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硝煙)이 쓸고 간
27년 전인 1996년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두타연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했다. 백두산 부대와 협조하여 양구군 주재 지방신문 기자들과 어울리는 자리였다. 고기도 굽고 술판도 벌어졌다. 흥이 오른 한 기자는 술김에 바위에 올라가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다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돌에 가슴을 벌겋게 긁혔다. 하지만 중단되지 않았다. 중간쯤 군수가 그곳까지 와서 어울리다 돌아갔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민통선 안이지만 그때는 그게 가능했다. 물론 아주 드문 케이스이긴 했다.
두타연 계곡이 위치한 곳은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방산면 두타연로 297이다. 전방 철책선이 인접해 있고 금강산까지 35Km이다. 계곡 옆으로 금강산 가는 길이 있다. 지금은 우리 장병들의 보급로이자 순찰로 구실을 한다.
옛 생각에 올여름 여행지로 두타연을 찾기로 했다. 양구군청 양구안보관광지 홈페이지에 출입신청을 하고 개인차량으로 금강산안내소에 가서 군부대 출입절차를 거친 다음 군인들의 경호안내를 받으며 두타연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문화해설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해설사는 교사출신 70대 여성으로 설명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녀는 이곳이 군인들의 희생과 봉사가 이어지는 전방임을 제일 먼저 상기시켰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단장의 능선 전투 희생 장병 위령비가 세워진 곳으로 안내했다. 놀랍게도 거기에 미군 화장터가 있었다.
단장의 능선 전투는 1951년 9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미군 2사단과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강원도 양구군 피의 능선 북쪽에 있는 단장의 능선(894-931-851 고지군)을 점령하기 위해 북한군 6사단을 상대로 펼친 고지전이다. 이 전투 당시 미군은 야간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기후에 대비하여 페치카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것이 장병들의 추위를 견디게 하는 한편 전사한 전우들을 화장(火葬)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숲 속에 이것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여기 온 천지가 선배전우들의 피와 살, 뼈가 녹아있다는 사실에 산 자의 죄송함과 무심하고 철없던 시절의 뒤늦은 깨달음이 밀려왔다.
이때 해설사가 가슴깊이 새겨 외운 듯 한 편의 글을 읊기 시작했다.
길 가소서
배고픔으로 삼백예순 날
사무친 그리움으로 삼백예순 날
님의 그 삼백예순 날이
반 백번 되도록
어리석어 몰랐습니다.
마디마디 피로 물든 능선
토닥토닥 끊어진 단의 대지
백석산 도솔산 가칠봉 펀치볼......
누군가는 치렀어야 할 능욕을
님께서 온몸으로 치르신 터
이제 그 터 위에 님의 소망 따라
새싹 움트고 여명이 밝아옵니다.
님 이시어!
지금은 피맺힌 원한도
사무친 그리움도 모두 풀 때
이승에서 못다 이룬 민족의 화합
혼계에서 하나 되어
밝고 고운 한 빛으로
부디 길 가소서
그리하여 새로운 날
이 땅에 다시 오시어
새 아침의 기쁨
땅 끝까지 누리소서
고운 님이시여 길 가소서
고운 목소리지만 비장한 어조로 읽기를 다한 해설사는 이 지역에 주둔하던 5사단장 박정희(대통령)의 글이라고 소개했다.
두타연 계곡물은 참으로 맑고 투명했다. 다녀본 계룡산 숫용추 계곡물, 백담사 계곡물의 깨끗함을 뛰어넘었다. 인적이 드문 자연이 만들어내는 보물임이 분명하다. 사실 올여름 두타연 계곡여행을 계획할 때는 계곡에 발을 담그는 정도의 짧아도 좋을 물놀이를 상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아주 잠깐 발을 담그고 손을 씻을 기회는 있었지만 그저 보는 것이 다였다. 그것도 좋았다. 보기 드문 깨끗한 물을 볼 수 있었고, 치열한 전쟁을 치른 이 땅이 그냥 지켜진 것이 아니라는 뼈아픈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누군가와 다시 두타연 계곡을 찾을 것이다. 투명하고 맑은 물에 발 담그는 상상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