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전사 Nov 17. 2023

DNA의 뒷모습

 미래로 연결된 끈, 영원불멸의 약속

아들과 손녀가 길을 간다. 그 발이 닿은 잔디바닥에 끈 모양의 자국이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나중에 발견된 것이다. 우연이 운명의 끈을 포착했다.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멸망하지 않은 것은 그 후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립보행에서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에 이른 것은 바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영속성 덕분이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두개골 = 위키백과

DNA(Deoxyribo Nucleic Acid, 데옥시리보핵산). DNA는 뉴클레오타이드의 종합체인 두 개의 긴 가닥이 서로 꼬여있는 이중 나선구조의 고분자화학물이다. 이 DNA의 일정 구간에 걸쳐 있는 염기 서열이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실제 유전정보가 담겨있는 엑손 구간과 발현에 관여하지 않는 인트론 구간이 있고, 엑손 구간의 시작은 촉진유전자(Promoter, 프로모터)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아무튼 DNA 하면 유전자를 일컫는 말이다.


뭇사람들은 아이를 보면 제일 먼저 '아, 귀엽다.", "예쁘게 생겼네.",  "고놈 장군감인데...", "큰 일 하겠어."라고 말하며 한껏 친근감을 드러낸다. 겉으로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이의 얼굴과 행동을 쳐다보며 흐뭇해하기 마련이다. 이게 아이를 대하는 성숙된 인간의 본성이자 보편적 태도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통상 핏줄이라고 표현하는 자기 DNA을 물려받은 아이에게서는 다른 아이를 보는 감정 이상을 느낀다. DNA를 직접 물려준 아버지, 어머니의 감정도 감정이지만 DNA를 건너뛰어 물려준 할아버지, 할머니의 핏줄에 대한 감정은 쉽게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고 감동적이다. DNA의 거리상으로 보면 더 멀지만 오히려 그 감동은 더 크고 더 깊다고 할 수 있다.


왜일까?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걸 인간의 생존본능, 자신은 죽어도 자신의 후손은 이상 없이 생존하고 번영하기를 바라는 종족보존 욕구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살 때 아버지를, 11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다. 나의 아버지의 앞모습은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되고 당연히 뒷모습은 전혀 기억이 없다. 보았어도 기억할 수 없는 갓난애였으니 말이다. 그런 아버지를 가진 나로서 나로 이어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DNA가 면면히 이어지는 아들과 손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기적을 보는 것과 같다. 살아있는 아비로서, 할아비로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큰 감동에 젖을 때가 있다. 아이들은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비의 생존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힐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 아이들의 평범한 느낌, 그 사실 자체가 오히려 내게 더욱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나의 독특한 지난 삶의 괘적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감정이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내가 본 나의 DNA의 뒷모습 사진. 그건 타인에게 평범한 사진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게 큰 감동을 주는 사진이다. 아들과 손녀, 세 아들의 앞모습에서는 그들의 표정과 얘기를 듣고 그들의 세계로 빠져드는 지금의 기쁨이 있지만 DNA의 뒷모습 속에는 영원불멸의 약속과 미래 어느 날 닥칠 죽음이 가져올 파멸의 고통과 공포를 완화시켜 주는 묘약이 있다.


그래서 DNA의 뒷모습은 그들을 이 땅에 존재하게 한 나와 나의 아내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자 연결자라는 남은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최고의 각성제가 된다.  (계속)

DNA의 뒷모습(2022, 겨울)
DNA의 기적과 그림자(2021)


이전 08화 영화의 뒷모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