션 조절에 유리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우승 확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비미국인 선수들은 장거리 이동과 시차 적응, 문화적 차이 등에서 불가피하게 불리한 조건에 놓인다. 대회 일정 대부분이 미국에 집중된 만큼, 시즌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게 따르며, 이러한 격차가 결국 성적에서도 드러난다.
LPGA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메이저 대회가 연간 5회 열리는 LPGA에선, 최근 우승자들 국적이 PGA처럼 단조롭지 않다. 1950년 LPGA가 출범하며 다소 역사가 짧지만, 대체로 초창기엔 역시나 미국 선수들이 우승자 자리를 휩쓸었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 조금씩 비미국인 선수들이 우승자 이름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당시엔 메이저 대회가 4개였다. 현재의 셰브론 챔피언십은 당시 나비스코 챔피언십, 캐나다 여자 오픈은 당시 듀 모리에 클래식으로 진행되며 US 여자 오픈과 LPGA 챔피언십과 함께 4대 메이저로 자리 잡았다.
1990부터 1999년까지 열린 40차례 메이저 대회 가운데 미국인의 우승은 29회, 비미국인은 11회였다. 그 무렵 스무 살의 박세리는 1998년 LPGA 챔피언십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거두며, 한국인 최초로 LPGA 메이저 정상에 오르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달 뒤 열린 US 여자 오픈에서는 최연소 챔피언 타이틀과 함께 데뷔 시즌에만 메이저 2승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운다. 연장전에서 보여준 맨발 투혼은 지금까지도 골프 팬들과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있다. 당시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있었지만, 박세리의 연속 메이저 제패는 단연 압도적인 화제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미국인 선수들의 강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스웨덴의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 호주의 캐리 웹 그리고 박세리를 필두로 여러 국제 선수들이 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메이저 트로피를 휩쓸었다. 그 결과 2009년까지 열린 40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미국인 우승은 고작 8회에 그쳤다. 반면 스웨덴이 8회, 한국이 7회, 호주가 6회 우승을 기록하며, 90년대와는 확연히 다른 판도가 펼쳐졌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각국에서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국은 박세리 이후 세대가 주니어부터 세계 무대를 목표로 성장했으며, 당시 많은 KLPGA 선수들이 해외 투어로 뛰어들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투어 54승이라는 압도적인 기량을 뽐낸 아니카 소렌스탐은 피지컬 트레이닝과 스윙 분석 등 과학적인 접근법을 골프에 접목시켰으며, 스웨덴 주니어 골프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전폭적으로 늘리는 발판을 마련했다.
반대로 미국은 농구, 미식축구, 야구 등 대중 스포츠에 재능 있는 인재들이 쏠리면서 골프 유망주 육성이 상대적으로 더뎠다. 게다가 캐나다 여자 오픈이 2001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으로 대체되고, 아시아에서도 일반 대회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미국 선수들이 누리던 홈 어드밴티지가 점차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2000년대부터 골프계 전체의 판도가 바뀌면서 LPGA의 '미국 리그'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글로벌 투어'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시기다.
2010년 이후에도 비미국인 선수들의 강세는 여전히 이어졌다. LPGA는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4대 메이저 체제를 2013년 에비앙 챔피언십을 승격시키며 5대 메이저 체제로 개편한다. 이는 유럽 시장을 더욱 공고히 함과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선수들에게 더 큰 동기 부여를 제공하는 결정이었다.
무대가 넓어진 만큼 주인공도 다양해졌다. 박세리의 성공을 발판 삼아 박인비, 김효주 등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와 투어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한국 골프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한국 선수들이 일으킨 돌풍은 아리야 주타누간(태국), 청야니(대만), 시부노 히나코(일본) 등 아시아권 스타 탄생으로 이어지며 투어의 글로벌화가 더욱 가속화됐다.
미국 역시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오랜 침체 끝에 렉시 톰슨, 릴리아 부 그리고 로즈 장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투어에서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24년에만 7승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뽐낸 넬리 코다가 여러 국제 선수들의 우승에 제동을 걸며 미국의 위상을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이어오던 흐름을 뒤집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넬리 코다의 언니인 제시카 코다는 미국 선수들의 훈련 방식과 헌신도 차이가 큰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선수들은 일찍이 훈련에만 전념하고 전문적인 코스를 밟아 골프를 직업처럼 대하는 반면, 미국 선수들은 학교 생활과 다양한 활동을 병행해 골프에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좋은 인프라를 갖췄지만, 더 체계적이고 높은 훈련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계속해서 투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PGA와 LPGA의 대조는 올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2025년 들어 지금까지 열린 8개월간의 LPGA 대회에서는 단 한 명의 선수도 2승 이상을 거두지 못했다. 투어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지금 까지만 보면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록이다. 그만큼 선수층이 두텁고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반대로 PGA 투어에서는 스코티 셰플러(5승)와 로리 매킬로이(4승)가 다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히 독주 체제가 굳건하다.
남자 무대는 미국인 선수들의 강세가 이어지지만, 여자 무대는 비미국인 선수들이 주도권을 쥐고, 이제는 특정 국가가 아닌 다수의 선수들이 우승을 나누어 가지는 양상으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팬들이 원하는 그림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처럼 우승자가 매번 바뀌는 치열한 경쟁 구도일까, 아니면 시대를 대표하는 ‘절대 강자’의 등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