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이 흐르기 시작한 곳
강원도 치악산 곁에 나란히 솟은 산. 산세가 아름다워 매화산이라 한다. 내 고향은 매화산 자락 산골 마을이다. 집 옆으로 작은 계곡이 흐른다. 이른 봄날 춘풍에 떨어진 매화꽃이 계곡물을 타고 내려와 바다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곳. 매화의 속마음인 듯 그 이름마저 여심동 계곡이다. 참 맑고 깨끗했다. 버들치와 미꾸라지, 송사리 떼, 메기와 가재가 그 속에서 놀았다. 산골사람들은 그 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여심동 계곡은 사시사철 동네 꼬마들 놀이터였다. 봄날 냇가 갯버들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고, 호박 바가지로 새끼손가락 굵기의 미꾸라지를 잡아 화로에 구워 먹고, 불볕더위에 동무들과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놀다가 웅덩이에 풍덩 들어가 물장구를 쳤다. 가을에는 돌 틈에 숨은 가재를 잡아 양은 냄비에 빨갛게 삶아 먹고, 햇볕 좋은 날엔 너른 바위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 시시각각 만드는 모양을 세상의 무엇인 양 상상하며 미지의 세계를 날아다녔다. 어쩌다 파란 하늘에 길게 구름 똥을 싸고 날아가는 쌕쌕이를 보기도 했다. 물이 꽁꽁 어는 겨울에는 신작로 옆 돌망태 철사를 몰래 끊어다 썰매를 만들어 탔다. 몸을 숨긴 채 눈알을 굴리며 여린 손으로 돌을 연거푸 내리쳐 철사를 끊어내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여심동 계곡물은 매화산과 이어진 풍취산 심배골 쪽에서 내려온 물과 매화분교 앞에서 만나 개여울이 된다. 물은 거기에 놓인 징검다리를 통과해 아랫말 친구 일근이네 집 앞을 지나 주천강 상류가 되었다. 때론 고요히, 때론 요동치며, 때론 겉과 속이 서로 엉키고 부딪치며 남한강과 한강을 지나 서해로 흘러갔다. 그렇게 바다가 되었다.
평소 “졸졸졸” 노래하는 여심동 물소리는 산새 소리, 아이들 소리와 어우러져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장마철이 되면 180도 돌변했다. 폭우가 쏟아질 때면 엄청난 수량의 누런 흙탕물로 변해 세찬 기세로 돌덩이를 굴렸다.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듣던 “우르르 쾅쾅” 밤새 울부짖던 성난 물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분교 앞 개여울을 건넌 사람들은 저녁이면 돌아왔다. 타향에 갔어도 명절이면 돌아왔다. 하지만 여심동 물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11살 때 개여울을 건너 병원에 다녀온다며 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탄 엄마는 간다 온다 말도 없이, 혼은 여심동 물처럼 떠난 채 죽음의 얼굴로 돌아오셨다. 여심동 버들치와 송사리 떼가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심배골 꼭대기 풍취산 아버지 곁에 누우셨다. 그리고 영영 내 가슴에 묻히셨다. 김소월의 시 <개여울>의 마지막 소절이 되어 맺혔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나는 12살 되던 해 여심동 개여울을 지나 세상으로 나왔다. 그 후 나는 여심동에서 상상했던 이상의 세상을, 엄마가 나를 위해 소원했던 이상의 세상을 보았다.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더도 말고 부끄럽지만 않으면 된다. 어느덧 그럴 나이가 됐다.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나이가 들었으니 말이다.
아, 여심동. 내 어린 뼈와 살이 자란 매화산 자락 내 고향. 다시 돌아갈 수 없어도 그 옛날 여심동은 내 마음속에 온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내 정신이 살아있는 한 그리운 옛 동무, 이별을 고하지 않은 젊은 엄마를 만날 수 있다. 맑고 깨끗한 여심동 계곡물에 풍덩 빠질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 옛날 여심동 바위에 누워 상상하던 세상 한 모퉁이에서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 여심동 개여울을 건너 고향집으로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