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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즈음에

삼십보다 두 배

by 생각전사

육십. 만 60살. 회갑의 나이다. 육십갑자(六十甲子)에서 갑이 다시 돌아오는 해다. 큰일이 없으면 누구나 한번 온다. 직위가 무엇이든, 재물이 많든 적든 건강을 유지하며 잘 살았다는 뜻이다.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잔치상을 크게 차리고 자손과 친지, 이웃들이 모여 장수를 축하했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80살이 넘은 요즈음에는 주위에 기별도 없이 식구끼리 좋은 식당을 잡아 조촐한 축하자리를 하고,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이마저 생략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 2019년 공직을 마치는 해가 마침 육십이 되는 해였다. 세 아들이 준비한 근사한 식당에서 과분한 식사를 하고 감사패까지 받았다. 그리고 하와이 가족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작고 힘없던 것들이 어느새 커서 아비를 위해 목돈을 쓴 것이다. 나의 새가슴으로는 생각조차 못할 일인데 아들들이 말릴 새도 없이 그런 과욕을 부리고 말았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육십의 시작은 이렇게 제법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으로 출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노래였지만 가사가 가슴을 적셨다. 텅 빈 충만이 시작된 육십의 나이. 서른의 두 배가 된 나이. 노래 <서른 즈음에>는 그렇게 불쑥 불청객이 되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만 32살에 요절한 가수 김광석이 저런 노래를 불렀다니... 원래 이 노래는 이곡을 작사작곡한 강승원(KBS 음악감독, 가수, 1960년생)이 먼저 불렀다. 강승원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날 김광석이 찾아와 이 노래를 자기에게 달라고 해서 돈마저 거절하며 두말없이 주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발매된 것은 1994년. 그의 나이 서른 살이던 때다. 2년 후 세상을 등진 가수 김광석의 서른 살 고뇌와 가사가 겹쳐져 감정은 더욱 고조된다.


육십이 되면 대부분 직장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온다. 정년이 육십오세인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육십이 맥심이다. 저 노래 가사가 가슴을 적실 나이와 형편에 이르게 됐다는 얘기다. 올해 학교에서 최대 정년을 마치는 몇몇 친구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 친구들은 남들이 보기에 더 이상이 원이 없을 듯 하지만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 나의 5년 전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누구나 그렇다. 우리가 시간을 뚫고 지나온 듯해도 사실은 시간이 우리를 뚫고 구멍과 생채기를 내고 자국을 남긴 채 지나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시간을 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 살았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여전히 살아있어 감사하다는 생각만으로 족하다. 올해 집으로 돌아오는 돼지띠 우리 친구들에게 무엇보다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꼭 들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노래를 듣고 슬퍼하며 추억에 잠기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그리됐으니 그동안 잘 살아온 자신을 위로하고 보듬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다. 시절인연을 보내고, 또 맞이하고, 달라진 시간과 공간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서른 즈음에> 가사가 주는 반전 매력에 빠져보라는 말이다.


나는 <서른 즈음에> 완곡 연주를 위하여 육십에 시작한 기타를 끌어안고 5년째 끙끙대며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침침한 눈으로 악보를 익히며 서른보다 두 배가 느려진 손가락으로... 서른보다 두 배가 문드러진 목청까지 보태서... 말이다.


https://youtu.be/Il52fKokmcM?si=qri622tc0qrqm5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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