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의 공존
인류의 문명은 0과 1이라는 단순한 이진수로 계산하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비약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오늘날 거대한 디지털 세계가 그 산물이다. 지금까지 컴퓨터는 0과 1 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확정성을 기반으로 질서와 계산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한 번에 0이면서도 1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펼쳐지는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변화는 단순한 연산 속도의 향상이 아니라, 세계와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인간 역시 단일한 상태로 환원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앞모습과 뒷모습이라는 두 겹의 얼굴이 있다. 세상은 앞모습에 몰두한다. 앞모습은 사회 속에서 확정된 자아다. 직책과 역할, 타인의 시선 속에서 드러나는 얼굴이다. 오늘날 성형의 융성은 미적 자아를 추구하는 욕망을 보여주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존감과 과시의 욕망이 숨어 있다.
반대로 뒷모습은 관찰되지 않은 채 남겨진 소외의 공간이자, 상상과 가능성의 공간이다. 때로는 살랑이는 미풍처럼, 때로는 세찬 폭풍처럼 등장하는 뒷모습은 보는 이의 시선과 해석에 따라 고독일 수도, 무너지는 탑일 수도, 결연한 힘이거나 충격일 수도 있다. 앞모습이 0과 1의 명확한 비트라면, 뒷모습은 여러 해석을 머금은 강렬한 큐비트와 같다.
양자역학의 ‘얽힘’처럼, 앞모습과 뒷모습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사회 속에서 드러내는 앞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고, 그 시선이 떠난 자리에는 뒷모습이 남는다. 특히 이별과 떠남의 순간에 남겨진 뒷모습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타인의 기억 속에 울리는 깊은 울림이 된다. 헤어진 연인의 뒷모습, 퇴직하고 떠나는 선배의 뒷모습,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떠난 어머니의 뒷모습, 포화 속으로 사라진 전우의 마지막 뒷모습은 하나의 장면을 넘어, 그 사람 전체를 상징하는 기억으로 남는다.
양자 세계에서 결과는 관측되기 전까지 확정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재 또한 그러하다. 앞모습은 타인의 관찰 속에서만 실재하며, 뒷모습은 관찰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의미와 정서를 낳는다. 뒷모습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다. 설명할 수 없는 충격과 울림으로, 보는 이의 내면을 흔들고 남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기술이 0과 1의 이분법을 넘어 양자적 가능성을 탐색하듯, 우리 역시 스스로를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만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 앞모습과 뒷모습, 드러남과 남겨짐을 함께 껴안는 양자적 자아로 자신을 이해할 때, 우리는 삶의 다층적 깊이를 통찰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듯, 뒷모습에 대한 사유는 인간 존재와 통찰에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의 빛을 던진다. 앞모습은 현재의 증명이고, 뒷모습은 지난 기억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상상의 문이다. 우리는 이 두 세계가 얽히고 중첩되는 자리에서 살아간다. 결국 인간은 단일한 모습으로 환원될 수 없는, 끝없이 확장되는 실존이다.
뒷모습을 응시하는 일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성찰하는 일이며, 동시에 존재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