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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베트남 다낭 여행기

by 생각전사

몇 해 전 겨울 초입에 철 지난 부산 해운대 바닷가를 찾은 적이 있다. 모래사장에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누군 일부러 자국을 남기려 했을 것이고, 누군 흔적이 남은 줄도 모른 채 거길 아무렇지 않게 다녀 갔을 것이다.


베트남 다낭에서 북쪽으로 2시간 넘게 차를 달려 소낙비가 잦아들 즈음 도착한 마지막 왕조 응우옌(1802~1945)의 옛 수도 <후에>는 왕조의 슬픈 역사를 담고 있었다. 베트남은 역사상 오랜 시간 외국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 나라에 복속된 이래 긴 기간 중국 지배와 영향 아래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에게 100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게 3년 동안 통치를 받았다. 그리고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북쪽 월맹의 공산주의자 호지명의 지도 아래 미국과의 10년 전쟁을 치르고 1975년 공산화 통일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성 보다 왕조의 권력을 위해 백성을 착취하고 프랑스에 굴종했던 왕조, 그 지배자들이 백성의 손으로 세운 콘크리트와 대리석, 돌덩이, 병 조각과 도자기 조각이 어우러진 황궁과 왕의 무덤은 외국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묘한 검은색이 인상적인 건축물들은 날이 개이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왕조의 비정함에서 비롯된 백성의 피와 땀이 햇빛에 반짝이는 그런 아름다움을.


돌아온 베트남 다낭의 밤 해변은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 저 있었다. 파도는 자주 조용히 밀려왔다 말없이 사라졌다. 그 소리가 단조롭다고 느낄 무렵 고운 모래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 여러 발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의 것일까? 순간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 미국의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작가)가 떠올랐다. 막내에게 어지럽게 새겨진 그 발자국 사이를 밟고 서 보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과 막내의 신발과 두 개의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낸 이중의 검은 그림자가 모래 위에 그림이 되어 출렁거렸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한 미국이 1965년 3월 해병대를 이곳 다낭 해변으로 상륙시켰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동맹의 일원으로 지상군을 파병하며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 전쟁에 한국군 34만 명이 파병되어 베트콩 사살 4만 1천 명, 포로 4천6백여 명, 귀순 2천4백여 명의 전과를 올렸다. 반면 한국군도 전사 4599명을 포함해 5천여 명이 사망하고, 10만 이상이 부상당했다. 이런 아픈 역사의 흔적이 파도 소리를 내는 검은 밤바다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1992년 우리나라와 국교 정상화를 이룬 베트남은 새로운 시대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다.


베트남 시내는 한국차와 휴대폰, 한국식당, 한국식품, 한글 간판이 차고 넘쳤다. 승차 공유 플랫폼으로 부른 택시 운전사가 축구감독 박항서를 좋아한다고 먼저 얘기를 꺼냈다. 취미로 저녁에 퇴근해서 밤 9시까지 축구를 한다고 자랑했다. 대형 마트 1층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한 우리 유명 전자회사 매장 앞에 양 엄지를 치켜세운 박항서 감독 모형사진이 고객을 반기고 있다.


흔적은 남기도하고 지워지기도 한다. 누군 지우려 해도 남고 누군 남기려 해도 지워진다. 지나오고 지나갈 우리의 흔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오늘 지난 한 달간 고민거리였던 사진전 출품작으로 해변에서 찍은 막내 사진을 제출했다.


제목- ‘흔적 Trace 2019-DaNang Beach in VITNAM’


베트남 다낭은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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