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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Dec 01. 2023

뒷모습의 시간

회상과 희망

인간은 어느 날 작은 점으로 시작되어 운명의 시간을 살게 된다. 세상의 무엇과 비교하여 그리 크지 않은 신체적 공간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가족, 사회, 국가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아무도 관여할 수 없는 그의 시간을 산다. 누구든 입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일하고, 돈과 권력, 명예를 추구하며 그의 방식대로 산다.


자연의 법칙은 엄격하여 공간은 잠시 머무르는 듯해도 시간은 단 1초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로 흐른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시간이 지나고 능력이 성장하면서 가정, 사회, 국가의 순으로 서로 경쟁하며 나아가다가 점점 국가, 사회, 가정의 순으로 어쩔 수 없이 밀려나 결국에는 쇠약해지고 병들어 스스로의 신체적 공간마저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소멸하고 만다.


앞선 자의 소멸로 생긴 빈자리는 강의 뒷물이 앞물을 채우듯 자연스럽고도 신속하게 채워지고 그의 부존재를 특별한 관계의 몇몇을 빼고는 아무도 애달퍼하지 않고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오히려 그 빈자리는 새로운 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토대가 된다. 시간은 한때 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기회를 제공하는 은혜로운 존재인 듯 하지만 때가 되면 그 인간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삼켜버리는 무서운 존재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런 냉혹한 괴물이 시간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시간의 뒷모습이다.


그렇다면 뒷모습의 시간은 무엇일까? 늙은 노부부의 뒷모습, 젊은 연인의 뒷모습, 어린아이의 뒷모습... 이를 보는 이는 시간의 시점을 어디서부터 출발할까, 그것은 어떤 감정과 내러티브로 이어질까?

거리의 노인 (비비안 마이어)

지팡이를 짚은 남자 노인과 이를 돕는 여자 노인이 거리를 걷고 있다. 남자 노인의 허리를 여자 노인이 부축하고 남자 노인은 여자 노인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남자노인이 여자노인에게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들 노인의 관계를 부부라고 유추하고 이들의 과거의 시간과 그것이 응축된 지금의 모습을 보며 상상했다. 또, 자신과 자신의 아내와의 훗날을 생각하는 미래로 나아갔다.


"참 잘 살아오신 부부인 것 같다.", "두 분이 발 모양과 보폭마저 똑같아 마음이 잘 맞고 여자 노인이 특별히 더 신경 쓰며 걷는 것 같다."  "노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늙어서도 저렇게 서로 의지하는 걸 보니 나도 늙어서 아내와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싶다."

손을 잡은 남녀 뒷모습 (비비안 마이어)

위 사진은 노부부 뒷모습 사진과는 달리 연인인지 부부인지 알 수 없는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뒷모습의 일부가 보이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서로 잡은 손, 힘줄이 보이는 남자의 팔뚝, 여자의 팔찌, 주름이 진 남자바지에 주목했다. 이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것은 서로 맞잡은 손이었다. 여기서 상상은 시작된다. 연인, 금슬 좋은 부부, 불륜의 커플, 젊은 시절 아내와 연애할 때의 회상 등등.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사진 속 인물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지 않았다. 보이는 단서를 통해 현재를 유추할 뿐이었다. 다만 자신이 관여된 엣 추억의 회상은 있었다.


스토리의 3 요소가 완전한 뒷모습 사진은 시점이 현재-과거-미래로 넘나 들었지만  부분적인 뒷모습 사진은 과거와 현재에 머물렀다.. 미래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뛰어가는 아이(2022)

위 사진은 앞으로 움직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신기해하며 뛰어가는 아이를 찍은 것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이의 뒷모습이다. 한쪽 운동화 바닥이 보이고 아이의 자세로 보아 뛰고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아이가 앞으로 달려갈 것이라는 사실과 혹시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걱정이 숨겨져 있다. 현재보다 아이의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아이의 과거는 관심 밖이다.


뒷모습의 시간은 인물의 나이와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과거가 중점이 될 수도, 현재에 치중할 수도, 미래를 지향할 수도 있다. 뒷모습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인물의 앞모습은 그에게 주목하여 유추하는 현재와 과거의 내러티브라면 뒷모습은 내가 그를 통해 내 자신에게 던지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내러티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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