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럽여행기(19)-체코 프라하의 추억

시간, 방랑, 자유

by 생각전사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체코 프라하. 중세의 멋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도시. 볼타 강과 돌다리, 시계탑, 숱한 군중과 서사가 있는 체코 프라하를 추억해 본다.


우리는 지나간 무엇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사실(Fact)에 기초하기도 하고, 감정에 기초하기도 하고, 이 둘 다가 엉킨 것에 기초하기도 한다. 반복하여 외운 영어단어를 떠올릴 때는 어떠한가, 옛 고향과 옛 동무를 떠올릴 때는 어떠한가, 내 생애 최고의 날, 기뻤던 날을 떠올릴 때는 어떠한가,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일로 사무칠 때는 어떠한가?


체코 프라하는 “아, 좋다.”, “멋지고, 아름답다.”, “고풍스럽다.” “체코는 이런 곳이구나.”하는 감정이 사실의 나열보다 더 우세한 여행지였다. 문장이 아니라 이미지와 이미지에 응축된 역사, 그것이 오늘의 태양 아래에서 빛나는 그 무엇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천문시계탑, 카를교와 숱한 스토리가 있는 조각상들, 돌을 일일이 박아 만든 도로, 큰 나무대문을 바치고 있는 투박한 무쇠 돌쩌귀, 사자문양의 문고리, 코젤 맥주 그림이 그려진 트럭, 오랜 역사에서 흥망성쇠와 부귀영화를 함께 한 프라하 성 건물과 조형물들, 보통의 유럽 성당과 달리 아주 작고 검소한 성당,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특유의 사각 문양,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짙은 주황색 지붕의 집들과 저 멀리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은 유장한 강줄기, 기대로 가득 찼던 체코 족발 꼴레뇨와 지친 몸이 받아주질 못해 끝내 남기고 돌아선 그 수제 맥주 한잔, 어느 모퉁이에서 마주쳤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진 수많은 사람과 사물들... 방랑자의 도시,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100년이 앞선 종교개혁의 선구적 도시, 세계에서 무종교인이 가장 많은 정신적으로 자유분방한 도시…


체코 프라하는 이런 단편적인 단어와 문장, 어찌할 수 없는 미완의 문장들, 셀 수 없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응축된 느낌과 감정으로 남아있다.


나는 군인이었다. 1978년부터 2014까지 36년간 군인이었다. 비상이 발동하면 즉각 출동해야 하는 군인의 특성으로 부대가 지정한 위수지역(衛戍地域)은 지켜야 하되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는 없는 군인이었다. 명령에 따라 스물여덟 번의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유랑의 삶이었다. 이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삶이 규정되었다. 자유는 국가에 저당 잡혔고 권한은 계급에 따랐지만 책임은 계급보다 크고 넓었다. 그 후 3년의 고위직 공무원 생활은 군인보다 나았지만 자유는 여전히 부분적으로 국가에 귀속된 것이었다.


자유. 구속으로부터의 자유(From freedom).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To freedom). 군대를 벗어나면서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일반국민의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위수지역이 풀렸으니 방랑의 자유도 허용되었다. 유럽 렌터카 자유여행이 그 결정판이 되었다. 이 여행은 나와 아내에게 억압의 시간을 뒤로하고 자유로운 시간과 방랑의 시간을 선사한 선물이다. 유럽에서 방랑자가 유독 많아 보헤미안(Bohemian)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프라하. 이곳이 그 시발점이자 종착점이 된 것도 내게는 나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풍족하지 않은 돈, 점점 약해질 체력과 건강, 퇴화 일로에 있는 열정은 더욱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자유를, 가끔 자유여행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지가 멈추는 순간까지 그리 할 것이다. 이는 유럽 동그라미 여행이 준 시간, 방랑, 자유의 매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궁극은 뒤늦게 찾은 자유의 소중함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유여행만을 고집할 생각도, 패키지여행이 주는 편안함을 마다할 생각도 없다. 선택의 자유가 늘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기를 마무리할 차례다. 프랑스에서 발견하지 못한 나폴레옹 청동상 기념품을 체코 프라하에서 샀다. 나는 사관학교 시절 나폴레옹 전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프랑스 변방 코르시카 섬 출신인 그를 친구들은 ‘코르시카 원숭이’라고 놀렸다. 그는 “검이 짧으면 일보 전진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약점을 열정과 담대함으로 극복하라는 얘기다. 나는 이 말을 평생 지침으로 삼았다. 그런 나폴레옹의 형상을 이번 여행을 통해 비로소 나의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지금 나폴레옹이 나의 군 생활 이력이 새겨진 기념품 옆에 우뚝 서 있다. 그는 한 때 프랑스의 영토와 자유를 확장했지만 다른 나라의 영토를 유린하고 자유를 억압했다. 그는 누군가의 영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침략자, 약탈자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나의 나폴레옹은 이제 없다. 오랜 시간여행을 마친 내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폴레옹 청동상은 내게 말한다. 세상은 하나의 잣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은 넓고 생각도 다양하다고…(계속)

프라하 작은 성당, 카를교
천문시계탐과 프라하 사람들
카를교에서 구시가지로의 진입로와 돌을 박아 만든 도로
대문을 바치고 있는 무쇠 돌쩌귀와 사자문양의 문고리
체코 프라하에서 만난 니폴레옹


keyword
이전 18화유럽여행기(18)-브라티슬라바 성의 얼굴 없는 영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