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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Nov 24. 2023

뒷모습의 시선

그의 시선의 부재, 보는 자의 내러티브

앞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강렬한 눈, 시선이다. 특히, 쏘아보는 듯한 눈, 형형한 눈이 더욱 그렇다. 아래 사진은 사진가 육명심이 강원도 강릉에서 1983년도 찍은 무속인의 얼굴이다. 이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형형한 눈이다. 눈동자에 비친 물체가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는 눈. 이어서 사람마다 순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코와 콧구멍, 깊이 파인 주름살, 웃음기 없는 표정, 무속인들이 머리에 쓰는 모자에 달린 둥근 구슬알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이 사진을 찍은 때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라는 사실과 사진으로 가늠되는 그녀의 당시 나이로 추정해 볼 때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실재는 부재하지만 그녀는 유령이 아니라 강렬한 눈빛과 표정으로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생각으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무속인이라는 사실로부터 그녀가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과 영적인 묘한 감정을 유발해 섬찟하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앞모습에서 발화되고 있다. 형형한 눈을 가진 무속인의 앞모습이 던지는 주장이다.

육명심 '얼굴'(1983)
화가 P의 뒷모습(2022)

위 사진은 어느 70대 화가 P의 뒷모습이다. 그의 약간 듬성듬성한 검은 머리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이어 등, 두드러진 의자 등받이, 앞에 놓인 그림들이 보인다. 처음 볼 때는 인물의 뒷머리가 인상 깊게 들어오지만 화면이 익숙해지면서 점점 인물의 뒷모습은 전체 화면의 한 부분이 되어 객체화되기 시작한다. 화가 P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를 보는 사람이 자기의 지난날의 경험과 지식, 자신이 처한 상황에 덧붙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무속인의 형형한 눈빛과 대조적이다. 뒷모습은 보는 자의 내러티브(Narrative) 영역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뒷모습을 본 화가 P의 반응이다. 유명한 초상화가로 사물의 디테일한 부분을 잘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며 평생을 산 화가 P는 "아, 참 잘 살았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여기까지 온 내가 자랑스럽네."라며 뒷모습의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마음의 이미지 내러티브를 술술 풀어놓는 게 아닌가. 반면에 세세한 뒷모습 묘사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사물의 팩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심상에 맺히는 그만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뒷모습은 때론 내가 아닌 이방인이 되어 낯설기도 하지만 나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나를 돌아보는 심연의 존재가 된다. 뒷모습에는 당사자의 시선이 숨겨져 있는 대신 보는 이의 마음의 시선이 개입함으로써 발화되는 새로운 존재와 실체에 대한 상상과 저마다의 내러티브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새로운 존재가 뒷모습의 당사자이든  타인이든 궁극에는 보는 나의 내면의 시선이자 나의 모습이 된다.


앞모습에는 앞모습의 직설적 시선이 있지만 뒷모습에는 보는 이가 상상하고 써 내려가는 마음의 시선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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