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알파고, 콜린 모리카와
골퍼들에게 비거리는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다. 동호회나 직장 동료들과의 라운드에서도 ‘롱기’ 한 번은 꼭 내보려는 경쟁이 벌어진다. 비거리 때문에 골프 채도 바꾸고, 공도 바꿔보는 일은 주말 골퍼들에겐 다반사다. 하지만 구력이 쌓이고 스코어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비거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페어웨이 적중률, 그린 적중률처럼 정확도를 기반으로 한 기록은 골프의 본질에 더 가까운 지표다. 대부분의 파 4홀에서 한 번의 티샷으로 홀 컵에 도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드라이버로 날리는 티 샷의 비거리를 늘리는 건 사실상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에겐 비효율적인 플레이다. 페어웨이를 지켜 홀컵까지 샷을 치기 편한 곳에 공을 안착시키는 것이 훌륭한 티샷이다. 결국 정확하게 쌓아 올린 한 타 한 타가 스코어를 만든다.
콜린 모리카와는 정확함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증명해 온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투어 평균에 가깝지만, 아이언 정확도는 투어 최정상급이다. 비거리를 좇지 않는 대신 공이 날아가야 할 궤적과 낙하지점을 분석하고 실행하는 코스 매니지먼트의 귀재로 불린다. 공격적이면서도 계산된 플레이를 펼쳐, 마치 공학적으로 설계된 샷을 구사하는 듯한 정확성을 보여준다.
2019년 중반 PGA 투어에 데뷔한 모리카와는 이듬해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1년 키건 브래들리처럼 ‘첫 메이저 출전과 동시에 우승’은 아니었지만(2019년 US 오픈 출전), 그래도 PGA 챔피언십 역사상 단 9명만이 해낸 ‘데뷔전 우승’이라는 희소한 기록이었다.
주중 라운드까지만 해도 모리카와는 리더보드 하단에 있었다. 2 언더 파라는 평범한 타수로 간신히 주말 라운드에 진출했을 뿐이었다. 3라운드 들어서 예열을 마친 듯 버디가 폭발했다. 단 하루에만 7개의 버디를 쓸어 담으며 5언더파를 기록했고, 공동 4위로 단숨에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파이널 라운드 11번 홀에선 더스틴 존슨과 폴 케이시까지 세 명의 선수가 나란히 10언더파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먼저 흔들린 건 케이시였다. 13번 홀 보기로 물러났고, 14번 홀에서 가까스로 바운스백에 성공했다. 반면 존슨은 보기를 범하며 한 자릿수 언더 파로 밀려났다. 모리카와도 위기가 찾아왔다. 9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했지만, 온 그린에 실패했다. 하지만 약 16미터 거리에서 웨지로 홀컵을 직접 노려 칩인 버디를 기록,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약 300야드의 짧은 파 4의 16번 홀에서 드라이버 티 샷이 홀 컵 단 2미터 앞에 떨어졌다. 단숨에 2타를 줄이는 이글 퍼트는 결정타가 되었고, 버디 4개를 묶어 6언더파 64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최종 합계 13언더파(267타)로 23살의 나이로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다.
데뷔 시즌에 보여준 모리카와의 지표는 놀라웠다. 드라이버 볼 스피드는 170 mph(약 76m/s), 헤드 스피드는 114 mph(약 51m/s)로 투어 평균보다 살짝 낮았다. 하지만 페어웨이 적중률은 약 70%로 투어 최상위권, 이는 곧바로 그린 적중률(약 72%)로 이어졌다. 투어 평균 페어웨이 적중률이 62% 임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페어웨이를 지키는 플레이에 진심인 선수인지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2019-20 시즌 저스틴 토마스는 스트로크 게인드 어프로치 부문에서 0.997이라는 수치로 전체 1위에 올랐다. 이는 샷만으로 라운드당 평균 1타를 벌었을 정도로, 4라운드 내내 다른 투어 선수들보다 아이언 샷으로만 약 4타를 앞서 플레이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모리카와가 0.884로 2위에 올랐는데, 이 두 선수는 그린 공략의 수준이 남달랐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이 치열한 아이언 샷 싸움은 다음 시즌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모리카와는 한층 더 예리해진 아이언 플레이로 돌아왔다. 전년도보다 확연히 높아진 1.17이라는 수치를 기록하며 저스틴 토마스(0.887)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단순히 1위 자리를 탈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투어 전체에서 아이언 샷으로만 평균 1타 이상을 벌어들인 유일한 선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사실상 ‘라운드마다 한 홀을 버디로 바꾸는 수준’의 샷 정확도를 의미한다.
