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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Nov 28. 2023

뒷모습의 푼크툼

정서적 충격과 존재의 인식

누구나 살면서 크든 작든 충격을 받는다. 사고의 목격, 죽은 자의 얼굴과 만남, 혐오스러운 장면과의 조우,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원하던 대학을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좌절, 희망을 품고 시작한 일의 실패, 물리적 정서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뉴스와 휴대폰으로 거의 매일 죽은 자의 소식이 들려온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강력범죄로, 지병으로, 노환으로 발생한 죽음들이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러다 보니 나와 관련이 없는 사망소식은 안타깝거나 충격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무덤덤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죽음을 직접 목도하는 것은 다르다. 죽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공포가 가져다주는 충격이 있다. 아주 어릴 적 동네 형의 죽은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백지장같이 하얗게 변한 얼굴이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채 그 집 안방에 누워있었다. 아주 무섭게 느껴졌다. 그거보다 더한 충격은 11살 때 죽은 엄마의 얼굴이다. 아파서 시장 병원에 가셨던 엄마는 죽음의 얼굴로 집에 돌아오셨다. 어린 나를 어른들이 막아서서 멀리서 흘끗 보았다. 검게 변한 엄마의 얼굴, 눈을 감고 아무 말도 없는 엄마... 나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 뒷마당으로 도망쳤다. 그 후 한동안 엄마의 검은 얼굴은 꿈속에서 흔들리는 촛불과 함께 나타났다. 그때마다 너무 무서워 떨다 잠이 깼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의 시기였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1915~1980)는 <밝은 방-사진에 관한 노트(1979)>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진을 보고 사실을 인식하고 느끼는 스투디움(Studium)과 '찌름', '베임'의 형태로 정서적 충격을 주는 푼크툼(Puncutum)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이중 푼크툼은 사랑과 연민의 감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 예로 자신의 어릴 적 어머니 사진을 꼽았다. 어머니 장례식 후 유품을 정리하던 바르트는 어머니의 삼촌과 함께 찍은 어머니의 소녀시절 사진을 보고 어머니가 "과거에 존재했다."는 사실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존재의 사실을 실감한다. 그러면서 사랑과 연민의 감정이 기져 오는 정서적 충격에 휩싸인다.


나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언론을 상대로 한 일을 하면서 브리핑을 하기 위해 TV카메라 앞에 자주 서야 했다. 어떤 사안은 너무나 급박하고 중요한 것이어서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전 세계 언론이 긴급뉴스로 전하기도 했다. 그 세상에는 나의 앞모습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목욕탕 대형거울을 통해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웬 중늙은이가 서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나 자신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나의 반쪽 뒷모습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 시작했다. 남은 볼 수 있지만 나는 볼 수 없는 뒷모습. 늘 신경이 쓰였다.


사진 이미지를 공부하던 나는 뒷모습이 가져다주는 충격의 감정을 논문으로 쓰고 싶었다. 이론과 방법론을 찾아 우왕좌왕하다가 롤랑 바르트의 생각과 만났다. 사랑과 연민의 관계가 아닌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푼크툼이 일어날까? 나의 질문의 시작이었다. 뒷모습 사진을 고르고 질적연구방법으로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다. 스토리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이 온전하지 않고 무엇이 비어있는 불완전한 뒷모습 사진이 푼크툼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재미있는 것은 연구참여자들의 반응 속에 롤랑바르트가 얘기한 사랑과 연민의 관계가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뒷모습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는 종류는 2가지로 공포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장면의 연상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추억과 회상이 가져오는 충격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 사진(2011, 강산별곡 중에서)

위의 사진은 인물, 사건, 배경이 불명확한 사진이다. 즉 스토리 구성이 불완전하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통나무에 묶인 사람", "철사로 묶인 채 손에 피를 흘리는 사람", "처형이 연상된다.", "통나무를 지고 힘들게 사는 사람을 통해 어릴 적 가정사를 책임지던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난다." 등등. 통나무를 지고 가는 평범한 일상의 뒷모습 사진도 자신의 사랑과 연민에 관여된 사람을 떠올리며 그가 존재했던 사실과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따른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랑의 존재와 부존재의 인식(2022)

위 사진은 내가 우연히 찍은 것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이다. 아들과 손녀가 길을 간다. 사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은 미래로 간다. 나는 사진 밖 그들 뒤에 있다. 사진 속에는 없다. 시간이 흐른 미래 어느 날 나는 현실 속에도 부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저들은 뒤에서 이 사진을 찍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나의 영원한 위안이자 불멸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사랑으로 연결된 뒷모습이 일으키는 죽음이 가져올 부존재에 대한 정서적 충격과 위안이다. 부모로서 그림자가 되었다가 그림자조차 사라지는 부존재가 될 것이라는 충격은 아래 사진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저 연결자로 남을 것이란 예고이다. 그래도 슬프지 않은 것은 사랑하는 존재들에게로 이어진 DNA의 끈이다.

그림자에서 부존재로의 예고와 연결자에 대한 인식(2021)

그렇다. 사랑과 연민으로 이어진 뒷모습에는 푼크툼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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