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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시선과 심상

뒷모습에 오래 머무는 까닭

by 생각전사

시선은 단순히 눈길이 닿는 길만을 뜻하지 않는다. 눈으로 뻗어 나가는 것은 물리적 시선이고, 생각에서 번져 나가는 것은 마음의 시선이다.

물리적 시선은 눈을 떠야만 보인다. 그러나 마음의 시선은 눈을 감고 깊은 기억을 불러내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때 열린다. 전자는 사물의 외형을 붙잡지만, 후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접속한다.


그래서 뒷모습은 낯선 이방인의 둔탁한 형체가 내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곁에서 함께 자라온 나무가 어느 순간 바람에 흔들리며 가지와 잎새를 부딪쳐 내는, 날카롭고도 예기치 않은 충격의 심상이다.

앞모습은 표정으로 해석을 강요하지만, 뒷모습은 침묵으로 상상력을 불러낸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말한 ‘푼크툼(punctum)’은 바로 이때 일어난다. 뒷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찌르는 작은 디테일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상상의 창이 된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은 “영혼은 언제나 반쯤 열린 문처럼, 환희의 순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뒷모습이 그러하다. 닫힌 듯 열려 있는 문, 그 문을 통과할 때 마음의 시선은 심상을 얻는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시는 강렬한 감정이 자발적으로 흘러넘친 것”이라 했다. 뒷모습이 불러일으키는 심상이 바로 그러하다. 스쳐간 어깨, 흔들린 걸음은 그리움과 연민으로 환유되며, 우리 마음속에서 시가 된다.

물리적 시선은 직선으로 외형을 붙잡고, 마음의 시선은 환유로 내면의 풍경을 불러낸다. 뒷모습은 이 두 시선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때로는 기억으로, 때로는 상상으로 빚어진다.

우리가 뒷모습에 오래 머무르는 까닭은 그것이 단순한 형상을 넘어, 마음의 심상으로 이어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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