그 정교함은 대회 성적으로 이어졌다. 시즌 24개 대회에 출전해 톱 10 진입 8회, 평균 타수 70.1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절정은 또다시 메이저 무대에서 터졌다. 로열 세인트조지에서 열린 2021 디 오픈 챔피언십은 모리카와의 데뷔전이었다. 4라운드 통합 보기 단 4개에 그치며, 67-64-68-66타로 모든 라운드에서 언더 파 행진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15언더파(265타)로 재기를 노리던 조던 스피스를 2타 차로 제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2003년 벤 커티스 이후 18년 만의 디 오픈 데뷔 우승자이자, 바비 존스 이후 커리어 첫 8회 출전 내에 메이저 2승을 거둔 최초의 선수라는 타이틀이 함께했다.
하지만 모리카와의 위력적인 아이언샷 뒤에는 그의 가장 큰 딜레마이자 약점이 숨어 있다. 바로 쇼트 게임과 퍼팅이다. 모리카와의 스트로크 게인드 어라운드 더 그린의 수치는 2023 시즌까지도 100위권 밖에 머물렀다. 그린을 놓쳤을 때 칩샷이나 벙커샷으로 파 세이브를 하는 능력이 투어 평균보다 떨어졌다. 또한 퍼팅 역시 기복이 심해 2021년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대회 직전 집게 그립으로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로크 게인드 퍼트 순위 또한 하위권을 맴돌았다.
모리카와는 그린 주변 50야드 이내에서의 웨지 플레이 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파커 맥클라클린과 같은 쇼트 게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웨지샷과 벙커샷 등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점을 수정하고, 다양한 잔디 상태와 라이에서 안정적으로 볼을 컨택하는 능력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그 성과는 2023 시즌에 효과를 보기 시작했고, 100위권 밖을 맴돌던 순위는 10위권으로 급상승했다. 그린을 놓치더라도 타수를 잃지 않고 파 세이브를 해내는 스크램블링 능력을 투어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우승에 목말랐던 2022 시즌, 준우승 2회와 5위만 5번이라는 성적은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몸이 예전처럼 깨끗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며 스윙의 일관성 유지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었다. 디 오픈 챔피언십 이후 약 2년 넘는 시간 동안 우승이 없던 모리카와는 마침내 2023년 10월 일본에서 열린 조조 챔피언십에서 긴 공백기를 깨고 정상에 올랐다.
이러한 약점 보완 덕분에 2024 시즌에는 스트로크 게인드 통합 부문에서 5위에 올랐다. 물론 투어에는 스코티 셰플러, 로리 매킬로이와 같은 힘과 정확성을 두루 겸비한 최정상급 선수들이 존재하지만, 다소 왜소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우승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점을 증명하는 수치다.
콜린 모리카와는 백스윙 탑까지 도달하는 데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정교하고 계산적이다. 단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몸의 각 움직임이 일정한 리듬 속에 맞물린다. 이 완벽에 가까운 메커니즘은 때로는 그에게 무기가 되었고, 때로는 굳어버린 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 정교함을 믿는다. 샷 한 번, 루틴 한 번마다 같은 리듬을 반복하며, 자신이 쌓아온 방식으로 다시 정상에 오르려 한다.
그가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한순간의 번뜩임이 아니라 천천히 아주 정교하게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온 정밀함의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