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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Dec 08. 2023

뒷모습으로 남은 나의 어머니

돌 위에 앉은 하얀 그리움

이 세상에는 어머니가 살아계신 사람과 돌아가신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머니는 생존해 계신가요?", "아, 저런 일찍 여의셨군요.", "참 힘드셨겠습니다.", "아버님은요?", "1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


이불로 차를 만들고 메밀껍질이 들어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동그란 베개를 세워 운전대를 만들었다. 차장 누나가 소리친다. “오라이잇!” 차는 “부릉부릉” 시장을 출발한다. 시장거리를 지나 양회다리 쪽으로 우회전을 한다. 일제강점기 동네 사람들이 부역으로 만든 다리다. 나무다리는 장마철이면 죄다 떠내려가는데 이건 끄떡없었다. 잠시 직진하다 이어 오르막이다. 양지말 끝자락에서 기어를 바꾼다. 우회전을 하며 길모퉁이를 돌아 오르니 거리뜰이 눈에 들어온다.

이불차에 어머니를 태운 어린 버스운전수(소년과 장군 삽화)

이제 내리막길. 신작로 옆에 코스모스가 피었다. 길 위의 작은 돌들과 모래, 흙이 바퀴에 밟히며 차가 “덜덜덜” 흔들거린다. “베개, 아니 운전대를 꽉 잡아야지.” 다시 오르막. 왼쪽으로 개천이 흐른다. 그쪽은 낭떠러지기다. “산 쪽으로 차를 바짝 붙여 가야지.” 지엠시(GMC) 트럭 한 대가 거기로 굴러 떨어져 쇠줄로 끌어올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조심해야지.” 곧이어 꼬불꼬불 고갯길을 내려가자 오른쪽으로 공동묘지가 보인다. 으슥한 밤에 거길 걸어 다닐 때면 등골이 오싹했다. 뛰면 누가 더 쫓아올까 봐 잰걸음으로 달아났다. 둘러멘 책보필통 속 몽당연필이 “달그락달그락”거리면 그 소리에 맞춰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무서움이 달아났다 돌아왔다 했다.


“자, 조금만 더.” 이제 모퉁이만 돌아서면 오른쪽에 집이 있고, 왼쪽 저만치에 고모 집과 친구 일근이네 집이 보인다. 매화산 아래 전재라는 우리 동네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고개 하나만 더 넘으면 여심동 계곡 우리 집이다. “붕붕”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낸다. 오른쪽으로 돌아서면서 차를 세운다. “휴, 다 왔다.” 장에 가셨던 엄마가 꽁치와 과자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강원도 산골마을 우리 집 앞에는 면 소재지 시장으로 가는 꼬불꼬불한 신작로가 나 있었다. 42번 국도다. 차가 지날 때마다 하얀 먼지가 풀썩거려 한참 동안 코와 입을 막고 머리를 돌려야 했다. 그 길로 하루에 몇 차례 시골 버스가 다녔다. 앞이 트럭처럼 튀어나온 버스였다. 시동을 걸 때는 운전수 아저씨가 긴 쇠막대기를 버스 앞쪽에서 안으로 밀어 넣고 힘껏 돌렸다. 하지만 “푸식, 푸시식” 하는 소리를 내며 시동이 잘 걸리지 않기 일쑤였다. 연거푸 이런 소리가 들리는 날이나 고갯길에서 그만 시동이 꺼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승객들이 모두 내려 버스를 밀어야 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려고 버스를 타는 건 어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취미였다. 그 어떤 놀이도 견줄 수 없었다. 그땐 꼭 운전수 아저씨 바로 옆에 툭 튀어나온 곳에 앉았다. (그 밑에 엔진이 있었던 것 같다.) 아저씨가 운전하시는 걸 유심히 보기 위해서다. 그때 본 대로 베개 운전대를 돌려본다. 몸도 한번 ‘스윽’ 옆으로 돌린다. 고갯길을 돌아갈 때 운전대를 따라 옆으로 몸을 ‘스윽’ 돌리던 운전수 아저씨를 따라 한다. 멋지다. “나도 커서 버스 운전수가 되어야지.” 그렇게 내 어릴 적 꿈은 버스운전수가 되었다.


지금의 그곳 도로는 쭉 뻗은 데다 포장까지 돼 있어 옛날 모습이 아니게 됐다. 그러나 그때 시장과 우리 집 앞 정류장까지 마음속 운전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내 머릿속엔 먼지 날리고 꼬불꼬불한 신작로가 4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열한 살, 어느 이른 여름날, 아픈 엄마는 하얀 치마저고리 한복을 입고 시장 병원에 가신다며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셨다. 집에서 신작로까지 꽤 먼 거리를 엄마는 힘들게 걸어가셨다. 버스를 타기 전 신작로 옆 돌 위에 앉아 계시던 엄마. 그 후 나는 수도 없이 시장에서 집까지 엄마를 태운 마음의 버스를 운전했다. 그러나 엄마는 끝내 정류장에 내리지 않으셨다. 그날 저만치 신작로 옆 돌 위에 힘겹게 앉아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 내가 본 살아 계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다. [소년과 장군(샘터, 2016) 중에서]


아! 마음속 운전밖에 할 수 없었던 어린 버스 운전수여! 병원에 가신 엄마를 찾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던 어린 것이여! 막내 얼굴을 끝내 못 보신 채 죽은 얼굴로 돌아오신 나의 엄마여! 신작로 옆 돌 위에 걸터앉은 하얀 치마저고리, 그 뒷모습의 그리움으로 내 가슴에 묻히신 나의 어머니시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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