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 세상
나는 비로소 세상을 직선과 곡선으로 본다. 모든 사물과 삶의 양상은 결국 이 둘의 언어다.
직선은 시작과 끝이다. 한 점에서 출발해 다른 점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단호하고 과감하다. 기세가 있다. 직선의 삶은 목표지향적이며, 절정을 향해 한껏 치닫는다. 찌르고, 그 한도에서 물러서는 것. 그것이 직선이다. 단숨에 관통해 끝에 도달하면 멈추고 머물다 다시 전진한다. 괴테는 말했다. “인생은 직선을 그리듯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직선이 필요하다. 직선은 망설임 없이 나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곡선은 회귀이자 영원불멸을 품고 있다. 곡선은 완만하다. 단숨에 결론에 이르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간다. 곡선은 기다리고 품는다. 무엇이든 안은 채 둥글게 휘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곡선의 운명이다. 시작과 끝이 태초부터 서로를 품고 있기에, 끝맺음조차 새로운 시작이 된다. 곡선은 직선처럼 찌르지 않는다. 대신 포근히 감싸며 시간 위에 부드럽게 덧씌운다.
그러나 곡선도 무한히 쪼개고 쪼개면 미세한 직선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곡선은 결국 무수한 직선들의 집합체다. 직선이 모여 곡선을 이루고, 곡선은 다시 무수히 잘린 직선으로 분해된다. 이 둘은 서로를 품고, 오히려 서로의 본질이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연 속에는 직선이 거의 없다. 모든 것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곡선을 만드는 것은 수많은 작은 직선들이다.
나는 한때 곡선이었다. 여리고 약해 쉽게 휘고 부서졌다. 새털처럼 가벼워 봄바람에도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운명처럼 직선의 삶에 투신했다. 목표를 향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달려야만 했다. 결과가 곧 삶을 지탱했다. 그래서 내 안의 곡선은 한동안 숨죽이고 있었다.
직선에는 끝이 있다. 성취는 어느 순간 공허가 된다. 끝에 다다른 직선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 파블로 피카소는 말했다. “모든 것은 곡선이다. 직선조차도 결국 곡선 안에 녹아있다.” 나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다. 곡선은 돌고 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오는 모양새지만 이미 다른 곳이 된다. 시간과 경험이 곡선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곡선은 삶의 여백이며 여운이다. 곡선은 삶을 부드럽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준다. 직선이 없다면 삶은 정체되고, 곡선이 없다면 삶은 고갈된다. 세상 만물은 직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빛은 직진하나 물질로 휘어지고 반사되어 곡선이 된다. 나뭇가지는 직선으로 뻗다 끝에서 곡선으로 휘어진다. 말과 칼은 직선으로 대상에게 꽂히고 직선과 겨루다 곡선으로 마감한다. 곡선은 직선을 깊이 받아들이고 마침내 감싸 안는다.
나는 다시 곡선의 길 위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여리고 가벼운 곡선이 아니다. 직선의 기세와 목표가 휘돌아 스며든 크고 완만한 곡선이다. 직선과 곡선은 다르면서도 하나다. 곡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처럼, “곡선은 우주의 혼이다.” 비로소 나는 직선을 지나 곡선으로 세상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