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운 잠재력

'중꺾마' 골퍼 J.J 스폰

by Dylan Kim

2025년 메이저 대회 우승자는 3명이다. 로리 매킬로이가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퍼즐을 완성했다. 스코티 셰플러는 PGA 챔피언십과 디 오픈 챔피언십을 휩쓸며 이제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단 한 걸음 남겨두고 있다. US 오픈도 이 두 선수 중 한 명이 정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수가 이들을 밀어내며 대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J.J 스폰이 두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올해로 35세인 스폰은 작년까지 불과 PGA 투어 통산 1승에 그친 평범한 선수였다. 그 1승마저도 2022년 발레로 텍사스 오픈, 마스터스가 열리기 직전의 대회에서 얻은 우승이었다. 당시 세계랭킹 7위 매킬로이를 제외하면, 상위권 선수들이 대거 빠진 대회였다. 누군가는 ‘상위권 선수 부재 속의 우승’이라 폄하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는 그 기회를 붙잡은 선수였다. 2017년 투어에 합류한 뒤 5년 만의 일이었고, 프로 전향 10년 만이었다.


PGA 투어에서 우승하기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선수의 경력이나 명성, 재정적, 심리적 안정 등을 가져다준다. 투어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상직적인 의미도 갖는다. 스폰에겐 지난 1승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과, 올해 메이저 대회까지 또다시 정상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76438057007-87-778259591.jpeg 발레로 텍사스 오픈에서 PGA 첫 우승을 신고하는 J.J 스폰

발레로 텍사스 오픈 우승은 스폰을 완전히 바꾸진 못했다. 2023년과 2024년에도 기복은 여전했고, 컷 탈락이 잦았으며 상위권 진입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경기 내용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언과 웨지 샷에서 안정적인 수치를 보여주며 서서히 경기력을 가다듬었다.


2025년에 들어서고 약점으로 주목받던 퍼트 부분을 개선하고자 기존에 쓰던 블레이드 퍼터를 L.A.B사의 제로토크 퍼터로 바꿨다. 2017년 투어 데뷔 이후 스폰은 눈에 띄는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의 단단한 볼스트라이킹은 이미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퍼트는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붙잡았다. 매년 들쑥날쑥한 지표를 보여주며, 그린 위에서 매번 아쉬운 모습으로 홀을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퍼터는 스폰을 상위권 경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만드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올해 첫 출전한 소니 오픈에서는 안정된 아이언 샷과 개선된 퍼팅으로 공동 3위를 기록하며 시즌의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3월 코그니전트 클래식은 5 언더로 컷통과를 간신히 면하며 우승을 차지한 신인 선수 조 하이스미스에게 2타 뒤쳐진 공동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기회는 또다시 찾아왔다.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매킬로이와 펼친 명승부였다.


파이널 라운드 마지막홀까지 매킬로이와 공동선두로 리더보드에 오르며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매킬로이는 18번 홀을 파로 끝내고 클럽하우스에서 스폰의 9미터 버디 퍼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쉽게도 새 퍼터는 우승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홀컵과 공 하나만큼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서며 탭 인 파로 경기를 마쳐야만 했다. 이로써 2015년 이후 10년 만에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연장전이 펼쳐졌다. 매킬로이는 통산 6번째, 스폰에겐 생애 첫 연장전이었다.


