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스위스 알프스를 넘은 우리는 베네치아로 곧장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이탈리아 경제수도 밀라노가 궁금해서 잠시 들르기로 했다. 밀라노는 방사형 도시 형태로 그 중심부에 밀라노 두오모(Duomo) 대성당이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서있다. 1386년 밀라노 영주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에 의해 공사를 시작해 1965년 완공되었다. 579년이 걸린 셈이다. 초기 고딕양식의 성당은 부벽(付壁)과 조상(彫像), 첨탑(尖塔)을 세워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35개의 첨탑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158m의 금색으로 빛나는 마돈니나(Madonnina, 작은 성모라는 뜻) 상. 금박 3900개로 덮여있고 한 때 밀라노 시내에서 가장 높은 것이었다. 예전에는 밀라노에서 마돈니나 상보다 높은 건물은 지을 수 없었다. 그러다 건물을 지을 때 제일 높은 곳에 성모상을 세우는 조건으로 높이 제한이 풀렸다고 한다. 첨탑 중 한 곳에는 나폴레옹도 서 있다. 중단되었던 성당 건축에 공을 들이고 여기서 1805년 이탈리아 국왕으로 즉위했기 때문이다.
역시 여성들에겐 명품이 큰 관심사. 자연스레 성당 바로 옆 구찌를 비롯한 다양한 명품숍 거리로 발길이 이어졌다. 가격은 우리의 예산 한도 초과. 대신 윈도쇼핑으로 패션의 허기를 달랬다.
예정에 없던 밀라노 여행으로 인해 베네치아 캠핑장(Se renissima camping)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컨테이너 숙소는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하는 그야말로 침대만 있는 단조로운 시설이었다. 그래도 스위스 캠핑장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쾌적했다. 스위스 캠핑장 숙소는 여행 중 최악이었다. 고물 캠핑카를 개조한 것으로 먼지가 많고 매트리스는 지저분한 데다 푹푹 꺼지기까지 했다. 악센트가 강한 나이 든 여 종업원은 낡은 비닐 식탁보에 김치 국물이 떨어졌다며 우리 돈 3만 원에 해당하는 스위스 프랑을 요구해 우리를 화나게 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캠핑장 숙소를 이용했는데 비록 고장이 나서 사용은 못했지만 작은 세탁기와 1인 샤워기가 딸린 작은 화장실이 있어 편리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옆방에는 폴란드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와서 머물고 있다. 캠핑장에는 아이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처음 본 사이 같은데 서로 어울려 뛰어다니며 잘 논다. 아이들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 우리 숙소 옆에 주차된 흰색 캠핑카에는 백인 노부부가 묵었는데 늦은 아침을 준비하는 게 한가로이 보였다. 캠핑장을 찬찬히 둘러보니 세계 곳곳에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머무는 캠핑장 숙박도 나름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네치아 시내까지 차로 이동해 갓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여객선으로 30분 정도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Cattedrale Patriachale di San Marco)이 있는 본섬으로 갔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베네치아는 곧바로 건축을 할 수 없는 진흙의 무른 땅이어서 기둥을 박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그 덕분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바닷물이 흐르는 수로가 형성됐고 그곳으로 수상택시와 조각배가 관광객을 태우고 다닌다. 수로에서는 조각배의 배몰이꾼의 멋진 퍼포먼스도 벌어진다. 긴 노를 젓고 다니다 이따금 그 노로 벽을 밀기도 하고 자신의 기다란 발로 건물 벽면을 힘차게 차며 배를 모는 묘기를 선보인다. 색다른 구경거리에 보는 이의 눈이 즐겁다.
