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베어의 그림자

잭 니클라우스에겐 악몽 같았던 천적, 리 트레비노

by Dylan Kim

잭 니클라우스가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1971년과 1972년, 그가 빛나면 빛날수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선수가 있었다. 여러 차례 우승의 문턱에서 발목을 잡으며, 메이저 18승에 빛나는 그를 흔들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인물이 바로 리 트레비노다.


그는 멕시코계 이민자의 아들로 댈러스 빈민가에서 성장했다. 정규 골프 교육은커녕 코치도 없이, 골프장을 돌며 캐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스윙을 만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틀에 벗어난 자세와 궤적이었지만, 현재는 페이드를 가장 맛있게 구사했던 훌륭한 샷 메이커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독창적인 스윙만큼 성격이나 개성도 역시 남달랐다. 유쾌하고 서글서글함 덕분에 붙여진 별명이 바로 '메리맥스'. 흥겹고 매사에 즐거운 멕시칸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덕분일까. 경기 전날 밤까지 파티를 즐기거나 심지어 술냄새를 풍기며 대회장에 들어섰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17세에 해병대에 입대하며 복무 기간 동안 규율과 집중력을 기른 덕분에,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침마다 공을 치는 습관을 들이며 자기 관리에 철저함을 보여줬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골프를 시작했지만, 트레비노와 시대를 함께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그를 천부적인 볼 스트라이커로 평가했다. 잭 니클라우스 역시 벤 호건과 함께 골프 역사상 볼을 가장 잘 치는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많은 우승 때문이 아니었다. 독특하고 실용적인 스윙,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원하는 샷을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공식적인 레슨 한 번 없이 독학으로 스윙을 완성했지만, 그 정확성과 일관성은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28세의 나이로 출전한 1968년 US 오픈. 첫 PGA 투어 우승이자 메이저 정상에 오르며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파이널 라운드에선 붉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경기에 나섰는데, 그 모습은 훗날의 타이거 우즈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니클라우스를 무려 4타 차로 꺾으며 차지한 우승은 골프계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US 오픈 역사상 처음으로 4라운드 내내 60타대를 기록한 선수로 남았다(69-68-69-69). 대회가 열린 오크힐 컨트리클럽의 동코스(파 70)는 코스 레이팅 77.3에 달하는 어려운 코스다. 그만큼 그의 업적은 특별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골든 베어의 위대한 발걸음은 그다지 가볍지만은 않았다. 잭 니클라우스가 빛나는 순간마다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유쾌한 곰사냥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메리멕스’라는 별명답게 늘 웃음을 머금고 있던 리 트레비노는, 정면으로 곰을 제압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절묘한 타이밍인 메이저 대회에서 유독 앞길을 막아서며 번번이 곰에게 덫을 놓았다. 1971년 US 오픈, 1972년 디 오픈, 그리고 1974년 PGA 챔피언십에서 트레비노는 니클라우스를 준우승으로 밀어내며 우승컵을 차지했다.


unnamed.jpg 1971년 US 오픈에서 우승하며 두 번째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쟁취한다.

특히 1972년 디 오픈의 승부는 상징적이다. 당시 니클라우스는 마스터스와 US 오픈을 연이어 제패하며 71년 PGA 챔피언십 우승까지 포함해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뮤어필드에서 맞대결은, 파이널 라운드에서 6타 차로 벌어진 상태로 시작했지만 결국 1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적 대기록을 눈앞에서 미뤄야 했다. 더구나 그는 1970년대 열린 모든 디 오픈에서 단 한 번도 TOP5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던 절대 강자였다. 그런 곰의 놀이터 같은 무대에서 단 한 번, 중요한 순간에 우승컵을 빼앗으며 디 오픈 리핏을 달성하는 트레비노였다.


잭 니클라우스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저지하며 골프계의 곰 사냥꾼으로 자리 잡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때는 1975년 6월 27일 시카고 웨스턴 오픈 2라운드 중. 뇌우가 경기장을 덮쳤다. 트레비노와 함께 플레이하던 선수들은 뇌우를 피하고자 나무 밑으로 들어갔지만 번개가 내리꽂으며 치명상을 입는다. 심정시 상태로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이 사고로 인해 허리와 등, 척추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그의 복귀는 불투명해 보였고 모두가 커리어가 끝날 거라고 예상했다.


다행히도 두 차례 대수술과 고통스러운 재활 끝에 이듬해 투어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번개가 남긴 흉터와 만성 통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와 긍정적인 마인드는 골프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이후 그는 "골프장에서 뇌우를 만나면 1번 아이언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라. 신조차도 1번 아이언은 칠 수없다" 라며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1980년 PGA 챔피언십에서 그는 게리 플레이어를 꺾으며 통산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며 경력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플레이어 역시 니클라우스와 함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전설적인 인물. 그렇게 트레비노는 두 명의 그랜드 슬램 달성자를 모두 준우승으로 몰아넣은 유일한 사냥꾼으로 남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무대를 시니어 투어로 옮긴 뒤에도, 사냥 본능은 이어져갔다.


older.jpg 챔피언스 투어에서도 기량은 여전했다. 세월조차 그의 샷을 무디게 하진 못했다.

평생을 관통한 독특한 플랫 스윙은 시니어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다. 많은 선수들이 나이가 들며 스윙 궤도가 무너지고 부상에 시달렸지만, 처음부터 몸에 부담이 적고 간결한 스윙을 고수해 온 덕분에 오랜 세월 정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PGA 투어에서 29승을 거둔 그는 시니어 무대에서도 같은 29승을 기록하며, 젊은 시절 못지않은 지배력을 이어갔다. 나이가 들수록 기량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강력한 퍼포먼스를 발휘했다. 그 비결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특유의 유쾌한 멘탈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시니어 메이저 무대에서도 잭 니클라우스를 상대로 승부를 벌였다는 사실이다. 1990년 US 시니어 오픈과 1992년 더 트레이션에서 두 차례나 니클라우스를 준우승으로 밀어내며, 시니어 무대에서도 여전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 트레비노는 단순히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가 아니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상에 올랐고, 예기치 않은 불운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독특했던 스윙만큼이나, 그의 골프 인생 역시 특별하고 매력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선수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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