jj-spaun-rory-mcilroy-players-championship-money-1024x576.jpg J.J 스폰과 로리 매킬로이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승부처는 17번 홀이었다. 매년 수십 개의 공이 빠지는 TPC 소그래스의 시그니처 홀. 전광판이 해저드에 일렁이는 모습과, 언듈레이션이 심한 그린은 파 세이브조차도 힘든 악명 높은 아일랜드 홀이다. 매킬로이의 티 샷은 핀 뒤쪽에 떨어지며 안정적인 원 온에 성공했지만, 스폰은 티 샷이 그린을 넘어가 그대로 물에 빠지고 말았다. 전 홀에서도 버디를 잡은 매킬로이는 한 타 앞선 상태였던 터라, 이 실수 때문에 우승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다. 결국 트리플 보기를 기록하고, 18번 홀에서도 티 샷과 세컨 샷이 흔들리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렇게 매킬로이는 플레이어스 우승을 발판으로 마스터스까지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스폰에겐 메이저급 대회의 준우승을 발판 삼아 다시 도약할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흐른 US 오픈이 그를 위한 무대가 되었다. 오크몬트 컨트리클럽은 역대 메이저 대회에서 두 자릿수 언더파 우승이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구장이다. 페어웨이는 바늘처럼 좁고, 러프는 잔디가 아닌 덫에 가까울 정도로 탈출하기 어렵다. 4.5m로 세팅된 그린스피드 때문에 선수들조차도 대회 내내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보기 프리 라운드로 4 언더를 적어낸 스폰은 단독 선두로 첫날을 마감했다. 샘 번즈가 다음날 5 언더파를 치며 선두자리에 올라서며, 2타를 잃은 스폰은 1타 뒤쳐진 2위로 주말 라운드에 들어섰다. 번즈와 스폰은 3라운드에서 나란히 1타를 줄이며 리더보드 상단에 계속해서 이름을 지켜냈다. 우승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과 언론은 서서히 스폰의 두 번째 우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은 상위권 선수들이 점수를 잃으면서 시작했다. 스폰도 마찬가지였다. 3 언더 파로 출발했지만, 전반에만 5타를 잃었다. 특히 2번 홀에선 85미터를 남긴 웨지 샷이 홀컵 깃대를 맞고 한참을 굴러 내려와 그린을 벗어나서야 멈추고 말았다. 중계 카메라는 당혹스러운 스폰의 표정과 그린 밖으로 굴러가는 공을 번갈아 비췄다. 이런 불운 속에서도 스폰은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후반 라운드는 매 홀마다 리더보드가 바쁘게 바뀌었다. 홀 마다 비가 내리는 곳과 내리지 않는 곳이 있을 정도로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버디를 잡아내면서 이븐 파로 17번 홀을 마쳤다. 마지막 홀의 티 샷은 깨끗하게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다음 샷을 위해 걸어가는 동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아이언으로 공략한 세컨 샷은 그린 왼쪽에 떨어졌다. 1 오버 파로 경기를 마친 로버트 매킨타이어와, 2 오버 파의 같은 조로 플레이하던 빅토르 호블란이 있었지만, 두 번의 퍼트면 대회 종료인 상황. 더 플레이어스에서 놓친 버디 퍼트보다 두 배가 더 긴 19.6미터 거리가 남아있었다.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스트로크는 과감했다. 챔피언 퍼트는 시작과 동시에 갤러리들의 염원이 쏟아져 나왔다. 홀컵에 공이 떨어지는 순간 오크몬트는 환호와 박수소리로 뒤덮였다. 그렇게 새 퍼터는 스폰에게 메이저 트로피와 통산 2승을 안겨주었다. 지난 수년간의 인내와 불확실함이 마침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jj-spaun-us-open-trophy.jpg J.J 스폰은 2025 US 오픈 유일한 언더 파 스코어(-1) 선수이자 우승자가 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언더독의 메이저 우승은 올해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올해만 벌어들인 상금이 누적 상금에 절반을 차지할 만큼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했다. US 오픈 우승과 함께 준우승 3번이라는 역대급 시즌을 보낸 덕분에 세계랭킹은 단숨에 6위까지 올랐다. 덕분에 격년에 한 번씩 열리는 라이더 컵에도 당당히 선수로 참가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선수로 평가할 수 있다.



잠재력은 씨앗과 같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깊은 땅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어느 순간,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온 새싹은 하늘을 향해 뻗는다. 그 드라마틱한 순간은, 오랜 시간 끝에 빛을 발한 스폰의 서사와 닮았다.


그는 US 오픈 우승 인터뷰에서 '항상 꿈꿔왔지만, 잘할 수 있을지 몰랐다.'라고 밝혔다.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한 스폰은 잠재력이 언제든 꽃피울 수 있음을 증명한 올해 최고의 언더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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