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분열과 융합은 현재 진행형
영화 <오펜하이머>가 화제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즉시 영화를 예매했다.
지난 8월 15일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봤다. 러닝 타임 3시간. 영화는 강렬했지만 이해는 쉽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해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컬러와 흑백이 교차되는 영화 연출기법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흑백은 과거의 연상정도로 지레짐작할 수 있지만 모두 과거의 얘기를 다루고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컬러가 핵분열, 흑백이 핵융합을 의미한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영화는 보는 즉시 그 느낀 소감을 적는 것이 제일이다. 인상이 가장 강렬히 남아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러지 못했다. 영화가 준 감정은 어느 영화보다도 강렬했지만 그걸 이해하고 표현하기에 너무 복잡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고 있던 지난 금요일 저녁, 둘째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 내일 영화 <오펜하이머> 보실래요?” “아, 그거. 개봉하는 날 봤어.” “벌써 보셨어요? 내일 같이 볼까 했는데... 알았어요. 잘 쉬세요.” 그 순간 영화 <오펜하이머>가 내 뇌 속에서 되살아났다.
영화는 핵무기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가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는 스토리 라인과 소련 스파이 혐의를 받던 오펜하이머가 1956년 원자력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는 스토리 라인, 오펜하이머를 소련 스파이로 몰아 파멸시키려 했던 원자력위원회 스트로스 의장이 1959년 미국 상무부장관이 되기 위해 치르고 있던 의회 청문회 스토리 라인으로 나뉜다.
이 모든 과정은 분열과 융합의 과정으로 묘사된다. 한 때 융합했던 인간이 분열하고 한 때 분열했던 인간이 융합한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하여 산산조각이 난다. 자신도, 상대도, 세상도 예외가 아니리고 말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군상은 과학자와 기술자, 군인, 정치인이다. 이 군상을 둘러싼 스토리 키워드는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나치정권, 미국과 태평양전쟁 중이던 일본, 소련 공산주의, 미국 공산당 활동, 매카시즘, 유태인, 오펜하이머의 여성편력과 가정사이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미국은 독일, 일본과의 전쟁을 조기에 종결지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는 협력관계였다. 미국의 정치인과 군인들은 독일 히틀러가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Manhattan 계획의 탄생이다. 이 계획에 따라 계획의 실행 책임자 그로브스 대령(핵실험 시 소장까지 진급)이 오펜하이머를 핵무기 개발 과학기술 총책임자로 선정한다. 이들은 보안문제로 격돌하기도 하지만 서로 협력하며 트리니티 핵개발 실험과 무기화에 성공한다. 1945년 7월 16일이다. 이미 히틀러는 4월 30일 베를린 함락직전 권총으로 자살했고, 이어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한지 두 달이 넘은 시점이다.
핵무기 개발은 과학자와 기술자 손에 있었지만 사용 결정은 정치인 손에, 실행은 군인의 손에 맡겨졌다. 미국은 8월 6일과 9일, 일본의 소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핵무기를 투하했다. 8만의 사망자를 예측했으나 22만이 사망했다. 도쿄는 문화유적지가 많고 상징성이 커 제외됐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 7만 명(히로시마 5만 명, 나가사키 2만 명)이 사망했다. 핵무기에 혼비백산한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했다. 독립을 갈망하던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됐다.
핵무기를 개발한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기분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미국 대통령 트루만은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결정한 것은 자신이라며 오펜하이머를 징징대는 사람이라고 불평했다.
이 영화에는 숨은 코드가 있다. 오펜하이머가 스파이 혐의를 벗고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상도 받지만(이 상을 결정한 것은 케네디 대통령이지만 수여 직전 암살되어 직접 수여는 하지 못함) 그 혐의를 완전히 벗지 못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이불보에 있다. 트리니티로 명명한 핵실험을 하러 떠나며 오펜하이머는 아내 키티에게 성공하면 이불보를 걷으라고 말하고 실제 핵실험 성공 후 이불보를 걷으라고 전화한다. 자신의 소련 스파이 혐의 때문에 열린 보안인가 결정회의를 가면서는 보안인가가 취소되면 이불보를 그대로 두라고 말한다. 보안인가가 취소되자 다른 사람을 통해 아내 키티에게 이불보를 그대로 두라고 전화로 알리게 한다.
당시 철저한 보안통제로 가족들은 핵 연구소가 있는 뉴멕시코 주 로스 앨러모스 기지에서 생활했다. 실제 오펜하이머와 같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클라우스 푹스는 훗날 소련 스파이로 체포됐다. 아내 키티는 한 때 공산당 활동을 한 인물이다. 이불보는 누구에게 보내는 표식이었을까?
오펜하이머는 1961년 2월 18일 사망했다. 아내 키티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태평양 어느 섬 인근 바다에 수장됐다. 1967년 사망한 아내 키티는 화장되어 오펜하이머가 잠든 그 바다에 뿌려졌다. 아들은 로스 앨러모스 기지에 버려진 핵폐기물 정화 환경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딸은 어학에 재능이 있어 번역활동 등을 했으나 보안인가를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지려다 실패하고 자살했다.
영화는 몇 가지 의문을 남기고 있다. 미국은 독일 히틀러를 파멸시키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과학 책임자로 왜 유태인을 선택했을까? 독일 히틀러가 죽고, 독일이 무조건 항복한 상황에서 왜 핵무기를 굳이 일본을 상대로 사용했을까? 만일 독일이 항복하지 않고 건재했다면 과연 연합국이 인접해 있는 독일 본토에 핵무기를 사용했을까?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왜 8월 15일 광복절에 개봉했을까, 흥행을 노린 영화상술인가, 정치적 의미인가?
인류 최초 핵무기 사용 후 미소는 냉전시대 치열한 핵무기 경쟁을 하다가 핵군축을 통해 일정한 숫자로 핵무기를 줄였고, IAEA를 통해 핵확산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여 대한민국과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어느 태평양 섬 바다에 고요히 잠들어 있지만 핵무기의 분열과 융합은 끊이질 않고 있다. 그와 그때 정치인과 군인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그 색깔은 컬러이고, 멈추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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