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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Dec 12. 2023

뒷모습의 나

이방인에서 나를 거쳐 타인과 나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나의 첫 뒷모습은 목욕탕 대형거울에 비친 50대 중반 중늙은이의 벌거벗은 뒷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나인줄 몰랐다. 움직임으로 알아차린 나의 뒷모습은 내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주 짧은 순간 그건 이방인이었다. 등은 굽었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젊은이처럼 우람하지도 쭉 펴있지도 않았다. 매일 만나는 나의 흰머리는 숫이 없는 데다가 정수리가 뻥 뚫려 있었다. 그게 나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의 동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앞모습에만 신경 쓰다 순간적으로 받은 충격이었다.


나는 볼 수 없지만 남은 늘 보는 나의 첫 뒷모습은 점점 뒷모습에 대한 여러 생각으로 분화되었고, 남의 뒷모습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더하고 빼고 하는 버릇과 남들은 뒷모습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건물의 뒤, 동상의 뒤, 거리의 뒤, 사회의 뒤, 권력의 뒤는 어떤지를 살피는 습성이 생겼다. 그러기를 되풀이하다 마침내 박사학위 주제가 되었다. '뒷모습 사진의 푼크툼에 관한 연구'. 나의 논문이다. 그렇다고 내 뒷모습의 분화가 끝난 건 아니다. 브런치북에 '뒷모습 랩소디'라는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기회가 되어 2024년부터 한 신문사에 '000의 뒷모습 세상'이라는 고정칼럼을 쓰기로 했다. 나의 반쪽 뒷모습의 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반쪽과 반쪽의 뒷모습(2021.7, 경주 불국사)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깊은 감동받는 것은 자식들이 살아있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다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나의 아버지 뒷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나의 자식들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 자식이 낳은 자식에게까지 이젠 초라하게 변했지만 나의 뒤를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때론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하다. 실존하는  나의 뒷모습이...


반대로 자식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살아있는 나의 뒷모습 이상으로 감동이 된다. 그들 뒷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고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그들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보다 더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들 뒷모습에는 나의 자부심과 나의 희망이 새겨져 있다.

저 발자국 끝에 다른 세상이 있다.(2023.2, 강릉 하조대)

나는 햇빛이 투과하지 못한 채 만들어낸 나의 뒷모습 그림자를 좋아한다. 나의 육신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유령은 그림자를 만들어낼 수 없지 않은가. 어느 해 봄날 제주 바닷가 바위에 올라서서 바위에 비친 나의 뒷모습 그림자를 사진에 담다가 그 뒷모습이 사라지는 걸 목격했다. 하늘에서 흘러가던 구름이 태양을 가리자 직사광선이 일시 차단되면서 그림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때 불현듯 느꼈다. 구름이 흘러가듯 시간이 흘러가면 나의 육신의 뒷모습 그림자도 사라질 거라는 것을...

여름의 뜨거운 햇볕도 우리를 투과하지 못한다. 우리의 실존 때문이다.(2023년 여름, 강원도 양구 두타연 가는 길)

나는 스스로 뒷모습을 볼 수 없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기에 빛이 투과하지 못한 나의 뒷모습 그림자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의 그림자 찍기 행위는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뒷모습 나의 실존의 증명이자 그 불멸화와 같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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