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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Dec 05. 2023

뒷모습의 공간

소외와 거부, 은폐와 위안, 비밀과 권력의 개입

뒷모습.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않는 공간이다. 거울을 볼 때 뒤를 보는 사람은 없다. 끝까지 무심하면 평생 소외되는 공간이다. 나는 볼 수 없고 남은 볼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잊고 살기 십상이다. 앞모습도 버거운데 어찌 뒷모습을 노상 생각하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정작 앞모습이 곤경에 처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니 뒷모습의  소외는 태생적이라 할 것이다.


뒤는 감추는 공간, 거부의 공간, 근심을 푸는 공간이다. 장난 삼아 아이의 사탕을 빼앗으려는 시늉을 해보라. 열에 아홉은 뒤로 숨긴다. 싫다는 거부의 표시다. 달라고 더 조르면 더 숨긴다.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가난한 고학생 이수일은 돈 많은 김중배를 결혼상대로 선택한 심순애에게서 단호히 돌아선다. ”돈?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좋다더냐. 에잇!" 이수일의 뒷모습은 순간 완강하다. 이를 심순애는 붙잡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관객은 입장에 따라 이수일이 안타까워 한숨짓고 심순애의 순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때 변사의 한껏 고조된 애달픈 넋두리가 극장에 가득 차며 막이 내려간다. 국민학교 때인 1971년 속초 어느 극장에서 본 장면이다. 미성숙한 아이의 눈에도 사각모를 쓴 대학생 이수일의 뒷모습 공간에 가난, 사랑, 배신, 이별, 분노, 안타까움이 회오리쳤다.


어릴 적 고향집 뒷마당은 잡동사니와 장독대 차지였다. 언젠가 필요하지만 당장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그곳 신세가 되었다. 그곳은 집주인의 근심을 더는 공간이자 장래 필요한 물건의 저장소, 갓 시집온 며느리가 눈물을 훔치며 마음을 다잡는 장소가 되곤 했다. 그래서 지난 근심과 걱정을 풀어놓으며 앞으로를 다짐하는 해우소(解憂所)가 안성맞춤인 곳이다.  해우소 또는 건물 뒤에 있어 '뒤깐‘이라고 불린 옛날 화장실. 시인 정호승은 ‘선암사’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썼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의 시 '선암사'
선암사 뒤깐(화장실)

절대권력의 뒷모습은 비밀의 공간이다. 북한 독재자 김일성, 김정일 동상의 뒷모습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옆모습과 부분촬영도 금지되어 있다. 동상의 정면, 그것도 전신을 촬영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외국인이라도 구금, 징역, 강제출국 조치된다. 흥미롭게도 김정은의 뒷모습이 노동신문에 공개된 적이 있다. 독재 검열을 통과한 것이다. 강성대국 건설의 미사일 발사와 연계된 고도의 이미지 정치가 숨겨저 있다.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의 총괄 지휘자라는 이미지 조작이 읽힌다. 권력자의 뒷모습은 비밀의 공간이자 이미지 조작의 연출공간이다.


절대권력자들이 기를 쓰고 뒷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는 걸 보면 뒷모습은 숨길 수 없는 인간본래의 공간이자 보는 자가 지배하는 공간으로써 절대권력이 두려워하는 공간이다. 뒷모습은 권력자 자신이 혼자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 권력은 힘과 조직의 개입을 통해 자신의 뒷모습을 통제하려 한다. 거기가 치부이자 약점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북한 독재자 김정은 뒷모습 (노동신문 2016. 8.19, 조선일보 재인용)

태국 방콕에는 아주 커다란 누워있는 불상이 있다. 앞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웅장함에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 뒷모습도 밋밋하지만 거대하다. 하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경배하지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앞모습에 쏠려있다. 뒷모습은 정신 차리고 봐야 보이는 늘 소외된 공간이다. 우리 주위의 뒷모습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태국 와불의 앞모습과 뒷모습(2023.10, 태국 방콕)
뒷모습에 관심도 없고 경배도 하지 않아서인지 그앞에 작은 불상이 놓여있다.

번화한 서울역 인근에 쪽방촌이 있다. 한 때 이 길로 많이 걸어 다녔다. 쓰러져 가는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산다. 어느 해 여름에는 무더위로 여러 사람이 죽기도 했다. 그래서 에어컨이 달린 공공 쉼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공공기관 기관장을 할 때 직원들과 홍은동에 연탄 배달 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2021년 선진국이 되었다. 세계 GDP 순위 13위, 세계 군사력(Global Power Index) 6위다. 하지만 결식아동이 30만이다. 180만의 독거노인이 있다. 미국도 거지와 노숙인은 있다. 뒷모습의 공간이다. 깜빡 잊기 쉽기에 의식적으로 돌봐야 할 공간이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 겨울 골목. 뒤로 고층건물이 보인다.(2017.1)

뒷모습의 공간도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기를 소망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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