동로마제국의 비잔틴 양식인 산 마르코 대성당은 공사 때문에 일부가 천막으로 가려져 있어 전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대성당의 원형은 828년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훔쳐온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두칼레 궁전 옆에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1163년 지어진 데에 증축을 한 것이다. 다행히 베네치아 수호성인 성 마르코의 상징동물 사자를 황금으로 만든 사자상과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한 네 마리 청동 말은 볼 수는 있었다. 원래 이 말 조각상은 트라야누스 개선문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콘스탄티노플 대경기장으로 옮겨졌다가 베네치아가 가져와 1254년 대성당 발코니에 설치했다.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1797년 기념으로 가져갔으나 1815년 이곳으로 되돌려졌고 훼손이 우려되어 1970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 서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 설치된 네 마리 청동 말이 끄는 여신상도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 파리로 옮겨졌다가 보불전쟁(1870~1) 때 독일이 도로 찾아갔다. 고대부터 전투 시 약탈은 빈번히 일어났고 약탈, 그 자체가 전쟁의 목적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4차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Crusades)은 이슬람에게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유럽 가톨릭 세력이 일으킨 원정 전쟁이다. 그중 4차 전쟁(1202~1204)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촉구로 원래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기획되고 예루살렘이 아닌 이슬람교의 본거지인 이집트 공략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적 동기보다는 세속적, 경제적 목적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여 이슬람이 아닌 동로마 제국을 목표로 삼은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개입한 이 십자군은 1204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공하여 처참하고 무자비하게 이 도시를 유린했고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약탈하고 파괴했다. 약탈품의 4분의 1은 새 황제의 몫으로, 나머지는 프랑크 군과 베네치아 군이 반반씩 나누었다.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바로 베네치아 공화국이다. 베네치아는 직접적인 영토와 재물을 얻은 것은 물론 무역 경쟁자인 제노바와 피사를 완전히 따돌리고 친 베네치아 황제를 세움으로써 동 지중해의 무역권을 완전히 독점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상업적으로 크게 번성한 베네치아 공화국(Respùblica de Venexia)은 8세기부터 1797년까지 약 1,000년 동안 독자적인 공화정 정부 형태를 갖추고 독립 해양강국으로 존재했다. 베네치아를 무너뜨린 건 나폴레옹 군대였다.
여행에 모자는 필수 아닌가. 가져간 챙 넓은 카우보이 모자가 불편해 네덜란드에서 10유로를 주고 챙이 작은 골프 모자 하나를 샀다. 그게 좋아 보였던지 동서도 베네치아 기념품 거리를 돌다 챙이 아주 작은 마도로스(Matroos) 모자를 하나 샀다. 한 때 번영을 누렸던 해양강국에서 Made in China 마도로스 모자?! 그래도 휴대가 간편하고 우리 돈 5천 원 정도 주고 샀으니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 저녁으로 고기와 소시지를 구워 먹었다. 그때 마침 한 젊은 여성이 지나가며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한다. 해외에서 듣는 한국말. 반가운 나머지 우리 일행이 같이 맥주 한잔하자고 하니 지방의 한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청년을 데리고 왔다. 해외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청년들과의 담소... 우리 청년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대학졸업을 앞둔 학생이라는 젊은 여성은 인천-베네치아 직항으로 와서 밀라노와 로마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자유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외국계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오랫동안 여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왔단다. 같이 온 젊은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 영국대학에 복학하였는데 마침 여행 보디가드로 자신을 요청해 같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청년의 얘기를 들으니 우리 젊은이들의 사고와 꿈이 아주 야무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즐기되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허황된 것이 아닌 구체적인 것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려는 신선한 힘이 느껴졌다. 그들은 무엇이 되겠다는 꿈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꿈꾸고 있었다. 우리 세대와는 정반대다. 우린 무엇이 되겠다는 꿈에 살지 않았던가?
영국작가 셰익스피어가 쓴 소설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이 떠오른다. 가난한 상인 바사니오는 사랑하는 여인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 3,000리라를 빌린다. 바사니오 친구인 거상 안토니오는 친구가 돈을 갚지 못하면 자신의 가슴살 1파운드를 대신 베어가겠다는 샤일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결국 피가 나지 않게 가슴살을 베어가라는 재판관(포샤가 변장한 인물)의 명 판결로 샤일록의 흉계는 실패한다. 세상에는 꿈꾸는 자가 있고, 그 꿈을 방해하는 자와 장애물이 있다. 우리도 그랬고, 베네치아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언젠가 그들의 얘기를 글로 쓸 것이라고 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이 1년이 조금 더 지났으니 그들은 그들의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스쳐 지나간 젊은 그들의 야무진 꿈이 꼭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스위스 비탈길과 한 때 번성하였다가 사라진 공화국 베네치아에서 나는 아무 탈 없이 여행이 마무리되기를 빌었고, 그렇게 됐다. 그렇다.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 간다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늘 가슴 뛰는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