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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꿈

시작의 순간

by 생각전사

나는 몇몇 사람들과 어딘가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낯선 얼굴들이었다. 무얼 하고 있었는지는 희미하다.

어느새 나는 어떤 물체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앞도, 창밖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내 눈앞에는 내비게이션 경로만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졌다가 왼쪽으로 돌아나가는 길이 화면에 보였다.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 순간, 내가 탄 것이 그 선을 벗어나고 있었다.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자동 시스템이 작동했는지 물체는 이내 제 궤도로 돌아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았구나”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곧, 또다시 경로를 벗어나는 움직임이 반복되었다. 그때 퍼뜩 떠올랐다. 운전자가 분명 졸고 있다는 것을… 경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를 볼 수 없었고, 닿을 수도 없었다. 그를 깨우기 위해 어딘가를 두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내비게이션 화면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이러다… 추락사고가 날지도 몰라.”


속으로 그렇게 말하는 그 순간, 물체는 다시 크게 경로를 벗어났고, 또 한 번 내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났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그때 귓가에 사고 뉴스가 들려왔다. 몇 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살아 있기를 바랐다. 이건 꿈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억지로 눈을 뜨려 애썼다. 깊고 무거운 어둠 속이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나랑 같이 살아난 사람들일까, 아니면 내가 살아나서 새로이 만나게 된 사람들일까?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몽환에서 깨어났다. 아침이다. 방 안의 모든 것이 그대로다. 나는 살아 있다. 꿈은 너무도 생생했다. 현실이 꿈의 공포를 깨뜨렸다. 안도감과 평안함이 밀려왔다.


다시 시작의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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